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신학에 적용된 현대물리학적 개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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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 과정철학이란 무엇인가?

2. 과정신학의 존재론과 현대물리학에서의 물질
1) 절대공간과 절대시간 속에서의 ‘독립된 존재’
2) 현대 물리학에서의 관계성과 운동의 의미로의 존재
3) 과정신학의 실재

3. 과정신학의 역사관과 양자론적 세계관
1) 고전 물리학의 기계론적이며 결정론적인 세계관
2) 현대물리학의 세계관 (관계성의 세계관, 되어감(Becoming)의 세계관)
3) 과정신학의 세계(역사)관

4. 글을 맺으며

본문내용

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이인슈타인의 장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에 대해 대충이라도 알고 있다면, 관계성 속의 실재라는 개념은 별 의문이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카오스이론은 과정사상이 거부하고 있는 인과율에 대한 현대인의 사고를 바로잡는데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과정사상가들은 인과법칙이라는 말을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말을 사용해야될 때에라도 조건요인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즉 여러 가지의 조건들 중에서 하나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 조건요인이란 것은 어떤 경우에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다른 경우에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카오스 외에도 많은 물리학적 개념들(20세기 초에 등장한 것과 등장한지 얼마되지 않은 물리학적 개념들)이 과정사상에 접목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카오스 이론도 화이트헤드가 살 당시에는 그 맹아만이 있었고, 유아기적인 이론화 작업도 1960년대에 들어서야 시작되었다. 그런데 과정사상은 이러한 새로운 이론들을 그 철학의 체계안으로 끌어들여 그 철학의 내용을 풍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풍부화는 과정사상에서는 언제나 가능하다. 왜냐하면 과정사상 자체도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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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생각하면서 이면지를 사용하였습니다. 양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4. 과정신학의 종말론과 현대물리학의 우주론적 세계관
1) 고전적 의미의 종말론과 신정론
- 기독교 종말론 : '영속적 소멸'로서의 '악'과 '영속적 실재'로서의 '천국'
) 존 캅, 데이비드 그리핀 공저. 류기종역. 과정신학. (서울:열림) 1993. pp.154-163
악의 문제는 실재적이고 실존적인 문제이다. 기독교 유신론은 하나님은 불필요한 고통과 심지어는 도덕적인 악의 발의자로 보는 모험을 무릅쓰면서 까지 하나님이 악에 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과정신론은 세계에서 악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가능한 선은 무엇이든지 가져오도록 설득적으로 활동하시며 무한한 지속적인 설득적 힘으로 하나님을 이해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파괴적인 인간행위들의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행하지는 아니한다.
과정신학은 미래란 진실로 열려있으며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도 인간이 무엇을 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무신론자들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인간의 능력을 자신의 주어진 존재나, 선행의 본성으로부터 나온다고 이해하는 반면, 과정신학은 하나님의 설득적 능력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악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궁극적으로 불의,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민이 아니다. 최종적 문제는 죽음이 아니다. 때 이른 죽음조차도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가치와 의미를 파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화이트헤드가 J. Lock로부터 빌려서 부르는 영속적인 소멸과 같은 그러한 잠정성이다. 우리의 성숙기에 있어서 우리의 젊음의 열정을 파괴하는 것은 불의, 고통, 그리고 고민이 전체 삶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의 발견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이러한 악들이 극복된 기쁨의 순간들이 희미한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또한 최종적으로 다함께 상실되어 버리는 일의 실현인 것이다. 성공이 궁극적으로 지속하지 못한다는 확신은 많은 실패들보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의 열정을 잘라 버린다. 비록 모든 현재의 경험 속에 즐김이 있으며 따라서 그 자체로서 본질적인 가치가 있으나 우리가 성취하고 향유하는 모든 것들이 망각의 상태로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에 관한 의식적인 반성은 이러한 자립적인 향유의 가치를 손상시킬 수 있다. 만일 최종적인 결론이 소멸이라면 모든 사물들을 사랑하라는 요구는 복음의 메시지가 될 수 없다.
이와같은 통찰에서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기여할 수 없다는 사실,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경험들을 궁극적인 무의미성으로부터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교도들은 참된 실재를 열반 혹은 무로서 이해했다. 열반이라는 말은 불교의 구원과 구속을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된다. 열반은 개인존재의 소멸과 부정개념을 포함한다. 이 종교적 활력을 갖는 열반의 의미에 대해서 뮬러는 "영혼의 안식처로 들어감, 모든 소원과 욕망을 없애고 조용하게 하는 힘, 기쁨과 고통에의 무감동, 선과 악에도 무감동 영혼 그 속에로의 몰입, 생사의 굴레로부터의 자유, 태어나고 죽는 것에서의 해방"으로 보았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서 응답적이라면 우리의 기본적 상황은 아주 다를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서 응답적이라면 우리의 기쁨과 행위들은 신성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신적 생명은 무시간적인 의미에서 영원하지도 않으며 영속적 소멸의 의미에서 시간적이지도 않다. 그 신적 생명은 끊임없이 세계로부터 받아들이며, 그러나 영속적인 현재의 즉시성에서 과거의 세계 안에 있는 것을 지탱한다는 의미에서 영원한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영원함을 좀 더 훌륭한 종교들이 수립되는 통찰의 내용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영속적 실재가 천국이다. 천국은 "모든 질서의 기초인 원초적 욕구의 성취로서의 받아들임과 개혁에 의해 완전해진 시간적 세계를 말한다." 하나님의 결과적인 본성은 결코 배타적이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즉시적이고 언제나 다수이며 또한 언제나 일자(One)이며 그리고 언제나 앞으로 진행하며 결코 소멸하지 않는 새로운 전진을 수반한다.
하나님의 본성의 이러한 작용하는 성장이 가장 잘 이해되는 이미지는 부드러운 돌봄의 이미지이다. 하나님의 응답적인 사랑은 우리의 시간적 실존의 궁극적인 악을 극복하는 힘이다.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악에 직면해서도 의미를 지니고 하나님의 기쁨에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과정신학은 죽음 후의 개인적인 삶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개방적이다. 그러나 공식화하기는 쉽지 않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화이트헤드의 용어로 표현하면 여전히 과정 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죽음과 영속적인 소멸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데는 확신이 있다.
2) 과정신학의 우주관과 종말론 및 신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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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0.03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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