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육론 서평 (어거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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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독교 교육론 서평 (어거스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식을 의미한다. 그뿐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지식을 지닌 것을 깨닫게 되면 양심에 소망이 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즐기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기와 이웃을 즐기려고 하는 마음의 태도를 의미한다. 또 정욕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 없이 자기와 이웃과 물체들을 즐기려고 하는 심적 태도를 의미한다. 정욕이 억제되지 않고 자기의 영혼과 몸을 부패시키게 될 때에 그것을 죄과 즉 도덕적 결함이라고 부르며 다른 사람을 해할 때에는 범죄라고 부른다. 모든 죄는 이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나 먼저 있는 것은 죄과다 죄과에 대한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죄과에 대한 도움을 얻기 위해서 범죄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사랑이 자체의 유익을 도모할 때에 사려심이 되며 이웃의 유익을 도모할 때에 인애가 된다. 여기서도 사려가 먼저 있다. 아무도 자기에게 없는 것을 타인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욕의 지배력이 약화하는 데 비례해서 사랑의 지배력이 강화된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의 경우에도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보통 사용되는 표현 형식을 알며 자세히 관찰하며 정확히 기억할 뿐 아니라 그 표현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특별히 필요하다. 그들이 열심히 연구하려는 성경 자체에 “주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신다”(잠 2:6) 지식을 원하는 마음이 경건과 결합된 때에는 그 소원도 주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제4권
20. 기독교의 교사는 말에 능력이 있어야 하므로 수사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듣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며 설득하기 위해서 필요한 특성들도 있지만 우선 가르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문체나 말씨가 명석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사는 명석한 말씨를 배양하는데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우리는 열심히 연구에 힘을 다하는 동시에 이런 능력들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말씨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즉 부드러운 것, 기품이 있는 것, 위엄이 있는 것이다. 처음 것은 가르치는 데 적합하고 , 둘째 것은 칭찬하는 데 그리고 셋째 것은 권고하는 데 적합하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말씨는 섞을 수 있으며, 그 섞을 때의 목적을 알린다. 궁극적으로 목적은 듣는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며 기쁘게 듣고 생활에서 실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교사 자신을 향해서, 그의 직책의 존엄성과 책임을 지적하면서, 자기가 가르치는 것과 생활이 일치하며 모든 사람에게 좋은 모범을 보이라고 권고한다. “모든 성경 해석의 기초는 두 가지다. 하나는 올바른 뜻을 확인하는 방법이며, 또 하나는 그 확인한 뜻을 알리는 방법이다.” 기독교의 교사가 수사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수사 기술은 진리나 거짓을 주장하는데 효과가 있으므로 진리를 옹호하는 사람이 대표하는 진리가 아무 무장도 없이 거짓과 대립하는 것보다, 진리에 반대하기 위해서 궤변적인 논법을 동원하는데 진리를 옹호할 줄도 모르고 거짓을 논박할 줄 모르는 방법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언변은 그른 것과 바른 것을 모두 주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므로 수사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해석하며 가르치는 사람, 진정한 믿음을 옹호하며 오류에 반대하는 사람은 바른 것을 가르치는 동시에 그른 것을 논박하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의무다. 그리고 이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적대적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며, 무관심한 사람의 열성을 일으키며 ,무식한 사람들에게 현재 있는 일과 장차 있을 일을 알려줘야 한다. 성경을 해석하며 가르치는 사람은 토론하며 주장할 때에 언변보다 지혜가 있어야 한다. 언변도 좋으면 청중에게 더 많은 유익을 줄 수 있겠지만 우리는 유창한 언변으로 무의미한 말을 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성경에 대한 지혜가 얼마나 전진했느냐 하는 데에 따라 그 사람이 말하는 지혜의 정도도 달라진다.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기억하라는 뜻이 아니라 바르게 이해하며 뜻을 주의 깊게 탐구하라는 것이다. 성경을 읽어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읽고 기억도 하지만 뜻을 알려는 성의가 없다. 말씀을 기억한 것은 비교적 적을지라도 마음의 눈으로 성경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사람들을 월씬 더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성경 말씀을 언제든지 암송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 뜻도 바르게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언변이 없으면서도 지혜롭게 말해야 할 사람은 특히 성경 말씀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기가 하는 말이 빈약한 줄을 알수록 풍부한 성경에서 말씀을 얻어 와야 하며 자기가 한 말을 성경 말씀으로 증명해야 한다. 지혜와 언변을 겸하면 더 도움을 줄 것이므로 지혜를 말할 뿐 아니라 언변도 좋기를 원하는 사람은 웅변가들의 연설을 읽거나 들으며 또 모방해서 연습하는 것을 권하겠다. 웅변가의 말을 듣기에 즐겁고 지혜 있는 사람의 말은 유익하다. 성경에도 많은 웅변가라고 하지 않고 “많은 현자는 세상의 구원”이라고 했다. 웅변적인 성직자가 실천적인 진리를 권고할 때에는, 듣는 사람이 알도록 가르칠 뿐 아니라, 또 즐겁게 해서 그 주의를 끌도록 할 뿐 아니라, 그의 마음을 움직여 그의 의지를 굴복시켜야 한다. 진리를 증명해서 듣는 사람이 인정하게 만들며, 아름다운 방법으로 제시했다고 하더라도 진리의 힘으로 그가 움직이게 되지 않았다면, 남은 것은 웅변의 힘으로 그를 굴복시키는 것 뿐이다. 알기를 원하며 또 가르치기를 원하는 사람은 가르칠 일을 모두 배워야 하며 또 성직자로서 합당한 언변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말할 시간이 온 때에는 주님의 말씀을 회상하는 것이 경건한 마음에 더 합당한 태도다. “어떻게 또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무슨 말 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19-20) 선한 일을 말로 실현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가르치며 기쁘게 하며 설득한다는 세 가지 목적을 무시해서는 안되며 듣는 사람이 이해하며 즐기며 믿도록 우리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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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23.03.13
  • 저작시기2021.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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