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현장을찾아서 ) 역사현장을 찾아 현장을 상세히 묘사하고 그 역사성을 찾아볼 것(서대문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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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의현장을찾아서 ) 역사현장을 찾아 현장을 상세히 묘사하고 그 역사성을 찾아볼 것(서대문형무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대상 선정의 동기
(2) 사전 준비 과정 및 진행 과정
(3) 알게 된 내용
(4) 의의 및 감상

3. 결론

본문내용

덕분에 살아갈 수 있게 된 후손인 우리는 엄숙해졌다. 서대문형무소는 역사책의 뒷편 속에 애국지사들의 고통스러웠던 최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일제에 굴복하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에 그 의의가 있다. 그런 모습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하여 서대문구에서 역사관으로 운영하고 있는 점 또한 매우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또 그렇게 누군가가 목숨 바쳐 지키려했었던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생겨났고, 우리나라를 잘 지키는 것이 그들의 후손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업보라는 것을 깨달았다.
3. 결론
본고는 역사현장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서대문 형무소 답사 후 작성한 답사보고서이다.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소되어 1945년 해방까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1987년까지 서울 구치소로 이용되면서 민주화 운동 관련 인사들이 수감되는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안고 있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일제강점기하의 애국지사들이 수감되어 고문을 당했던 곳이 바로 서대문형무소이다. 그들의 희생과 고통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 곳을 답사 대상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 들어가면 우선 사형장을 볼 수 있다. 이 건물은 일제가 1923년에 지은 목조건물로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된 애국지사들이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 후 사형이 집행된장소이다. 사형장 입구의 삼거리에 하늘 높이 외롭게 자라고 있는 한 그루의 미루나무는 사형장으로 들어가는 사형수들이 붙들고 잠시 통곡했다고 하며, 이 미루나무는 사형수들의 한이 서려 잘 자라지 않는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담장마루는 투옥자들의 탈옥을 막고,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설치했던 담장과 망루의 일부를 원형대로 보존한 것이다. 1907년에 담장올 설치할 때 나무기둥에 함석을 붙였으나, 현재의 붉은 돌담은 1923년에 설치하였다. 망루는 6개소 중 2개소만 원형대로 보존하였는데,8면에 감시창이 설치되어 있고 높이는 10m이다. 정문의 망루는 1923년에 설치하였으며, 뒷 쪽의 망루는 1930년에 설치한 것이다.
서대문형무소는 유관순, 김구, 강우규를 비롯해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갇히거나 사형당한 곳이다. 서대문형무소는 역사책의 뒷편 속에 애국지사들의 고통스러웠던 최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일제에 굴복하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에 그 의의가 있다. 또 그렇게 누군가가 목숨 바쳐 지키려했었던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생겨났고, 우리나라를 잘 지키는 것이 그들의 후손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업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출처 및 참고문헌
식민지의 억압과 한이 서린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북한연구소, 2008
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 홈페이지
양병일, 서대문 연구소의 상징 읽기, 사회과 교육, 2006
박상표. (2005). [역사기행자료] 서대문 형무소와 강화도. 전남대학교 세계한상문화연구단 국제학술회의, , 155-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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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09.06
  • 저작시기2018.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6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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