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아테네_직접_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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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에서 파벌들 사이의 내적 투쟁의 강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이런 과정에서 도편추방제나 사형을 통해 정치적 적대자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려는 시도들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그 당시에 고대 도시국가들 중에서 지속적인 정치투쟁이 도시국가의 안정을 치명적으로 흔들지 못하도록 조정할 만큼 안정되있는 국가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도시국가들 사이에서는 첨예한 정치투쟁이 전개되었고, 과두정에서 민주정, 과두정에서 과두정 이런 식으로의 정치변동 또한 자주 일어났다. 나종석, 위 논문, p42
이러한 불안정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내부로 향하는 관심을 밖으로 돌리는 것, 즉 전쟁이었다. 그래서 그리스 도시국가들 사이의 전쟁과 그리스와 다른 지역 간의 전쟁도 빈번히 발생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아테네 민주정의 한계점은 노예제와 아테네 제국주의이다. 직접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민회나 법정에 나가서 자신의 시민권을 행사할 만한 경제적 역량과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노예와 아테네 제국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아테네의 구성원은 노예, 거류외인, 자유 시민으로 구성되어있엇고, 사회 구조의 맨 하부층을 형성하는 것은 노예였다. 아테네노예의 정확한 수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지만, 대체로 아테네 총인구에서 자유시민이 약 60%를 차지한다고 하면, 노예는 약 40%로 추정된다. 노예제는 아테네 경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제도의 정당성은 거의 모든 정치 사상가들에게 인정되었다.
그리고 아테네 민주정이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막대한 비용 지출이었다. 아테네인이 동맹국들로부터 그 많은 재정 수입을 확보하지 못했더라면 시민들에게 공무수당으로 제공할 자금이 충분치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하층민들의 정치참여는 배제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제국의 건설은 단순한 사치나 필요악이 아니라, 아테네 민주정에 필연적인 요소였다. 결국, 노예들과 아테네 제국은 고전기 아테네인의 민주정이 발전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였던 것이다. 김복래, 위 논문, p7
Ⅵ. 맺음말
아테네인들은 시민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지배받는 동시에 지배해야 한다는 수적 평등에 기초한 자유를 바탕으로 다수가 최상인, 즉 인민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지는 민주정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때의 자유는 법의 준수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법은 심사숙고의 비판적인 검토 과정을 통한 시민들의 자유로운 토의를 거쳐서 결정된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테네 시민들은 어떤 불합리한 자의에도 복종하지 않을 만큼 자유로웠지만 그 대신 그들은 법을 철저히 준수하였다.
우리는 아테네의 정치제도가 처음부터 위의 단락이 담고 있는 것처럼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 기초한 민주정이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테네의 정치제도가 처음부터 민주정으로 존재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아테네 역시 왕정과 귀족정, 참주정 등 다양한 정치제도를 거쳐 발전해 왔으며 그 아래에서 여러 지도자의 개혁을 통해 비로소 민주정이 정착된 것이다. 즉 솔론의 개혁을 통해 아테네 민주정의 핵심 제도인 500인회의 모태가 되는 400인회와 민중재판소가 만들어졌으며, 클레이테네스를 통해 아테네 민주정의 발전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되는 행정구역의 개혁이 단행되었다. 그리고 페리클레스가 도입한 급료제와 추첨제를 통해 가난한 시민들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정치참여의 기회가 돌아갈 수 있게 되어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직접 민주정치가 비로소 현실화되었다.
아테네의 시민들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현실정치에서 실현하기 위해 이렇게 오랜 세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으며 그 결과 완성된 민회와 500인회, 그리고 민중재판소와 같은 정치제도를 통해 모든 시민들이 직접 법안을 제안하는 행정관도 되고, 법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하기도 하며, 법안을 해석하고 합법성을 판단하는 배심원도 되었다. 이러한 아테네 시민들의 정치참여는 또 다시 그들이 중시한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사회에 재구현하는 기폭제가 되어 아테네라는 도시국가를 그리스 전역에서 가장 발달한 강대국으로 만들고, 아테네 정치가 황금기를 구가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결국 이러한 상호작용의 과정을 통해 아테네 민주정치 하에서 시민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여 개인적인 생활에 탐닉할 정도로 이기적이지 않게 되고, 동시에 아테네 민주주의는 개인의 사생활을 전적으로 부정하여 사회를 전일적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 이상적인 상태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에는 모든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기에 불가피하게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고 그들에게 정치를 일임하는 대의 민주주의가 채택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대표가 되어야 할 국회의원들과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할 대통령 그리고 행정 관료들은 오히려 그들의 잇속만 챙겨 그들을 믿고 뽑아준 국민들을 실망시켰고, 이러한 사태의 반복은 결국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를 외면하는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국민들이 외면해 버린 정치는 다시금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려는 무뢰배들에 의해 점령되어 더욱 썩어 빠지는 악순환의 연속일 뿐이다. 현대의 대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문제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든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함으로서 개인과 사회 간 긍정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국가가 발전하는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가 현재까지 매력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 참고문헌 ◆
H.D.F 키토,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박재욱 옮김, 갈라파고스, 2008
나종석,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제도의 이상과 현실에 대하여", 사회와철학연구회,「사회와 철학」8 (2004).
김경희, "데모크라티아(Demokratia)를 넘어 이소노미아(Isonomia)로", 한국정치학회,「한국정치학회보」40(5). (2007)
김복래, “아테네 민주주의와 시민권에 대한 고찰”, 한국유럽학회, 「유럽연구」,12 (2000)
◇ 참고사이트 ◆
민회 [民會], http://hagaram.pe.kr/sisa/%B9%CE%C8%B8.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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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1.03.14
  • 저작시기201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56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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