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무관한 폭력의 일종이다. 그러나 법적인 질서는 결국 힘의 복합체들 사이의 투쟁에 사용되는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이는 모든 투쟁을 종결지으려는 시도는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투쟁을 종결짓는 것은 바로 삶의 본질에 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죄-
죄의식의 근원은 사회적 현실 자체와 사회가 개인의 자연적인 본능과 충동에 부과한 야만적인 강제에 있다.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느끼는 인간들은 사회적인 존재들이다.
니체는 “밖으로 발산되지 못한 본능은 안으로 향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사회가 거칠고 자유롭게 방황하는 사람들의 본능에 대항하여 자신을 보호하는데 성공하였을 대 바로 이러한 본능들은 문명화된 인간들에 다시 대항하여 내면으로 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들이 사회적 강제 때문에 다른 사람에 다한 적대감과 잔인함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이들은 자기 자신에 반대되는 것들을 드러내게 되었다. 개인은 자신이 여전히 이러한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할 필요가 있는 감정들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러한 자유를 향한 본능은 폭력에 의해서 잠재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이 자유를 향한 본능은 억눌리고 뒤로 물러나고, 내면의 세계로 유폐되어 결국 오직 자기 자신에게로만 발산되고 드러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오직 이것이야말로 바로 양심이 가책의 출발점인 것이다.
자유를 향한 본능은 또한 니체가 “힘에의 의지”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자신의 힘을 발산하려고 한다.” 힘에의 의지는 고통을 일으킴으로써 자신이 쾌을 얻는다는 사실 때문에 다시 고통스러워하는 자신과는 분열된 영혼을 창조 하였다. 자신에게 잔인하게 대함으로써 기쁨을 얻는다는 사실 때문에 다시 고통을 받는 이러한 영혼이야말고 무리의 도덕을 정의하는 모든 가치들의 모든 비이기적인 것의 근원이 된다.
결국 죄의식은 신 앞에서의 죄로 변하게 된다. 인간의 의지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무가치함을 분명하게 확인하기 위하여 하나의 이상 죽 성스러운 신이라는 이상을 세운다. 바로 여기서 힘에의 의지는 궁극적으로 가장 왜곡된 형태로 표현된다.
-금욕주의적 이상들-
금욕주의적 이상들은 도덕적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공평무사, 자기 부정, 검소, 세속적인 것을에 대한 무관심, 관능적인 것들의 거부, 정신적인 것들의 존중, 청빈, 겸손, 순결등을 포함한다. 이런 덕들과 태도들이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는 개인에게 중요한가에 대한 니체의 대답은 도덕주의자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성과를 거둔, 창조적인 정신의 소유자들이 오직 자신들의 정신적인, 창조적인 활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금욕주의적 이상을 추구하였다고 니체는 생각한다.
-금욕주의적 성직자-
금욕주의적 성직자들은 삶을 부정하는 것을 이상적인 삶의 형태로 추천한다. 금욕주의적 삶에 있어 원한과 양심의 가책은 외부로부터 삶을 완전히 지배하며, 삶 자체를 짓누르며, 삶을 부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성직자들은 우리에게 잠시 살
-죄-
죄의식의 근원은 사회적 현실 자체와 사회가 개인의 자연적인 본능과 충동에 부과한 야만적인 강제에 있다.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느끼는 인간들은 사회적인 존재들이다.
니체는 “밖으로 발산되지 못한 본능은 안으로 향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사회가 거칠고 자유롭게 방황하는 사람들의 본능에 대항하여 자신을 보호하는데 성공하였을 대 바로 이러한 본능들은 문명화된 인간들에 다시 대항하여 내면으로 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들이 사회적 강제 때문에 다른 사람에 다한 적대감과 잔인함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이들은 자기 자신에 반대되는 것들을 드러내게 되었다. 개인은 자신이 여전히 이러한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할 필요가 있는 감정들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러한 자유를 향한 본능은 폭력에 의해서 잠재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이 자유를 향한 본능은 억눌리고 뒤로 물러나고, 내면의 세계로 유폐되어 결국 오직 자기 자신에게로만 발산되고 드러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오직 이것이야말로 바로 양심이 가책의 출발점인 것이다.
자유를 향한 본능은 또한 니체가 “힘에의 의지”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자신의 힘을 발산하려고 한다.” 힘에의 의지는 고통을 일으킴으로써 자신이 쾌을 얻는다는 사실 때문에 다시 고통스러워하는 자신과는 분열된 영혼을 창조 하였다. 자신에게 잔인하게 대함으로써 기쁨을 얻는다는 사실 때문에 다시 고통을 받는 이러한 영혼이야말고 무리의 도덕을 정의하는 모든 가치들의 모든 비이기적인 것의 근원이 된다.
결국 죄의식은 신 앞에서의 죄로 변하게 된다. 인간의 의지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무가치함을 분명하게 확인하기 위하여 하나의 이상 죽 성스러운 신이라는 이상을 세운다. 바로 여기서 힘에의 의지는 궁극적으로 가장 왜곡된 형태로 표현된다.
-금욕주의적 이상들-
금욕주의적 이상들은 도덕적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공평무사, 자기 부정, 검소, 세속적인 것을에 대한 무관심, 관능적인 것들의 거부, 정신적인 것들의 존중, 청빈, 겸손, 순결등을 포함한다. 이런 덕들과 태도들이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는 개인에게 중요한가에 대한 니체의 대답은 도덕주의자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성과를 거둔, 창조적인 정신의 소유자들이 오직 자신들의 정신적인, 창조적인 활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금욕주의적 이상을 추구하였다고 니체는 생각한다.
-금욕주의적 성직자-
금욕주의적 성직자들은 삶을 부정하는 것을 이상적인 삶의 형태로 추천한다. 금욕주의적 삶에 있어 원한과 양심의 가책은 외부로부터 삶을 완전히 지배하며, 삶 자체를 짓누르며, 삶을 부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성직자들은 우리에게 잠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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