실학사상과 김정희의 실사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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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학사상과 김정희의 실사구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Ⅰ. 실학사상
1. 조선 후기 유교의 특질과 그 내재적 비판
2. 새로운 학풍으로서의 실학사상
3. 영(英), 정조(正祖) 시대 실학파 전개
① 실학파
② 성호학파 - 실학의 제1기(18세기 전반~후반)
③ 북학파(이용후생파) - 실학의 제2기 (18세기 후반)
④ 실사구시파 - 실학의 제3기 (19세기 전반, 영.정조 이후)
2) 영, 정조 시대 - 실학파의 전개기
① 조선의 사회, 경제적 변화
② 정치적 전개
4. 실학(實學)에서 개화(開化)로의 전향(轉向)

Ⅱ. 실사구시의 새로운 지표- 완당 김정희
2. 실사구시의 특징
1) 실사구시설
3) 存古와 師承. 家法의 文化蓄積論
4) 厥疑. 愼言의 정신
3. 실사구시적 학문경향
1) 금석학
2) 易學
3) 禮를 통한 實事求是의 實踐
4. 완당 철학의 사상사적 의의

본문내용

가지 모순되는 사실에 직면할 때 단편적 사실이나 사사로운 견해로 억지로 통하게 하여서는 곤란하다. 궐의. 신언의 정신을 쫓아 상반된 두 가지를 인정, 판단을 유보한 상태에서 그 통종(統宗)과 대체(大體)를 얻기에 힘쓰는 데에 오히려 내실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실사구시적 학문경향
1) 금석학
김정희의 고증학은 경학 외에도 금석. 역사분야에 까지 확대되었다.
추사 이전의 우리나라의 금석학 연구는 금석문의 편집에 치중하였을 뿐 그 고증은 미미하였다. 금석학을 뚜렷한 학문으로 우뚝 세운 것은 김정희의 공이라 할 수 있다. 옹방강의 금석연구가 주로 감식을 위한 것임에 비하여, 김정희의 경우 금석학은 서법의 고증과 더불어 역사연구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김정희는 금석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임을 밝히면서 "금석에 관한 한 가지 학문도 본디 한 문호가 따로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다"고 한탄하였다. 김정희의 금석을 통한 역사 연구는 그의 저서 [금석과안록]에 잘 집약되어 있는데, 이는 김정희가 진흥왕순수비 가운데 화초령비와 북한산비를 판독하고, [삼국사기]를 비롯한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서를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합리적으로 고증한 책이다.
김정희의 금석학 연구는 금석학파로서 학맥을 형성하는 데까지 이른다. 김정희의 금석학은 역사 속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2) 易學
김정희는 역(易)의 종류를 네 가지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성인이 제시한 역도(易道)에는 그것으로 말을 하는 것(言易), 그것으로 움직이는 것(動易), 그것으로 기구를 만드는 것(製器), 그것으로 점을 치는 것(卜筮)의 네 가지가 있다.
김정희는 역학을 통하여 인간생활의 복지와 삶에 대한 통찰, 수양에 의한 삶의 질적 승화를 도모한다. 그는 먼저 역학이 의. 식. 주의 문제를 무엇보다 중시함을 들고, 그것이 윤리적 가치와 적절한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추구하면서, 김정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평균이란 것은 물(物)마다 각각 제자리를 얻는 것이니. 제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이 평균해지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세상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오직 평균을 힘씀으로써 물마다 각각 제자리를 얻는 것이니, 주역의 큰 뜻이 바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역의 대의는 '평균을 얻는 데 있다'고 규정하고, 평균의 의미를 '개개의 존재자가 각기 제자리를 얻는 것[各得其所]'이라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역의 평균원리가 [대학]의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및 [중용(中庸)]의 중화(中和)이론과 표리 관계에 있음을 지적한다. 역에서 음양이 조화하여 제자리를 얻음은 곧 [중용]에서 말하는 바 '중화를 이루면 천지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자라난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이며, 이것을 인간현실에서 실현함이 천하의 치평(治平)인 것이다.
3) 禮를 통한 實事求是의 實踐
김정희가 "성현의 도는 궁행(躬行)에 있으며 허론(虛論)을 숭상하지 않는다. 실한 것을 마땅히 구할 것이요, 헛된 것에 의거하지 말아야한다" 라 하듯이 그의 실사구시는 필연적으로 실천궁행으로 귀결된다. 실천유학의 기치를 분명히 한 김정희는 종래의 이학(理學)이 도학적 실천과 유리되어 지나치게 사변화함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학문의 중심을 실천에 둔 것은 그의 실학자적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김정희를 형이상의 세계를 도외시하는 현실주의자로 볼 수는 없다. 김정희는 역과 예를 중시하여 양자를 표리관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즉기 기즉도(道卽器, 器卽道)'의 입장에서 실천함으로서 예의 근거를 역에 둔다. 동시에 역의 근본은 일상윤리를 삼가 실천하고 언행을 조심하며, 예로서 행동을 간악하게 하는 데 있다고 본다. 한결같이 예에 마음을 쓰면, 성(性)이 회복되고 인(仁)이 온전해진다. 따라서 몸가짐이 바로 되고 행동에도 변화가 생겨서, 드디어 천지를 경위(經緯)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정희의 학문은 형이상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과 형이하를 어떻게 실답게 드러낼 것인가에 관심을 두었으며, 그러한 관심은 이론과 실천의 융합처로서 예를 존중케 한 것으로 보겠다. 다만 그는 성리학적인 예론과는 달리 경전에 대한 고증을 통하여 실제 세계의 궁행을 문헌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고증은 예의 내용을 실답게 하는 학술적 근거가 된다.
그의 실학은 다양한 학문적 관심을 예로써 수렴하는 '박이약례(博而約禮)'의 특성을 지닌다. 모든 학문은 예를 행하는 인간 주체 속에서 생명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김정희의 실사구시는 문자학에 근거한 격물치지에서 출발하여 예로서 완성되는 것이라 하겠다.
4. 완당 철학의 사상사적 의의
실학은 다변화을 요청하는 조선후기사회에서 주자학에 대한 비판과 보완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며 전개되었다. 실학은 주자학 유일주의를 거부하고 주자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각도에서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였다. 새로운 세계관에 입각하여 민생의 안정을 도모함 그리고 자유로운 학문연구를 추구하는 기풍은 실학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김정희는 어느 한 곳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의 사상을 대표하는 개념으로서 실사구시는 평심정기(平心精氣). 박학(博學). 독행(篤行)을 기준으로 각 학파가 지니는 실(實)을 살펴 취한다는 태도로 구체화되었다. 역대학문에 대한 비판과 종합, 유.불.도를 넘나드는 거침없는 논의, 그리고 개방적 생활자세는 자유롭게 진리를 추구하는 실학사상가의 면모를 잘 드러낸다. 그의 문집에서 경세에 관한 저술과 적극적 언급을 찾기 어려움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청조 고증학을 수용하여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적극적 기제로 활용한 점은 고증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 할 수 있겠다. 또한 그의 제자들이 실학사상을 개화사상으로 전화하는 선구자가 된 점을 사상적인 맥락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 도서
1. 강재언, 『韓國 近代史硏究』, 한밭출판사, 1982
2. 강재언, 『 韓國의 開化思想』, 비봉출판사, 1981
3. 한국철학사 연구회, 『한국 실학 사상사』, 다운샘, 2000
4. 김길환, 『朝鮮朝 儒學思想硏究』, 일지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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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6.30
  • 저작시기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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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58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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