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사상의 현대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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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의리사상의 현대적 의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序說

Ⅱ. 義理의 字義

Ⅲ. 義理의 다양한 형태와 이에 대한 비판
1. 遊俠의 義理
2. 현대인의 왜곡된 義理

Ⅳ. 조선 道學者들의 義理思想

Ⅴ. 義理思想의 규범화 가능성 모색
1. 법치와 義理는 양립 가능한가?
2. 자유와 義理는 조화될 수 있는가?
3. 義理는 公私를 구분할 수 있는가?

Ⅵ. 結語

본문내용

? 조선의 義理는 바로 公私의 혼합을 목표로 삼았다. 私가 지나쳐 정실주의로 치우쳐선 안 되며, 公만 강조하여 전체주의로 흘러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유학자들은 이 문제를 개인의 도덕심 고양으로 풀고자 했지만, 이것이 현대인들에게 유력한 설득이 될 수 있을까?
차라리 公과 義理의 관계를 재규정하는 것이 어떨까? 孝와 公益을 私와 公처럼 대립적인 개념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孝는 人倫의 기저에 깔린 기본 중의 기본으로서의 덕목이지만 이것은 가정 차원에서 행해야할 윤리이며, 公은 公利를 위한, 다시 말해 이익을 위해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 博施濟衆의 실현을 위해서 필히 지향해야할 궁극의 단계로 보는 것이 낫겠다. 즉 孝와 公益을 도덕 사회 구현을 위한 두 축으로 보자는 것이다. 우물에 빠진 아이를 건지고자 하는 이는 동리 사람들에게 칭찬 받고자 함이 아니요, 그 아이의 부모에게 사례를 받고자 함이 아니라 四端이 直發한 그 상태에서 순수히 선행을 한 것이다. 만약 이 사람이 부양해야할 노모와 처자를 생각했다면 이런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인격 실현의 궁극적 단계가 未發의 心을 敬하는 데 있다면, 저 선한 이의 훌륭한 행위는 그 자체로 인간 완성의 한 장면이 되는 것이다.
저 사람이 公益을 위해 일순간이나마 誠之者의 모습을 띤 것은, 孝의 가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비춰봤을 때의 時中이 그러한 것이요, 義理란 항상 정해진 틀이 있는 게 아니라 다만 因時制宜라면, 저 사람은 이에 맞게 행위 한 것이다. 公과 孝의 충돌이 생겼다면 무엇으로 時中을 삼을 것인가? 孝가 우선일 수도 있고, 公이 우선일 수도 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그 순간 처해진 상황에서, 우물에 빠진 아이를 구한 저 사람처럼, 未發의 心이 直發한 것을 획득하여 행동해야할 것이다. 이렇다면 곧 상황윤리가 되며, 상대주의적 윤리가 되는 게 아닌가? 사람마다 직발한 내용이 다르다면 어쩔 텐가? 무엇이 더 옳은가? 다양한 모든 것이 질적으로 모두 동등할 수 있다는 이 말은, 그 무엇도 질적으로 우월한 것이 없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이런 반문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으며, 우리는 보다 훌륭한 직발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敬을 유지해야할 뿐이다. 요컨대, 公私의 갈등은 조선의 유학자들의 주장처럼 개인의 덕성에 맡겨서 판단해야겠는데, 이를 위해 개인 도덕성 회복과 수양의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할 수 있을 뿐이다.
Ⅵ. 結語
앞 절을 통해 조선의 義理思想이 현대의 통용되는 가치 체계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상보의 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딱딱한 법치만능주의에 대해 仁에 바탕을 둔 禮治로서, 법집행의 불공정함에 대해서는 分義에 근간을 둔 職責의 엄격한 책임주의로서, 퇴폐적인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 대신 도덕적인 진정한 자유를 제시함으로써, 義理思想 자체가 公私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는 내적 비판에 대해서는 時中을 보다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義理를 고양시킴으로써 해결할 수 있으리라 진단했다.
본문의 결론은 결국엔 개인 도덕성 회복이라는 당연한 소리의 반복이라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세계가 dystopia가 아닌 utopia라면 이것은 물질적 충족만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물론 “의식이 풍족해야 예절을 안다”고 말할 수도 있으며, 利의 확보 역시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라는 말에 비춰볼 때 오직 이익만을 염두에 두는 인생이 진정한 삶일까? 더구나 이익만을 좇게 되면 오히려 더 적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할 때, 우리는 내적으론 건전한 도덕심을 확보하여 이것의 실천으로서 義理를 준칙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파악하여 인류의 터전인 자연을 훼손하고 급기야 우리의 생존마저 위협 받는 세상에서 유교의 天人感應思想은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지혜이다. 옳음 대신 이익을 논하는 것이 國是가 된 듯한 세상에서 오직 義理에 부합하는 명분대로 행위 하고자 했던 옛 사람들의 절개는 구시대의 유습이 아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과거와의 대화를 멈추지 말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현재도 언젠가는 과거가 될 것이며, 후손들은 그들의 기준에 따라 우리를 평가할 것이다. 비록 유학자의 의리가 간혹 의리 자체가 목적이 되어 博施濟衆을 망각한 明을 공격하라는 靑의 요구에 대해 의리를 지키며 다 같이 죽자고 항변한 김상헌은, 그 나름의 절의가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것은 부족함만 못 하며, 이 지나침이 과하여 결국엔 힘없는 민초들만 호란에 짓밟히지 않았던가?
적이 있었다 할지라도 이런 부정적인 일면만을 들어 긍정적인 유산 전체를 비평해선 안 된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할 기본적인 태도를 습득해야할 것이며, 이것은 시대가 변해도 큰 틀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義理를 그대로 현대에 이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은 만물을 모두 유기체로 보고, 그 안에서 각자 맡은 바를 찾아내었으며, 이 질서 속에서 조화를 도모하고, 조화로움은 大同을 모색하며, 大同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다.
오늘날 말세가 너무나 자주 人口에 오르내리는 것은 인간이 물질에 소외되고, 자유에 소외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人이 人에 대하여 固되어 個되어 버린 이 불행을 풀어낼 실마리는, 모두가 서로에게 은혜를 입었고, 은혜를 베푸는 존재라는 유가적 溫氣를 회복하는 데서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1.『論語』
2.『孟子』
3.『荀子』
4. 司馬遷,『史記列傳』
5. 최재석,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 현음사, 1994.
6. 이승환 김형철,『윤리질서의 융합』, 철학과현실사, 1996.
7. 김낙진, 『의리의 윤리와 한국의 유교문화』, 집문당, 2004.
8. 김낙진,「義理-공존과 공익을 위한 모색」,『조선유학의 개념들』, 2002.
9. 오석원,『한국도학파의 의리사상』, 유교문화연구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10. 이승환, 『유가사상의 사회철학적 재조명』,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8.
11. E. H. Car, “역사란 무엇인가”, 김택현 역, 까치글방,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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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1.25
  • 저작시기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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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9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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