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향수의 시인 정지용) 답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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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인(향수의 시인 정지용) 답사 보고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정지용의 출생
2. 정지용의 생애
3. 정지용의 시의 특징
4. 정지용 문학관
5. 정지용 생가
6. 답사를 마치면서

본문내용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 하는 문우회에서 만든 <휘문>창간호의 편집위원이 됨. 휘문고보의 교비생으로 일본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에 입학함
1924(23세) 시 <석류><민요풍 시편>을 씀
1925(24세) <새빨간 기관차><바다>등을 씀
1926(25세) <학조>창간호에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 <신민><문에시대>에 <홍춘> 등 3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활동이 시작됨1927(26세) <뻣나무 열매><갈매기> 등 7편의 시를 교토와 옥천을 오가며 씀. <신민><문에시대><조선지광><청소년><학조>지에 <갑판우><향수> 등 30여 편의 시를 발표함
1928(27세) 장남 구관 출생(음력 2월) <동지사문학>3호에 일어시(日語詩) <馬12>를 발표함
1929(28세) 도시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함. 그 해 9월 모교인 휘문고보 영어과교사로 부임하고 부인과 장남을 데려와 종로구 효자동에 자리잡음. 12월에 시 <유리창>을 씀
1930(29세) 시문학동인으로 참가, 1930년대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됨. 동인으로는 박용철, 김영랑, 이하윤 등이 있음. <조선지광><시문학><대조><신소설><신생>지에 <겨울><유리창> 등 20여 편의 시와 역시(譯詩)<소곡(블레이크 원작)>등 3편을 발표함
1932(31세) <신생><동방평론><문예월간>지에 <고향><열차> 등 10편의 시를 발표함
1933(32세) 삼남 구인 출생 6월에 창간된 <가톨릭 청년>지의 편집고문을 맡으며 ,해협의 오후 2시 등 8편의 시와 산문, 소묘123을 발표함
1934(33세) 종로구 재동으로 이사하고 장녀 구원 출생. <가톨릭 청년>지에 <다른 한울><또 하나 다른 태양> 등 4편의 시를 발표함
1935(34세) 첫 시집 <정지용 시집>을 시문학사에서 출간함, 거의 발표되었던 작품 89편으로 수록됨. <가톨릭청년><시원><조선문단>지에 <홍역><비극>등 8편의 시를 발표함
1936(35세) 서대문구 북아현동으로 이사. 북아현동 자택에서 부친 돌아가심(음력 3월)<조광><소년>지에 <옥류 동><별똥이 떨어진 곳>을 발표함
1938(37세) <동아일보><조선일보><삼천리문학><여성><조광><소년><삼천리><청색지>에 산문 <꾀꼬리와 국화>, 산문시 <슬픈우 상><비로봉>, 평론 <시와 감상>, 그 외 수필 등 약 30여 편을 발표하는 한편 블레이크와 휘트먼의 시를 번역하여 최재서 편(編)의 <해외서정시집>에 수록함. 한편으로는 천주교에서 주관하는 <경향잡지>를 돕는 등 문필활동이 가장 왕성했던 한 해임
1939(38세) 문장지의 시 부문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킴. 이태준은 소설부문을 맡았음. <동아일보><박문><문장><학우구락부><휘문>지에 <수산12><백록담>들 7편의 시와 <시의 옹호><시의 언어>등 5편의 평론, 시선후평(詩選後評) 및 수필 등을 발표함
1940(39세) <여성><태양><문장><동아일보><삼천리>지에 기행문 <화문행각(畵文行脚)>과 서평 및 시선후평과 수필, 시 <천주당>등을 발표함
1941(40세) <문장>22호 특집으로 ,조찬><진달래> 등 10편의 시가 특집으로 실림. 둘째 시집 <백록담>이 문장사에서 발간됨
1944(43세) 제 2차대전의 말기에 이르러 서울 소개령으로 부천군 소사읍 소사리로 이사함
1945(44세) 해방과 함께 휘문중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 이화 여자대학교)교수로 옮겨 한국어와 라틴어를 강의함
1946(45세) 다시 서울의 성북구 돈암동으로 이사함(46세). 6월에 <지용시선>이 을유문화사에서 나옴. <정지용시집>과 <백록담>에서 <유리창> 등 25편을 지용 자신이 가려 뽑아낸 것임. 경향신문사 주간으로 옮김. 조선문학가동맹의 아동분과위원장으로 추대되었으나 본의가 아니었으므로 활동한 일은 없음
1947(46세) 경향신문사의 주간직을 사임하고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복직.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강사로도 출강.「시경」을 강의함. <경향신문>에 <청춘과 소년> 등 7편의 역시(휘트먼 원작)와 <사시안의 불행>등 시문과 수필을 발표함
1948(47세) 이화여자대학교를 사임하고 녹번리초당(현재 은평구 녹번동)에서 서예를 하며 소일함 박문출판사에서<문학독본>이 나옴(2월). <사시안의 불행>등 37편의 시문, 수필, 기행문 등이 수록됨
1949(48세) <산문>이 출간됨(3월). 시문,수필, 역시(휘트면) 등 55편이 수록됨
1950(49세) <문예>지에 <곡마단><사사조오수(四四調五首)>를 발표함(2월). 6ㆍ25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로 끌려가 구금됨. 정인택, 김기림. 박영희 등과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가 평양감옥으로 이감. 이광수, 계광순 등 33인이 함께 수용되었다가 그 후 폭사 당한 것으로 추정
1971 부인 송재숙 70세를 일기로 별세
1982 장남 구관과 조경희, 송지영, 이영도, 모윤숙, 김동리, 김춘수, 정비석, 김정옥, 방용구, 한갑수, 박화성, 최정희. 박두진, 조풍연, 윤석중, 백 철, 구상, 이희승, 양명문, 서정수, 피천득, 이봉구, 이헌구, 김팔봉, 김갑순, 유종호, 이숙례, 이봉순, 문덕수, 백낙청, 노기남, 황동규, 황경운, 김현자, 김정한, 김지수, 안석자, 이선근, 김학동 등 48명의 문인과 각계인사들이 납북 후 묶여있었던 정지용 문학의 회복운동을 시작함
1988 3월31일 정지용의 문학이 해금됨. 4월 지용회 결성. 초대회장 방용구. 5월 15일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제 1회 지용제를 지냄 6월 25일 고향인 옥천의 관성회관에서 다시 지용제 개최 이후 16회를 이어옴
1989 지용시문학상 제정. 제1회 수상자 박두진, 2회 김광균, 3회 박정만, 4회 오세영, 5회 이가림, 6회 이성선, 7회 이수익, 8회 이시영, 9회 오탁번, 10회 유안진, 11회 송수권, 12회 정호승, 13회 김종철, 14회 김지하, 15회 유경환
1997 제2대 회장 이근배
2002 5월 정지용 탄신 100주년 서울지용제 및 지용문학심포지움 개최함
2003 이 달의 문화인물 (5월)로 선정 기념 서울지용제 및 지용문학 심포지움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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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3.13
  • 저작시기2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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