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설화와 페미니즘의 관계연구
본 자료는 8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해당 자료는 8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8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I. 들어가는 말

II. 페미니즘(Feminism)
1. 페미니즘에 대하여
2. 페미니즘의 가능성

III. 창조―창세기1-3장을 중심으로
1. 창세기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견해들
2. 창세기 본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IV. 나오는 말―비전, 페미니즘과 창조

본문내용

것이 어둡다, 또는 밝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우리는 우리의 말을 할 뿐이다.
새로운 58대 과학생회를 준비하는 학준위(학생회준비위원회)의 분임토의 광고를 보면서, 여학우들로 구성된 한 조를 유심히 보았다. 9개 조 가운데 한조는 8명의 여학우들로만 구성되었다. 왜 그랬을까? 여자는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다를까?
분명히 여자들은 오늘날의 남녀평등이니 인간평등이니 말하는 시대에서도 다르게 취급되고 다르다. 다르다고 하는 것은 50:50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거기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들 어떤 위축감이나 자괴감이나 열등감이 아니다. 이것은 페미니스트들이 끊임없이 그 원인을 묻고 해결의 길을 찾고 왔던 지난 역사에서도 분명한 대답을 주지 못한 현실이다. 여성의 특수함(월경, 출산, 수유)은 거부할 수 없는 존재현실이다. 그것이 여성의 길을 막는 것이라고 보았던 시대도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여성의 특수성은 존중되어야 하고 그 존중을 기반으로 우리의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때가 있었다. 또 한편 그것을 거부하고 결과적으로 남성들과 똑같은 생물학적 존재가 되려고 했던 시대도 있었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기 위해서는 동등한 역할과 책임 아래 있어야만 한다는 주장... 그러나 그 어느것 가운데 택일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는 아니다. 다른 것을 전제로, 인정하는 가운데 우리의 미래는 과거로부터 현재가 그러했듯이 그렇게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학준위 광고를 보면서 세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째는 5조(여자들만의 조), 그것은 여성들만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나머지 8개조와 구별되기도 하고 대립되기도 하는 성격을 지닌다. 둘째는 조가 그렇게 구성되지 않았더라면 전체 8개 조 가운데로 여학우들이 2명씩 배치되는 것이다. 남녀의 비율이 전체 8개조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남자와 여자의 구분없이 조가 편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한조에 여자 2명씩이라는 할당제가 적용되지 않는, 어떤 의미에서는 남녀의 성구별이 전제되지 않는 조 구성이다.
여성들이 처하거나 선택하는 공적 현실이란 이러한 세가지 모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세 번째의 경우이더라도, 거기서 여성이 여성으로서 의미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현재 우리의 정치나 사회조직에서는 두 번째의 경우가 여성에게 허락되기를 바라는 제도적인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궁극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세 번째의 경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어떤 규제나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전제에서) 첫 번째 경우, 그것은 여성들만의 고립이 아니라, 전체 학준위를 위한 어떤 특수 역할을 위한 목적으로 편성된 것으로 볼 때 의미를 살릴 수 있다. 한편으로는 과 전체 가운데 소수인 여학우들의 소리를 듣는다는 목적도 가질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하여 페미니즘 이론을 펴거나 그 정당성을 주장하거나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21세기라는 미래 시대를 앞두고 우리에게 빛으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난 2세기간 펼쳐진 이 세상의 절반의 소리인 페미니스트들의 소리에서 들었고 그것을 함께 하고자 하는 것 뿐이다. 인류가 남자와 여자로 함께 존재하기 시작하였고, 그 시간이 2만여년이건 200여년이건 그 시간적인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함께 차지하고 살아갈 것이라고 했을 때 이제 완전한 존재로서 그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미래는 남자만의 것도 아니고 또 여자가 대신 차지할 것도 결코 아니다. 함께라고 하는 것은 수적인 배분에 있어 평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계몽주의 시대, 사회혁명의 시대, 산업화의 시대... 시대마다 요구되었던 페미니즘 각성이 오늘 우리에게도 미래지향적인 각성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그러므로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며, 트리블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모든 업수이 여기는 문화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인종, 계급, 성 그 어느것도 억압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 트리블, 앞의 책, p.29
페미니즘이 생명지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학적 해석의 노력 또한 함께 나아간다. 성서(Bible)는 인류의 영혼과 지성의 최고 결정물이라 할 수 있다. 성서는 쓰여진 시대의 것만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지시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영속할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해석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오늘날 창세기는 새롭게 접근되고 있으며, 해석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는 유일회적인 사건이었으나 그 해석과 해석으로 이끌어내는 제2의 창조
) 죌레가 이야기했던 '하나님의 창조에 사랑과 노동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앞의 책, p.10
는 항상 문화적 흐름과 함께 변한다.
오늘 이 글을 맺으며 학문적인 노력이 궁극 가 닿아야 할 곳은 우리의 삶의 자리이며, 변혁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당부한다. 페미니즘과 창조를 함께 21세기를 여는 새로운 비전으로 제안하는 것은 그것이 지배적인 한쪽에 의해 억눌려 감추어진 자들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면으로 감추어진 것은 밖으로 드러난 것의 온전한 반쪽이며, 그것은 온전함을 회복하고자 하는 오랜 기다림이기도 하다. 마치 길고 긴 겨울의 침잠을 지나고 이겨내야 생명의 봄을 맞이하는 것과 같다. 이제 21세기, 우리의 미래는 온전함만으로 맞이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종말(하나님의 포기)의 위기와 해체의 위기 가운데서 새로운 세계를 약속받을 수 있다. 우리의 온전함을 회복(페미니즘)하고, 에덴을 회복(창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에 사랑과 충성으로써 참여하는 것이다.
■ 참고 도서
조세핀 도노반(김익두,이월영 역), 『페미니즘 이론』(서울:문예출판사, 1993)
필리스 트리블(유연희 역), 『하나님과 성의 수사학』(서울:태초, 1996)
클라우스 베스터만, 『창조』(왜관:분도출판사,1991)
도로테 죌레(박재순 역), 『사랑과 노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7)
최만자, 『여자와 남자로 창조하시고-여성성서연구/창세기』(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전국여교역자회, 1989)
이우정 편, 『여성들을 위한 신학』(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85)
  • 가격3,300
  • 페이지수25페이지
  • 등록일2002.10.24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803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