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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이들의 노동이 단순히 ‘생존’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보다도 더욱 단순한 ‘체화된 노동의 현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환영성의 측면에서 봤을 때, 할아버지는 ‘생존’을 위해 소와 함께 노동을 했으며, 이는 할아버지와 소의 우정이라는 환영에 의해 관객들에게 가려져 신화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환영성은 관객의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리게끔 만들었고, 이 노동 속에는 현재의 정치적 마비상태ㆍ중립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을 파고들었던 것이 파시즘이고 <워낭소리>의 환영성을 추적하면 파시즘적 징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정치적 마비화가 진행될수록, 파시즘은 그 모습을 감춘 채 슬그머니 다가오게 된다. 위의 두 영화들의 이례적인 흥행 성공은 파시즘의 도래에 대한 분명한 경고이다.
이렇듯, 정치적 마비화가 진행될수록, 파시즘은 그 모습을 감춘 채 슬그머니 다가오게 된다. 위의 두 영화들의 이례적인 흥행 성공은 파시즘의 도래에 대한 분명한 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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