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단오제의 전통성과 축제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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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강릉 단오제의 전통성

2. 강릉 단오제의 굴절과 지속성

3. 국가 중요 무형 문화재 지정의 의미

4. 국가적 문화 관광 상품으로서의 강릉 단오제

본문내용

강릉 단오제의 연원은 동예의 무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 그 전통이 매우 깊은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보는 단오제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시기는 17세기 초 허균의 『성소부부고(惺所부부고)』에서 시작된다. 단오날 대관령에서 신을 모셔와 잡희를 벌인다는 당시 허균의 기록은 오늘날 행해지는 강릉 단오제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갑오경장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강릉 단오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된다.
1. 강릉 단오제의 전통성
1)『성소부부고』 기록의 검토
『성소부부고』의 기록에 의하면 허균은 선조 36년인 1603년 5월 1일 강릉에서 대관령의 산신(大嶺柛)을 맞이하는 행사를 보았다.
첫째 제의 대상 신격이 대관령 산신으로 좌정한 김유신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오늘날 모시고 있는 국사성황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서 후대 어느 시점에서인가 제의 대상 신격이 바뀌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둘째 대관령에서 모셔온 신을 부사(府司)에 모셨다는 사실과 허균이 그 내용을 수리에게 물었다는 것으로 보아 이속이 진행한 관 주도의 행사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아끼바는 강릉 단오제를 관행(官行)의 읍락제(邑落祭)라고 표현했다. 셋째 신이 즐거우면 풍년이 들고 노하면 풍수의 천제 지변을 준다는 것, 그 영험함을 신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번개를 들어보는 것으로 점치는 내용이 있어 관민이 함께 고을의 안과 태평과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관에서 주재했으니 제사의 틀은 유교식이었을 것이나 실직적인 내용은 축제의 성격을 띠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2)『임영지』기록의 검토
강릉의 향토지『임영지』는 영조때 출간되었다. 그리고 1933년에 『증수 임영지』가 나왔는데 여기에 강릉 단오제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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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강릉,   축제,   단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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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9.14
  • 저작시기2004.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3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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