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리더십 연구 - 수령체계의 형성과 발전 김일성주의화 후계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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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정일 리더십 연구 - 수령체계의 형성과 발전 김일성주의화 후계자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대남 특수전을 수행할 부대를 강화하였다. 방탕한 생활, 병사들을 구타, 고문, 인민위원장 납치 등 이들의 만행과 당의 지시와 명령에 불복종한 반당행위가 드러났다. 결국 1969년 1월 인민군당 제4기 제4차 전원회의확대회의에서 군부내 숙청사건으로 처리되었다. 이 사건은 군에 대한 김일성의 절대적 신임에도 불구하고 군 내 당의 유일사상체계가 엉성했고, 당의 군에 대한 지도가 허술했음을 보여준다. 핵심 중추세력인 군에서 당지도의 거부, 군벌 관료주의의 형성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것이었고, 1967년 수령체제 확립 후 ‘수령의 군대화’를 거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은 “당의 군사로선을 엎는” 사건으로 보았고, 이 사건으로 항일빨치산 제2로군, 제3로군 계열이 몰락하고 제1로군 계열이 남아 김일성의 군대, 수령의 군대를 만드는 작업이 더욱 강화되었다.
2. 새로 알게된 김정일의 능력
김정일은 김일성의 후광으로만 당내 권위를 확보한 것이 아니라 1967년 이전부터 김일성의 노작과 교시를 중심으로 김일성주의에 대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정치 입문 초기에 발생한 박금철이효순 사건을 잘 처리해 당내 주목을 받게 된다. 김창옥허봉학 사건도 김영주를 도와 감시, 조사, 지도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김정일은 문학예술을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강력한 선전선동수단으로 보고 문학예술분야 지도를 자임하여 나섰다. 김정일은 영화를 당보의 사설과 같이 취급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고 당에서 직접 통제하였다. 김정일의 수령형상 문학예술작품에 대한 요구는 북한 문학예술의 근본지침이 되었다. 김정일은 특히 수령의 형상문제와 항일 혁명전통을 형상하는 것을 강조했고 1971년 혁명가극 <피바다>를 공연하며 그의 문학예술에 대한 성과를 인정받게 된다. 김일성의 동료 빨치산들에 대한 영웅화도 진행되고, 김일성의 탄생일을 가장 큰 민족적 명절로 맞이하며 북한 전역에 하나의 신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3. 의문점
김정일은 <70일전투>, <100일전투> 등 김정일식 경제건설 운동을 실행했다. 이 방식은 당조직사업을 경제건설사업과 밀접히 결합시키는 것으로, 계획에 미달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단기적으로 모든 물량과 노력을 투입해 경제수치상 성공적인 달성을 하는데, 당시에도 이러한 방식이 불만을 야기했다. 1974년에 <70일전투>, 75년, 78년, 80년의 <100일전투> 등에서 현장 경제선동이 광범위하게 행해졌는데, 이와 같은 동원식 경제발전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일종의 보여주기 위한 정치, 행정으로 볼 수 있다. 장기적인 효과가 없는 것을 아는 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선동이 수 회에 걸쳐 지속되었던 것이 인격화된 권력 때문인지 궁금하다.
Ⅳ. 평가
그 동안 수업을 통해 읽었던 책들은 70년대 이전 김일성 체제가 확고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책들이었으나, 이 책은 그 이후 후계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파악하였다는 점에서 주제의 독창성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제목과 형식이 바로 직전에 읽었던 이태섭의 『김일성 리더십 연구』와 비슷하며, 연구 방법도 잡지 『근로자』를 자료로 이용하는 등 많은 부분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김정일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있는데 이 책에서는 김정일이 단순히 김일성의 아들이기 때문에 후계자가 된 것이 아니라, 물론 김일성의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으나 김정일 자신의 노력과 능력이 컸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김정일에 대한 의도적 폄하, 격하 세력에 대한 반박을 하는 동시에, 북한이 그렇게 만만하게 운영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Ⅴ. 새로운 문제제기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
김정일은 김일성 생존 당시부터 후계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이에 반해 김정은은 후계체제를 구축할 시간적, 물질적, 사상적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에게 갑자기 중풍이 발병하고, 1990년대 후반부터의 경제 위기로 인해 영도력을 보여줄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이 부족했다. 또한, 김일성은 1912년 생이었고 김정일은 1942년 생인데 반해, 김정은은 1984년 생으로 추정되어, 후계체제 구축을 위해 김정일이 바로 옆에서 무언가를 지도하고 가르치기에는 김정은이 너무 어렸던 것도 문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일과 같은 안정된 후계체제가 결여된 상태에서 김정은 정권이 얼마나 안정화되어 있을지 지금은 밖에서 가늠하기 어렵지만, 향후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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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9.02.09
  • 저작시기2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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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08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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