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의 성경의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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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기독교에서는 중심이다. 구원을 얻는 수단이다. 이러한 것은 기독교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서는 믿음이 강조되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이 다른 종교들의 해석함에 있어서 자신들의 카테고리로 해석을 할려고 들기 때문에 믿음을 강조하는 듯 하나, 힌두교 같은 곳에서는 앎이 중요하다. 즉 헬라적이다. 힌두교나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지식이 구원의 수단이다.
구약에 있어서도 믿음이라는 말이 빈번하지는 않다. 그런데 나올 때에는 아주 중요하게 나온다. 합2:4, 아브라함의 믿음(창12,15장),롬4장-시편의 한 두곳, ...등이다
그러나 빈도에서는 흔하지 않다. 그러므로 자연히 문제가 발생한다. 어떻게 해서 신약시대에 사도들의 가르침에 믿음이 중심부분을 구원을 얻는 수단으로 설명하는데 중심적인 카테고리로 등장하는가? 이것이 중요한 신학적인 잇슈이다.
예수께서 그렇게 가르쳤는가? 공관복음서에서 자신의 구원의 힘을 덧입으려는 사람에게 '믿음'을 요구한다.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래서 예수의 가르침에서 온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신약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믿음의 뜻은 선포된 복음을 받아들인다. '복음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의 선포에 대한 사건,-죽음' 이것을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 함축된 것은 그 구원의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을 신뢰함이라는 개념이다. Trust와 관계가 있다.
히브리서,바울,요한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는 다 일치한다(선포된 복음을 받아들임, 선포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 그런데 바울은 기본 뜻에 집중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가? 아니면 선행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가?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옳지 않는 교리와 싸워야 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본 개념에 집중되어 잇다.
히브리서 기자는 조금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 신뢰에 근거해서 ..
즉 우리의 신앙고백을 철저히 지킴이다.
히11:1-믿음의 정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실상 -밑에 가라앉는다(substance,foundation,assurance). 그러므로 단단하게 된다. 기초, 확신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믿음이 무엇인가? 손에 붙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실체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증거 -실험하다 라는 뜻이다.
이 정의는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적이다.
3절: 믿음의 영웅들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3절은 1절의 정의와 4절에 부터의 믿음의 영웅들의 예와 다리를 놓는 다시 한번 믿음의 원칙을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했는데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믿음으로 안다.
믿음의 영웅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4절부터 믿음으로 산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한다. 약속은 미래적인 것이다. 그 약속은 종말론적이고 궁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궁극적인 성취는 새언약의 종말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멀리 바라보면서 살다가 간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나그네 같이 살았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와 함께(부활의 시대를 의미함)...
즉 이들이 당대에 믿음으로 삶으로써 , 당대에 축복을 받아 누렸으나 ,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 재림, 부활에 선취할 것이다.
12장은 예수의 궁극적인 믿음의 예-예수께서 어떻게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2절)'하나님과 함께함'을 향해서 믿음을 지키고 믿음의 길을 가신 분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그분은 믿음의 완성하셨다. 그러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야만 했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죄의 문제(독자들의 죄)를 다 제거하고
3절. 피곤하여 낙심치 말고 열심히 믿음의 길을 달려가야 한다. 그 길 중에는 필연적으로 고난이 있다. 그 고난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교육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을 극복하고 더욱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직 우리는 피흘리기까지 고난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니 우리의 고난을 너무 연연해 하거나, 두려워 하지 말라.
12절. 피곤한 성도는 무릎을 세우고 달려가야 한다.
14절. 고난 가운데 믿음의 길을 가는 길은 무엇인가? '화평을 도모, 거룩함을 좇고, 하나님으르 보는것(하나님께 나아감)'으로 구원의 완성을 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은
15절. 우상숭배하는 것, 음행, 간음, 쓴뿌리(신29:18절-쓴뿌리가 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공동체에 영향을 준다)가 있어서는 안된다. 이것의 대표자는 에서이다(하나님의 약속을 경외하지 않는 자-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가장 중요한 것은 장자권을 버렸다-그러므로 유대 문서에서도 에서는 가장 악한 자의 예로써 나타난다)
18절- 시내산에 모세의 세대가 행하였던 것을 무섭게 표현한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만남에 대한 약속(구원의 약속)과 거룩하지 못한 죄인들에 대한 엄청난 심판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당도하는 산은 시내산이 아니라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22절)'이다. 하늘의 도성은 하나님의 도성, 하늘의 도성,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계시록)등을 의미한다.
시내산에서의 하나님의 만남이 우리가 앞으로 하늘의 성전에서 하나님과 만날 것을 나타내는 유비이다.
에서가 등장하는 것은 에서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이 독자들이 자신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을 잃어 버리면 장차 하나님으로 부터 무서운 징계를 받을 것이다.
앞으로 하나님이 심판 하실 때에는 시내산이 온통 흔들렸던 것처럼 온 세상이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그 때에 찬송하고 예배 할 것이다.
13장.형제 사랑을 계속하고.......=구체적인 선을 제시한다.
즉 복음을 전한자와 가르치는 자들의 말을 잘 듣고 행하라고 한다.
567-910
전북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384번지 황금교회
라황용전도사/ ☏0655-32-8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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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5페이지
  • 등록일2002.10.16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6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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