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씨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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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통 씨름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씨름의 어원

2. 씨름의 시대적(역사적) 변천과정

본문내용

틈없이 꽉 메웠으며 관중의 일부는 서울근교나 지방에서 온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이 경기에서는 8명의 장사가 폴리그전으로 거행된 경기에서 우승은 마산의 김성률(金成律) 준우승은 경북의 박범조(朴範祚) 3위는 마산의 정근종(鄭根鍾)이었다.
1972년은 씨름으로서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제까지의 씨름은 관중은 많았으나 매스컴에서는 그렇게 큰 비중이 없었으며, TV에서는 뉴스 정도로만 취급이 되었다. 씨름경기의 현대화와 붐이 조성하는데 앞장선 KBS가 씨름협회와 공동주최로 제 1회 KBS배 쟁탈 전국장사 씨름대회를 장충체육관(忠體育館)에서 9월 24~ 26일까지 문화공보부의 지원 하에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이전까지 야외(野外) 모래판에서 실시하던 것을 실내의 매트에서 하게 되었고, 경기가 열리는 3일 동안 KBS -TV에서 중계방송을 전국으로 실시하여 전국민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 경기를 보게 되었다. 이제까지 뉴스로만 취급되어오던 씨름이 중계방송을 통하여 전국으로 중계되었다는 것이 씨름발전으로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 특히 경기가 열리는 장충체육관은 인기 종목인 구기종목의 국제적인 경기가 있어야만 관중이 1,2천명 정도였으나 경기가 열리는 연 3일 동안 합하여 7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을 빈틈없이 꽉 메웠으며 관중의 일부는 서울근교나 지방에서 온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이 경기에서는 8명의 장사가 폴리그전으로 거행된 경기에서 우승은 마산의 김성률(金成律) 준우승은 경북의 박범조(朴範祚) 3위는 마산의 정근종(鄭根鍾)이었다.
그 후로는 인기를 유지하다가 축구, 야구, 기타 인기종목에 눌러 70년대 후반에는 시들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침체된 듯하다가 80년대 들어 제 5공화국이 출범(出帆)하여 스포츠 장려정책과 함께 82년 4월에 출범한 한국민속씨름위원회가 주최하는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가 83년 4월 14일 장충체육관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이 대회부터는 실내에서 매트 위에 경기를 해 오던 것을 처음으로 모래로 바뀌게 하였고 체급도4체급으로 구분하여 시행하였다.
체급명칭을 우리 나라의 명산의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서 태백급( 75kg)이하, 금강급(75kg이상 85kg이하), 한라급(85,1kg이상 95kg이하), 백두급(95,1kg이상)으로 정하고 체급의제한 없이 무제급 경기명칭을 천하장사(天下壯士)대회로 하였다. 천하장사 결정전에서는 450여명의 선수들이 출전한 가운데 결승전에서는 한라급의 이 만기(李萬基), 최욱진(崔旭珍)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백두급의 이준희(李俊熙)와 홍현욱(洪顯旭)을 물리치고 결승전에 진출한 가운데 이만기 선수가 3:2로 이기고 천하장사의 칭호와 함에게 15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 당시의 쌀 한 가마니의 금액 4만원 이였음)
이 당시 경기방식에 있어 변화가 있었다면 종전에는 매트 위에서 경기를 하던 씨름이 모래 위에서 경기를 하게되었던 것이며 경기장의 직경을 7m에서 9m으로 늘렸으며 밀어내기를 없애고 상대를 경기장안에서 넘어뜨려야만 이기도록 했다.대전방식은 토너먼트(맞붙기)로 3판 2승제로 하였으며 장사 결승전에서는 5판 3승으로 하였다. 경기시간은 5분으로 하였다가 1985년 8월 대회부터 3분으로 변경하다가 1996년부터는 2분으로 변경하여 실시하였다. 그리고 각 체급에는 청룡군(1군)과 백호군(2군)으로 나누었으며 각 군에는 4체급이 있었으며 각 체급의 청룡군에는 8명씩의 장사들이 출전하도록 하였다. 특히, 씨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체급명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씨름은 우리 고유의 전통경기인 만큼 체급명칭을 우리 나라의 고유 명산 중에서 그 이름을 붙여서 오늘날까지 사용하여 오고 있다.
백두급 : 95,1kg 이상 / 한라급 : 85,1 ~ 95kg이하 / 금강급 : 75,1 ~ 85kg이하 / 태백급 : 75kg이하 / 천하장사 : 무체급
1983년에는 대한씨름협회와 한국씨름협회가 통합되었으나 1991년 2월에는 민속씨름협회로 분리되어 프로와 아마튜어로 완전하게 양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995년 6월 현재에는 다음과 같이 경기방식이 변경되어 진행되고 있다.
경기종별은 단체전/ 체급별장사 / 지역장사 / 천하장사 등으로 구분되며 대전방식은 단판제 및 3판 승제로 하며 체급, 지역장사 및 천하장사 결승전은 5판 다승제로 진행하였다.
1991년 5월에는 체급이 변경되어 그해 9월 대회부터는 백두급 : 100,1kg 이상 / 한라급 : 100,0kg 이하로 대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1992년 9월 대회부터 씨름단 소속기업의 홍보극대화를 위해 단체전을 도입하였으며, 단체전의 선수 구성은 백두급 5명, 한라급 4명으로 구성하였으며 출전순위는 백두급을 선두로 하여 한라급 선수가 출전하여 왔으나 1995년 6월 대회부터 단체전 출전방법을 백두급 선수를 선두로 하여 한라급 선수를 교대로 출전하도록 하여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이러한 가운데 무엇보다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온 결과로서 1984년 3월 2일 일양약품 원비씨름단이 창단 하였으며 12월 24일 보해양조 씨름단이 창단하였고 / 12월 27일 LG씨름단이 창단, 1985년 12월 7일 현대씨름단 창단 / 1987년 1월 20일 삼익가구 씨름단 창단하였으며, 1988년 6월 10일 부산조흥금고 씨름단 창단 등으로 인하여 씨름의 열기가 고조되면서 1995년 한보씨름단이 창단되면서 진로씨름단이 창단 되는 등 씨름발전의 최대 분수령이 되기도 하였다.
1985년부터 씨름의 국제화에 앞장서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된 해외대회가 미국/일본 / 중국 / 스페인 등에서 우리의 우수한 문화인 씨름을 통하여 외국에 씨름을 널리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고, 1995년에는 씨름의 세계화 원년으로 설정하여 활발하게 추진하고자 하는 계획으로 7월 8일 우리 씨름의 역사상 최초로 독일 퀼른 스포츠홀에서 독일이민 30주년 기념 우리한마당 축하행사로 95 한국민속씨름 독일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출처:
http://members.tripod.lycos.co.kr/jss0523/frame.htm
http://ynucc.yeungnam.ac.kr/~ssi/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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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4.12.30
  • 저작시기200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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