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한국사 속 인물의 조사 및 재평가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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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연개소문)한국사 속 인물의 조사 및 재평가 보고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한국사 속 인물 중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인물을 선정하고, 그 이유를 설명
2) 선정한 인물의 업적과 그에 대한 일반적 해석과 평가
3) 문항 2)에 대한 문제 제기와 자신의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과 재평가를 시도

Ⅲ. 결론

Ⅳ. 참고자료

(연개소문)한국사 속 인물의 조사 및 재평가 보고서

본문내용

성주 자리를 유지시킬 수밖에 없었다.
장군이었다. 양만춘 장군은 당나라 30만 대군에 맞서 관군민이 하나가 되게끔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했고, 결과적으로 수개월에 걸친 전투 끝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역사가들과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안시성 전투에서 당나라 30만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연개소문의 지략과 천리장성을 조기에 축조한 그의 탁월한 역량에 있는 것이다. 물론 역사가들은 안시성 사수에 있어 양만춘 장군의 노고를 높게 평가하고 있지만, 연개소문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낮기만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안시성에서 당나라 30만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나라 30만 대군에 맞서 관군민을 하나로 묶어 전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양만춘 장군의 리더십이었지 않았나 싶다. 이뿐만 아니라 천리장성 또한 연개소문의 업적이 아니라 당나라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하나로 16년간 장성 축조에 모든 것을 내던진 고구려민에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리장성 축조 당시 연개소문은 영류왕의 신하로서 직접적으로 장성 축조에 필요한 돌이나 나무 등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노동인력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에 국한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관리감독도 노동인력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천리장성 조기 완공에 따른 모든 성과를 관리감독자였던 연개소문에게 귀결시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다. 고구려 각 지역 성의 주둔군을 지역병력이 아닌 타 지역 병력으로 충당한 것이 과연 신의 한수 였을까?
역사가들은 쿠데타 이후 정권을 잡은 연개소문이 고구려 각 지역 성의 주둔군을 지역병력이 아닌 타 지역 병력으로 충당한 것이 결과적으로 고구려의 중앙집권화와 군사력 강화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고 있다. 출처-고구려사와 역사인식
그러나 또 다른 역사가들은 연개소문이 단지 정권취득 이후 불안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지방세력의 약화를 도모하기 위해 고구려 각 지역 성의 주둔군을 지역병력이 아닌 타 지역 병력으로 충당했다고 보고 있다. 나 또한 연개소문이 고구려의 군사력 강화를 위해 이와 같은 일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장기집권 야욕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고, 부가적 효과로 군사력 강화가 이루어진 것 뿐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연개소문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일반 사람들은 연개소문이 애국적 차원에서 각 지역 성의 주둔군을 지역병력이 아닌 타 지역 병력으로 충당했다고도 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평가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애국자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국가에서는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왕을 사랑하는 것이요, 왕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늘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즉, 나라는 곧 왕이었고, 왕은 곧 하늘(신)과 동일시 되었다는 것이다. 출처-고구려사 연구
앞서 언급한대로 연개소문은 천리장성 축조시에도 항상 쿠데타를 일으켜 영류왕을 죽인 이후 정권을 가로챌 궁리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보편적 도덕관과 가치는 ‘나라를 사랑하는 것, 나라 그 자체인 왕을 숭배하는 것, 왕을 신으로 존경하는 것’ 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각대로 연개소문이 애국자였다면 나라 그 자체로 신으로서 추앙받던 자국의 왕인 영류왕을 죽일 수 있었을까?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죽인 이후, 그의 시체를 토막내어 쓰레기 시궁창에 내던진 사람이다. 이것은 연개소문이 왕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왕을 증오하고 있었다는 것을 유추하게 하는 강력한 증거다. 이 때문에 나는 연개소문이 애국자라는 일반적인 평가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Ⅲ. 결론
아직까지 너무도 많은 우리나라 역사가들과 일반인들은 연개소문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다. 연개소문이 아무리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여러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할지라도 자신이 모시던 왕을 죽인 것은 결코 합리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연개소문이 고구려 역사에 있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고, 고구려 또한 우리가 계승해야 할 선조들의 고대국가였다는 점에서 역사가들은 그러한 연개소문을 결코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Ⅳ. 참고자료
고구려사와 역사인식 정호섭 저 | 새문사 | 2016.10.20.
고구려사 연구 노태돈 저 | 사계절 | 2003.06.25.
연개소문 (당나라와 자존심을 걸고 싸우다) 우리역사연구회 글 | 노명수 그림 | MLS | 2014.02.15.
  • 가격4,5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7.06.01
  • 저작시기2017.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27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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