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 종교개혁 발생배경과 성공요인 및 본질과 내용분석과 종교개혁 결과 및 영향과 비판 및 나의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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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루터 종교개혁 발생배경과 성공요인 및 본질과 내용분석과 종교개혁 결과 및 영향과 비판 및 나의의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루터의 종교개혁 개요

2. 루터의 종교개혁 발생배경

3. 종교개혁 진행과정

4. 루터의 종교개혁 성공요인

5. 종교개혁의 본질과 내용

6. 루터의 사상연구

7. 캘빈주의와 반동종교개혁에 대해

8. 종교개혁으로 인한 결과 및 영향

9. 루터 종교개혁에 대한 비판

10. 결론 및 나의의견

<참고문헌>

본문내용

두 정부론을 주장하였다. 루터의 두 정부론에 따르면 세속 국가의 규칙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기독교도는 이에 반항하여서는 안 된다. 그는 이러한 논리로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아 발발한 농민전쟁 당시, 그를 지지하던 민중들의 뜻을 저버리고 제후들이 농민군을 과격하게 진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는 민중들의 지지를 잃었지만 제후들의 지지를 계속 확보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루터는 가톨릭교회가 부패와 타락을 자정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세속 제후들이 종교 개혁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루터파로 개종한 세속 제후국에서는 국가의 주도로 종교 개혁이 단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세속 제후들은 가톨릭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자신이 감독하는 새로운 루터파 교회를 세웠다. 이에 루터파 제후들의 국가에서 수립된 ‘국가에 의한 교회 정부’ 구조에서 제후들의 권력은 종교개혁 이전보다 증대되었다. 이러한 세속적 이해관계는 많은 제후들이 루터파로 개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개혁의 진행과정은 루터 자신의 사상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루터의 두 정부론은 하느님의 국가와 세속의 국가는 별개의 영역이며, 세속의 국가는 믿음의 영역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위해 세속 제후들의 개입을 지지하였을 뿐 아니라, 작센의 ‘국가에 의한 교회 정부’가 종교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러한 루터의 모순적인 태도는 루터가 상당히 정치적인 인물이었으며, 종교개혁 과정에서 세속적 권력과 결탁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버릴 수 없게 한다.
한편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을 통하여 멜란히톤이 시도했던 루터파와 가톨릭교회와의 타협이 실패로 돌아가자, 루터는 <사랑하는 독일인들에 대한 마르틴 루터 박사의 경고>를 통해 황제가 루터파를 무력으로 억압한다면 황제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루터의 주장은 농민전쟁 당시 그가 세속의 국가에 반항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조를 내세워 농민들의 무력 폭동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과 비교해 보면 매우 이율배반적이다.
루터의 이러한 이율배반적 태도는 그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충실했던 인물임을 잘 보여준다. 사실 그는 보름스 국회에서의 연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독선적일 정도로 자신의 신념이 확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농민전쟁에서는 농민들에 맞서서, 종교전쟁의 위기 속에서는 황제에 맞서서 자신을 비호하는 제후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러한 그의 이율배반적 태도는 자신을 비호해 주는 세력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관적일 것이다.
결국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을 지지하는 제후국과 도시국가들은 슈말칼덴 동맹을 맺어 황제와 가톨릭을 신봉하는 타 제후국들과 본격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두 종교적 세력 간의 정치적 대립은 더욱 극심해져 1546년 슈말칼덴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를 통해 마침내 제국 내에서 루터파가 공인받게 된다. 그러나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를 통해서도 두 종교세력 간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은 끊이지 않았고, 마침내 1618년 최대 규모의 종교전쟁인 30년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는 루터의 교리 논쟁 과정에서의 독선적, 비타협적 태도나 논란이 되는 반유대주의, 반이슬람주의적 자세들도 모두 다루면서 루터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세속적 권력과 결탁한 루터의 행동들에 대해서는 이와 관련된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만 제시할 뿐, 어떠한 직접적인 서술이나 부정적 평가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세속화된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대한 비판적 의식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도 그 과정에서 루터 그 자신과 루터파 제후들의 이해관계가 크게 개입되었기 때문에 세속화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10. 결론 및 나의의견
단순히 종교개혁이란 교황과 교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일으킨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종교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아주 중요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 모든 유럽국가에서 가톨릭이 생활 곳곳에 녹아있었다. 모두가 믿고 따르는 교회에 대하여 반기를 든다는 것은 큰 용기와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이 필요로 했을 것이다. 웬만한 사람에게는 상상 조차 할 수 없을 일일 것이다. 루터는 그것의 해냈고, 중심에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루터를 종교개혁자로서 긍정적으로 본다. 문득 나는 루터의 오직 성서만을 믿고 행하는 모습에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라 함은 대부분 개신교를 떠올릴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많은 신도들이 십일조를 낸다. 루터는 중세시대 동안 십일조 수입으로 온갖 비리를 저질러온 교회인들을 비판하였다. 만약 루터가 살아있었다면 아마 우리나라의 기독교도 비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뉴스에 종종 보도되는 목사들의 부패한 모습들을 본다면, 한번 더 95개조반박문과 같은 것을 들고 개혁을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논문을 읽고 루터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나는 좀 더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루터가 그리 완벽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루터의 사상은 혁명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너무나 보수적이였다. 루터는 금욕적 세계관을 강조했는데, 나는 이것이 너무나도 엄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저한 이성에 대한 불신, 안타까울정도의 처절한 자기에 대한 실망은 이해할 수 가 없었다. 과연 이렇게 지나친 것이 종교에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농민전쟁에서 루터가 농민이 아니라 영주들의 편을 든 것은 비판하고 싶었다. 또한 가톨릭의 잔재인 국가종교를 부인하지 않은 점도 비판하고 싶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더라도 루터는 이러한 큰 개혁의 방아쇠를 당긴 첫 번째 인물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위인인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기독교로 보는 세계역사, 김동주
아드 폰테스, 강일구
종교개혁-루터와 칼뱅, 프로테스탄트의 탄생, 올리비에 크리스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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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1.12.13
  • 저작시기2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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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159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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