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와논술E]올 해 한 성전환 여성이 숙명여대에 정시 합격하였으나, 일부의 입학반대 움직임과 증오발언 등으로 인해 부담을 느낀 해당 합격생이 등록을 포기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정하여 지시사항에 따라 논술 - <우리사회 성소수자(트랜즈젠더)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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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상읽기와논술E]올 해 한 성전환 여성이 숙명여대에 정시 합격하였으나, 일부의 입학반대 움직임과 증오발언 등으로 인해 부담을 느낀 해당 합격생이 등록을 포기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정하여 지시사항에 따라 논술 - <우리사회 성소수자(트랜즈젠더)의 현주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 <우리사회 성소수자(트랜즈젠더)의 현주소>

1. 숙명여대에 정시 합격하였으나, 일부의 입학반대 움직임과 혐오발언
2. 숙명여대 성전환 합격자 “입학 포기하겠다.”
3. 법리적 해석
4. 트렌스젠더와 레디컬 페미니즘(radical feminism)
5. 과잉대표 되는 ‘혐오’

Ⅲ. 결 론

[참고 자료]

본문내용

생각에)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고 여겨지던 사회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보전 받고, 성 평등을 최대화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여자는 여자로 태어났으니 이래야 해.’라는 구호에 대해 자신들의 정체성이 이런 보수적이고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정의되는 것을 바꾸고자 했던 것 아닌가?
하지만 이들이 A를 향해 퍼붓고 있는 주장은 마치 ‘넌 원래 남자였으니까 이래야 돼(오지 말아야해)’라고 말하는 듯하다.
결국 자신들이 그렇게 반대해왔던 발상을 이용하여 사회적 약자를 매몰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분명 남녀차별, 여성인권, 여성억압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은 의견이 아니라 펙트이다. 그런데 이번에 숙대 성전환 합격자를 대하는 페미니즘 계열의 반응은 남자들이 여성들에게 해왔었던 차별, 억압을 그대로 엑티브하게 트렌스젠더 여성에게 가한 것이었다.
또한 페미니스트 계열 여대생들이 트렌스젠더 여성에 가한 혐오와 차별에 정당성을 부과하면 그 논리에 따라서 인종차별주의와 나치도 정당성을 얻게 되며, 결국엔 여성 차별도 정당성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즘이 지지를 받을 수가 있을 것인가를 묻고 싶다.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트렌스젠더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는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왜 페미니즘을 지지해야 하는가? 라는 강한 의문이 든다.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에 정착하면서 가장 강조되었던 단어는 바로 ‘공감’ 이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한 이해를 멈추어버렸다. ‘트랜스젠더’라는 미지의 영역에 앞에서. 왜일까?
내 일이거나 친구의 일일 확률, 혹은 아주 먼 지인의 일일 확률마저도 지극히 낮기 때문인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5. 과잉대표 되는 ‘혐오’
나는 관련기사에서 동의할 만한 근거를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숙명여대를 “두 쪽 난 여대”라고 표현한 기사 제목에 동의할 수가 없다.
상식적이고 경험적인 추론을 동원해서 ‘가정’해서 기사 제목을 썼더라도 나는 그 기사 제목의 틀짓기(프레임)를 우려한다.
그 제목은 마치 성전환자의 입학이 ‘찬반 토론’이 가능한 ‘정책적 선택’, ‘철학적 판단’의 문제인 것처럼 설정하여 마치 ‘혐오’를 선택가능한 철학적이거나 정책적인 ‘입장’인 것처럼 독자가 착각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그 제목은 ‘혐오(세력)’를 과잉 대표하는 효과를 만들어 그런 혐오가 널리 사회적으로 세력을 가진 것처럼 인식하게 하고, 그리하여 그런 혐오집단의 구성원으로 하여금 그런 혐오가 자신의 권리인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트랜스젠더는 서로 입장을 두고서 토론해야 하는 철학적이거나 정책적인 판단 문제가 아니다.
단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A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자행하는 일부 학생들은 스스로 젠더 평등주의자 혹은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면서도 트렌스 젠더에게 만큼은 옹졸한 주장을 내세우며 입학을 거부하고 있다.
‘트랜스젠더 반대’는, 진심으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혐오와 증오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것은 스스로 자신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며, 그런 이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페미니즘이 모두를 끌고 갈 수는 없다.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지... 그러나 내 밥그릇 챙기겠다고 ‘혐오’의 이름으로 다른 소수자의 밥그릇을 빼앗는다면, 문제가 생긴다.
개인적으로 그 행위가 과연 내 밥그릇을 지키겠다고 행하는 것인지 조차도 의문스럽지만.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권리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또 다른 소수자를 혐오한다면, 인권 운동으로서 올바른 방향이라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귓가에 맴돈다.
“우리 기준으로 회원을 받지 않겠다는 건데 왜 제 3자가 나서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묵인하고 넘어간다면 가정폭력이 난무하는 가정, 아이가 부모에 의해 피를 흘리고 쓰러진 모습의 가정을 봤어도 ‘우리 집 일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방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고작 ‘한 두 명의 문제’라고 넘어갈 문제인가?
‘내 주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며 신경 끄고 말 일인가?
그들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도...
Ⅲ. 결 론
우리 사회는 아직 제3의 성에 대한 인식조차도 완전히 정립되어있지 않고, 이들에게 엄격한 사회적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아직은 보수성이 강한 사회다.
이러한 사회적 특수성 속에서, \'20년간 ‘남성’으로 살아온 ‘여성’이, 여성만 다닐 수 있는 대학교에서 본인들과 함께 생활할 것을 지켜 봐야하는 숙명여대생으로선 A에 대해 상대적 이질감과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공감을 살 만한 주장이다.
찬성하는 측은 인권적인 부분에서 당연히 트렌스젠더의 의견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반대하는 측은 아무리 그래도 이전에 남자였기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진다.’ ‘께름칙하다.’ 라는 의견으로 반대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군인 변희수씨가 휴가 중에 성전환 수술을 하여 비슷한 사건을 겪었었다.
일단은 둘의 의견은 다 이해가 가지만, 최근 개개인을 존중하는 문화가 확산되는 가운데서 트렌스젠더 역시 본인들이 원하는 성별이 있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다르지 아니함으로 그들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대생, 나아가 여자입장에서 불편할 수 있지만, 여성에게 존재하는 유리천장과 같이 트랜스젠더들에게 그러한 벽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을 여성가족부에서 여성의 인권신장 뿐만이 아니라 성소수자들을 위해 인식 개선 등에 앞서 힘써 여성들의 인식이 바뀐다면, 트랜스젠더들도 원하는 성별로서 사회적으로 차별받지 않고 활동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개인이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서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인식의 전환을 통해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이 본인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참고 자료]
이상문, 우울한 성소수자, 정미소, 2019
바보프로젝트TEAM, 성소수자+성별정체성, 유페이퍼, 2015
강병철, 백조연 외 3명, 성소수자_LGBT(Q), 알마, 2018
제프리 디스티 크로익스, 계급-소외-차별, 책갈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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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0.04.02
  • 저작시기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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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128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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