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세계대전의 경제사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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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서론
1. 2차세계대전의 성격

본론
2. 2차세계대전
a. 전쟁피해상황
b. 전후의 상황
㉠ 긴급식량 구호대책
3. 전후의 세계경제실태
a. 자본주의국가의 경제실태
㉠ 영국
㉡ 프랑스
㉢ 독일
㉣ 미국
㉤ 아시아지역
b. 사회주의국가의 경제실태
㉠ 소련
㉡ 동구지역

결론
4. 선진국의 고도성장
5. 사회주의의 팽창과 발전
6. 제3세계의 등장

본문내용

정책의 완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일본은 미국의 원조, 기술, 시장에 의존하여 가공수출형 산업화를 추진함으로써 패전으로 잃은 자립적 생산기반을 되찾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일본이 선진국중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달성한 원동력은 기술혁신에 의한 민간기업의 설비투자였으며, 이는 우수한 인적자본, 장시간의 고밀도 노동, 기업간 중층적 하청체계와 기업내 연공서열제라는 일본 특유의 조건 아래서 달성되었다.
이같이 전후에 선진국의 고도성장이 달성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국제적 협조를 이끌어내어 세계시장을 확대시키고 국제금융의 안정에 기여한 IMF-GATT체제의 기여이다. 둘째, 중화학공업부문에서 달성된 기술혁신이다. 이는 거대한 생산설비에 의한 대량생산방식이 채택되었고 소득증대에 따라 대량소비체제가 등장한 이유이다. 셋째,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의 현저한 증대이다. 정부는 국가의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거나 경제계획을 실시하였으며, 완전고용을 달상하기 위하여 재정금융면에서 적극적 입장을 취했다. 마지막으로 저렴하고 안정적인 1차산품의 공급이 성장에 크게 기여한 점이다. 1950·1960년대에 원재료·원료 등 1차산품의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는데, 이는 신기술도입, 다국적기업의 개발투자 등으로 공급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반면 원료절약기술의 발달과 대체원료개발로 수요가 제약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량생산체제의 유지에 필수적인 석유는 석유메이저에 의해 낮은 가격으로 공급이 가능했었다.
5. 사회주의의 팽창과 발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소련은 강대한 군사산업력을 갖춘 국가로 등장한다. 스탈린그라드의 대회전과 쿠르스크전투에서의 승리를 전기로 소련은 동부전선을 주도했기 때문에 동유럽에서 영향력은 거의 결정적이었다. 소련은 이를 배경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동유럽 점령지역에 자신의 사회체제를 심었다. 전후처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영토변경문제에서 소련과 나머지 연합국은 독일을 동서로 분할점령하여 분단을 초래했으며,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유고슬라비아·헝가리·루마니아·불가이아에는 사회주의체제가 확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루마니아와 핀란드의 일부지역이 소련영토로 편입되었다. 소련은1947년에 코민포름(공산당정보국)을 설치하여 각국 공산당과 연락하고 지휘감독하였으며, 우수한 무기를 갖춘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전 중부유럽에 주둔군을 파견하였다. 한편 아시아에서는 중국·북한·북베트남이 사회주의에 편입되었다.
소련과 소련의 영향력하에 들어간 동유럽국가들은 생산수단의 집단적 소유와 중앙계획당국의 계획경제에 의해 자본주의와는 다른, 국가주도에 의한 축적 및 공업화를 급속히 진행시켰다. 1928년 시작되어 1953년 3월5일 스틀린이 사망하던 해까지 스탈린 통치하에서 소련은 사회주의 경제계획의 기본내용을 실행하였다. 즉 고도의 중앙집권적 계획경제가 수립되어 농업집단화 및 군수부문을 중심으로 중화학공업에 우선순위를 매긴 정책이 추진되었다. 소련의 경제정책을 모범으로 삼았던 동유럽의 사회주의국가들도 1950년대까지 유례없는 생산증가를 달성하였다.
이와같이 급속한 경제발전을 주도했언 계획경제체제는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부터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공업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의 둔화, 기술진보의 정체와 소비재부족이 가속화되었던 것이다. 투자와 생산, 분배의 결정권이 정치적으로 중앙당국에 집중되었고 계획기구가 비대화하였다. 이는 국가기구의 관료화를 초래함으로써 정보의 처리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변화하는 여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방해하였다. 생산증대도 사실은 양적증대만을 달성한 것으로서 생산을 외연적으로 확대한 것에 지내지 않았다. 즉 당시까지의 성장은 단순히 유휴자원과 잉여노동력의 증가에 의존하였으며, 50년대말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성장률이 떨어진 것이다. 따라서 기술진보를 기반으로 가용자원과 투하노동력의 효율적 사용을 통한 질적수준의 발전, 내포적성장은 도외시 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경제는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체적으로 생산확대를 지속하고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정체된 동유럽 사회주의의 성장률은 그들의 통계를 따르더라도 70년대 후반에는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생산성향상과 대중의 소비욕구 충족이라는 면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내어 노골적인 정치경제적 체제위기와 붕괴르 겪게 되는 것은 80년대 후반부터의 일이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고도성장기에 사회주의는 내부적 모순을 내포하면서 여전히 공업생산확대와 체제유지를 통해서 냉전시대의 한 축을 담당해 갔던 것이다.
6. 제3세계의 등장
제2차 세계대전후에는 식민지 상태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많은 후진국을 중심으로 양체제 대립의 사이에서 또다른 하나의 세력이 형성된다. 이른바 제3세계이다. 그런데 제3세계는 선진자본주의나 동유럽 사회주의와 같은 단일한 사회체제가 아니다. 물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도 역사적으로 언제나 동일한 구조를 유지한 것은 아니고 단계적으로 특징을 달리하면서 발전해 왔으나, 이들은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기준으로 서로 명백히 대립되는 각각의 완성된 체제를 구성한다. 이에 비해 제3세계는 대체로 후진국이라고 하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경제체제면에서 두 체제의 어느 하나에 소속되거나 두가지 요소가 혼재하는 나라들로 구성되고 개발정책도 국가별로 매우 상이하다. 그러나 제3세계는 전후 선진자본주의 및 동유럽 사회주의가 성장을 거듭한 시기에 소수의 국가를 제외하면 거의 경제발전의 혜택을 받지 못한 후진국이라는 점에서, 서방 선진국이나 동유럽국가와는 다른 공통의 이해관계를 지닌 독립된 세력이다. 즉 제3세계는 모든나라들이 그 집결력 강화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은 아니었지만 양쪽에 대해서 각종의 경제원조와 양보를 당당하게 요구하고 세계의 정치 및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전후 세계체제의 한 축으로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참고 문헌
권병탁, 『일반경제사』. 서울:박영사,1994
김종현, 『경제사』. 서울:경문사,1996
김호범,이해주, 『신경제사개설』. 서울:박영사,1996
신규성, 『세계경제사』. 서울:법문사,1995
조기준, 『사회경제사』. 서울:일신사,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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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06.10
  • 저작시기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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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23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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