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이순신 (이순신 이순신 생애 업적 성장배경 장단점 리더십 리더십이 적용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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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불멸의 이순신 (이순신 이순신 생애 업적 성장배경 장단점 리더십 리더십이 적용된 사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 생애
- 업적
- 성장배경

Ⅱ. 필사즉생 필생즉사
- 진충보국, 멸사봉공의 자세에 이순신 장군의 장점과 단점
- 이순신이 발휘한 리더십
- 이순신의 리더쉽이 적용된 사례


Ⅲ. 결론
- 본받을 점
- 명언

▶ 참고자료

본문내용

를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때문에 올바른 역사기록을 남긴 인물들은 후대 사람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선물을 하는 셈이다.
이순신 장군은 무관임에도 이러한 선물을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한 사람이다. 장군은 임진왜 란이 발발한 1592년부터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직전까지 약 7년간 진중에서 직접 일기를 기록하였다. 이렇게 기록된 난중일기와 임진왜란 해전상황을 아뢰는 장계초안인 임 진장초는 유성룡의 징비록, 선조실록과 함께 임진왜란 3대 고전으로 알려져 있다. 사투를 넘나드는 전쟁 속에서 장수가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놀 라운 기록정신을 가진 장군은 이렇게 훌륭한 기록을 남겨 주었다.
난중일기에는 진중 일기답게 전라좌수영 및 통제영의 군영생활, 여러 해전의 군사전략과 해전상황기록, 당시 조선 사회의 모습 등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장군의 감정과 생각이 담백하게 기록되어 있어 인간 이순신의 사상과 면모를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최고의 자료가 되고 있다.
나라사랑, 백성사랑
32세에 무관의 길에 들어선 이순신 장군은 국토수호 및 나라사랑에 일생을 헌신하였다. 계 급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변방의 작은 관직에 있을 때에도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 하였 으며, 임진왜란 발발 이후에는 조선수군의 수장으로서 나라의 바다를 목숨 걸고 지켰다.
일촉즉발의 긴장이 감도는 치열한 전쟁 속에서도 장군은 항상 백성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였 으며, 어려움에 처한 백성들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여기며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이 러한 장군의 모습은 난중일기를 비롯한 여러 관련 기록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 명언 >
● 나보다 백성을 먼저 생각하다.
백성의 쌀을 어찌 받을 것인가
아침에 고을 사람들에게 밥을 얻어먹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종들에게 매를 때리고, 밥 지은 쌀을 다시 돌려주었다.
『난중일기』, 1597년 6월 3일
● 차마 듣지 못할 백성들의 신음소리
맑았지만 바람이 크게 불고 몹시 추웠다. 각 배에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사람들이 거북이처럼 웅크려서 추위에 신음하는데, 차마 듣지 못하겠다. 군량미조차 도착하지 않으니 더욱 괴롭다.
『난중일기』, 1594년 1월 20일
● 부끄러울 일을 애당초 멀리하다
밤 9시쯤 영등포 만호가 그의 어린 딸을 데리고 술을 가져왔다고 했지만, 나는 그를 보지 않았다. 밤 11쯤 돌아갔다.
『난중일기』, 1596년 3월 23일
● 처참한 현실 앞에 고뇌하는 이순신 장군
일찍 죽는 것만 못하다
일찍 길을 나서며 어머님 영전에 울며 하직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에 어찌 나와 같은 일이 있겠는가? 일찍 죽는 것만 못하다.
『난중일기』, 1597년 4월 19일
● 마음 놓고 통곡하지도 못하다
나는 내일이 막내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나흘째인데도 마음 놓고 통곡하지도 못했다.
『난중일기』, 1597년 10월 16일
● 장수들의 교만을 경계하다
자주 이기면 반드시 교만해진다. 여러 장수들은 그것을 조심하라.
『충민사기』 여러 차례의 해전을 승리로 이끈 후 장수들에게
● 먼저 간 부하의 혼을 위로하며
윗사람을 따르고 상관을 섬기는 데 있어서 그대들은 그 직책을 다했지만, 부하를 위로하고 사랑하는 데 있어서 나는 그 덕이 모자랐다. 그대들의 혼을 한자리에 부르니 차린 제사 함께 받으시게나.
『제사망군졸문』 1595년 7월 14일 그해 전사한 군졸들을 제사 지내며
●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용인술
적의 기세가 맹렬히 뻗쳐서 국가가 위급한데, 어찌 다른 도의 장수라고 핑계를 대고 물러나서 자기 경계만 지키고 있을 수 있겠는가? 내가 시험 삼아 물어본 것은 먼저 여러 장수들의 의견을 들어보려는 것이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오직 나아가서 싸우다가 죽는 것이다. 감히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목을 베야 마땅할 것이다.
『이충무공 행록』 1592년 4월 16일 각 도의 장수들을 모은 자리에서
●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
우리들이 함께 임금의 명을 받았으니, 의리상 죽고 사는 것을 같이 함이 마땅하다. 나라가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어찌 한 번 죽는 것이 애석하겠는가? 오직 충의에 따라 죽는다면, 죽어도 또한 영광이 있을 것이다.
『충민사기』 1593년 7월 명량해전을 앞두고 장수들에게
● 싸우다 우리 땅에서 죽는 것이니 괜찮다
주상께서 의주로 가 계시는데, 평양성에 있는 적들이 만약 또 서쪽으로 돌격해 간다면 어가가 장차 바다를 건너가려 할 것이다. 나의 직책상 마땅히 배를 가지고 바다로 나가 어가를 맞이해야 한다. 하늘이 중국까지 망하게 하지 않는 한, 거듭해서 회복을 도모할 것이다. 비록 그런 불행한 지경에 이르더라도 임금과 신하가 우리나라의 땅에서 함께 죽는 것이니 괜찮다. 또한 내가 죽지 않는다면 적들은 결코 감히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이충무공 행록』 1592년 9월 1일 정미 500섬을 한 데 쌓아놓고 봉하며
●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습니다.
임진년으로부터 5~6년 동안 적들이 감히 전라도와 충청도로 바로 돌격하지 못한 것은 수군이 그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남아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서 항거해 싸운다면 오히려 해볼 만합니다. 지금 만약 수군을 전부 없애버린다면 이는 적들이 다행으로 여기는 것이며 호남을 통해 한강까지도달할 것이니, 이는 신이 걱정하는 것입니다. 전선의 수는 비록 적지만 미천한 신이 죽지 않는 한, 적들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충무공 행록』 1597년 9월 7일 명량해전을 앞두고 조정에 보낸 장계
● 오늘은 진실로 죽기를 결심했습니다
오늘은 진실로 죽기를 결심했습니다. 하늘에 바라오니 반드시 이 적들을 섬멸하게 하소서. 이 원수들을 없애버릴 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을 것입니다.
『이충무공 행장』 노량해전 전날인 1598년 11월 18일 하늘에 축원하며
▶ 참고자료
- http://cafe.naver.com/bohunstar/23883
- 역사 에듀 한국사 읽기 (http://donjaemi.tistory.com/374)
- 네이버 지식인
- 책 ‘이순신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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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9.03.10
  • 저작시기201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86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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