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현장을찾아서 - 서대문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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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의현장을찾아서 - 서대문형무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 론
2. 본 론
(1) 대상 선정의 동기
(2) 사전 준비, 진행과정을 간략하게 소개
(3) 현장에서 새롭게 느끼거나 알게 된 내용
(4) 오늘날 그 현장이 지니는 의미
3. 결 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 현장에서 ‘고문’ 이나 ‘잔인함’을 뛰어넘어 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고발의 의미만 담고 있다. 하지만 서대문형무소는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1987년까지 수감자가 있었던 점을 강조해야 한고 생각한다. 그래야 ‘서대문형무소’로써 지니는 의미가 더 강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서대문형무소는 한국근현대사의 중요인물들이 투옥 되었던 곳이다. 일제에 저항하기도 했지만 독재에 저항한 사람들 역시 투옥 된 공간이다. 일제의 만행도 잔인하고 끔찍하지만 독립된 후에 이어진 독재의 만행 역시 역사적 공간으로써 보존하고 교육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성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3. 결 론
순수한 역사적 교훈의 장으로서 서대문형무소를 보존하려 했다면, 2차 세계대전 때 4백여 만 명의 유태인, 폴란드인이 학살된 인류최대의 비극의 현장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그러했듯이 원형보존의 형태를 유지해야 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의도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의 건물이 부분적으로 철거된 자리는 서대문 독립공원의 일부가 되었다. 보안과 청사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공작사는 체험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이용되고 있다. 또한 형무소가 다양한 이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역사관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양병일, 「서대문형무소의 상징 읽기」, 73쪽 참고
게다가 서대문형무소는 1987년도까지 ‘서울 수감소’로써 역할을 하고 있었던 장소이다. 이 감옥에는 많은 독립투사들도 투옥 되었지만 민주주의투사들도 투옥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재 서대문형무소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저항’했던 ‘독립투사’들에 관련한 역사적 자료들밖에 남아 있지 않다. 장소가 담고 있는 역사는 그보다 훨씬 더 깊고 훨씬 더 길다. 살아 있는 역사 현장이라면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앞으로 원형을 되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야 역사현장의 진정성이 살아 날 것이라 생각한다.
4. 참고문헌
김정동, 「마이너스 문화유산 \'서대문형무소\' 다시 찾기」, 『: 한국건축역사학회 2014년 추계학술발표대회 논문집』, 한국건축역사학회, 2014.
양병일, 「서대문형무소의 상징 읽기」
  • 가격2,4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9.05.19
  • 저작시기2019.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99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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