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영옥과 영화

목차

Ⅰ. 머리말

Ⅱ. 완영옥과 그의 시대

Ⅲ. 영화 <완영옥>의 세계

Ⅳ. 맺음말

본문내용

해 영화 제작자들의 말, 곧 "阮玲玉은 야한 역이 잘 어울리는 배우"에서 그 점을 읽을 수 있다. 또 마지막 시퀀스에서 볼 수 있듯이 阮玲玉은 끝없이 그녀를 괴롭히는 張達民과 서문경같은 바람둥이인 唐季珊 사이에서 자살하도록 꾸며져 있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의 계보 속에 들어있다. 물론 미모와 재능이 뛰어난 여성이 온갖 세파와 남성 때문에 시련을 받는다는 구도는 전통 광동극의 그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阮玲玉 자신이 부녀절 날에 자살한 점을 상기한다면 關金鵬의 의도는 전자 쪽에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阮玲玉의 죽음을 해석하는 일은 저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거기에는 사회 모순을 둘러싸고 전개된 이념대립이라는 요소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좌우파의 대립은 그녀가 숨을 거둘 무렵에 이르러 거의 국민당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1934-5년에는 江西 지구에 있던 소비에트 정권조차 붕괴되고 있었다. 이런 때에 <新女性>이 만들어졌고, 국민당계의 기자들은 이틈을 놓치지 않고 표면적으로 阮玲玉을 공격하였다. 阮玲玉은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두 가지 조치를 취하였던 것 같다. 하나는 국민당의 정책에 동조하는 일이었다. 좌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국민당이 추진하는 新生活運動을 선전하는 <國風>이라는 영화에 마지막으로 출연한 것은 아마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蔡楚生에게 의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蔡楚生은 阮玲玉의 제의를 거절하였다. 세속에서 벌어진 갑남을녀의 일이라면 이것은 단순한 상열지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조작된 화면 속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화면 속에서 蔡楚生은 단순한 남성이 아니라 좌파 이데올로기를 지닌 집단의 한 표상으로 변하는 것이다. 곧 阮玲玉은 우파의 공격을 막기 위해 좌파에 기댔지만, 좌파 역시 그녀를 외면하고 말았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컨대, 두 권력집단에게 있어서 阮玲玉은 그녀가 출연하였던 영화 <장난감(小玩意)>의 주인공과 같았다. "阮玲玉은 홍콩을 상징한다"라는 등식이 성립된다면, 아마도 關金鵬 감독은 영화 <阮玲玉>을 통해 홍콩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휘둘린 홍콩의 비극적 운명을 말하려고 하였던 같다.
Ⅳ. 맺음말
이상 關金鵬 감독의 영화 <阮玲玉>을 보면서 생각하였던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보았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현대사에서 영화와 영화배우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가 아는 20세기의 중국사는 마치 혁명이라는 쇠사슬 고리 속에 엮여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런 탓이겠지만 영화배우 같은 연예인이나 그들이 출연한 영화는 역사연구, 특히 중국사 연구에서 소외되어 왔다.
) 강명희, 「한국역사학계의 회고와 전망: 1997, 중국현대」, 『역사학보』 제159집(1998. 9), pp.196-206 참조.
그런 상황에서 <阮玲玉> 같은 영화는 역사에서 대중문화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 자신도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阮玲玉이란 배우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하였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마치 <悲情城市>라는 영화가 대만 사회의 과거와 현재에 관심을 갖도록 환기시킨 바와 같이, 영화 혹은 영화배우를 통해 중국현대사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실 阮玲玉이란 인물을 역사적으로 평가하기에는 그녀의 삶이 너무 짧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영화사적으로 볼 때 자연스런 연기와 사회의 모순을 대변하는 역할을 통해 배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이것은 그만큼 자연스럽고 해방된 인간형을 추구하였던 당대 사회의 욕구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실제 사회는 완강할 정도로 폐쇄적이었고, 특히 남존여비적 사회관계에 묶여 있었다. 張達民이나 唐季珊 같은 부도덕한 남성 부르조아들에게 추문은 회고담의 하나 정도였으나, 하층민 출신의 阮玲玉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타격을 주었다. 魯迅이 지적한 바와 같이 당시 여배우의 사회적 지위는 겉보기와는 달리 매우 취약하였다. 아마 關金鵬 감독은 이런 대비와 모순을 역사의 중요한 측면이라고 강조하고 싶어하였는지도 모른다. 순종과 고난의 여성 역을 맡았을 때 그녀는 스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 외형상으로나마 상류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반면 도전적인 역할을 맡고, 또 실생활 속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려고 하였을 때 파멸의 길을 걸었다. 영화를 통해 쌓은 이미지와 실제 사회 속의 개인과는 그만큼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또 근대 상해 '신여성'들의 리얼리티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양면성은 阮玲玉 개인의 삶과 죽음에서도 발견된다. 근대적 교육을 받고 서구의 최신식 문물인 영화의 선두에 섰던 '모던'한 사람이었으나, 남녀관계에서는 전통적인 가부장제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였다. 두 남자와의 관계가 원만하게 마무리되지 않았을 때, 그녀는 근대의 중요 산물인 변호사와 신문을 활용하면서 자신을 옹호할 만큼 근대적 인간형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나, 그녀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길은 자살이라는 전통적인 복수방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중국사에서 중요한 주제인 국가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 阮玲玉과 영화 <阮玲玉>을 평가하고 싶다. 영화가 사회적인 힘을 갖지 못하고 국가 체제가 잠시 혼동상태였을 때인 20세기 초반에 국가 권력은 이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체제가 정비되고 영화가 혁명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영화도 국가권력에 종속되어 갔다. 1930년대의 영화배우 阮玲玉은 그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렇다면 영화 <阮玲玉>이 제작된 1990년대의 시점에서 국가 권력은 홍콩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阮玲玉이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에 빠졌을 때, 자본가인 唐季珊과 좌파인 蔡楚生이 그녀를 버리는 장면에서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홍콩 역시 阮玲玉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라는 예언이며, 그 상징은 阮玲玉의 죽음이다. 특히 이 영화가 1991년에 완성되었고, 바로 그 직전에 홍콩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천안문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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