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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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국의 산업혁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 1 절 산업혁명론의 변천
1. 고전적 산업혁명론
2. 고전적 산업혁명론에 대한 비판
3. 성장사학에서의 산업혁명론
4. 산업혁명의 의의

제 2 절 산업혁명의 역사적 전제조건
1. 농업혁명
2. 외국무역의 발전
3. 상업의 발달
1). 국내상업의 발달
2) 외국무역의 발전

제 3 절 산업혁명의 전개
1. 소비재생산부문―면공업
2. 자본재생산부문
1). 철공업
2). 기계공업
3). 석탄산업
3. 공장제의 성립
4. 교통혁명

제 4 절 화폐금융제도의 발달
1. 화폐제도의 전개
2. 은행제도의 발달

제 5 절 산업기업가와 노동자
1. 기업가의 역할
2. 사회입법
3. 노동운동

제 6 절 외국무역의 성장
1. 자유무역체제의 확립
2. 외국무역의 성장
3.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자본주의의 성립

본문내용

수출하게 됨으로써 1830년대 이후 인도 면공업은 괴멸상태에 들어가고, 인도는 영국 면공업에 대한 원면생산·수출국으로 재편성되었다. 그것은 인도의 식민지화가 진전되는 과정이었다. 인도 이외의 후진 여러 나라에서도 형태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유사한 방향에서의 재편성이 강요되었다.
영국의 제2의 수출 대종품으로서의 철 수출은 1840년대 이후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 철도건설이 진전되면서 크게 증가하였다. 철도건설을 위한 거액의 자본, 건설자재, 기술을 자급 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뿐이었고, 그 이외의 여러 나라는 초기에는 어떠한 형태이든 영국의 지원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철도건설은 구미 여러 나라만이 아니라 19세기중엽 이후 인도와 라틴 아메리카 등 후진지역에서도 급진전하였다. 철도건설의 경우도 구미 여러 나라에서는 초기에는 영국의 지원을 받았으나 결국 자립적으로 수행하여 그들 여러 나라의 산업혁명과 경제성장에서 주도적 부문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인도의 경우 철도건설은 결국 영국경제에 종속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철도차관에 따르는 외채부담이 누적되고 농업국으로서의 영국자본주의에 편성되었다.
영국은 압도적인 공업생산력을 배경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세계 각국을 자신의 시장권으로 편입시켰다. 최초의 산업혁명을 수행한 영국자본주의의 대외진출은 각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충격에 대해서 각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각국 경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그에 유효하게 대응한 나라의 경우는 자립적인 경제발전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19세기의 구미 여러 나라는 영국자본주의의 충격을 받으면서 산업혁명을 수행하고 자본주의적 발전을 하였으며, 19세기말∼20세기초에는 영국과 더불어 선진자본주의국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대해서 그 이외의 여러 저개발 국가는 영국자본주의의 충격에 유효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공업원료 또는 식료품 등 1차 산품을 생산하는 나라로서 세계자본주의체제에 편입되었다.
그 속에서 그들 나라는 식민지적인 지배를 받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경제에 종속되어 반식민지적인 지배를 받게 되었다. 자유무역체제하에서의 영국의 국제무역은 저개발국을 식민지로 직접 지배를 하지 않더라도 경제적으로 실질적인 지배를 할 수 있었으며, 사실 그러한 지배를 확대하였다. 자유무역체제하에서 선진자본주의국의 무역을 통한 저개발국의 경제적 지배는 바로 '자유무역제국주의'(free-trade imperialism)의 본질이었다.
2. 영국국제수지의 구조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영국은 동시에 세계 최대의 무역국이었다. 영국은 면제품, 철제품, 기계 등 공업제품을 세계의 각 국으로 수출하고 원료, 식료품 등 1차 상품을 수입함으로써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무역체제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무역관계에서 영국은 계속해서 무역수지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그것은 영국의 무역조건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즉 영국의 수출가격이 수입가격에 비해서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영국은 종래와 같은 수입을 하기 위해서 보다 많은 수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계속된 무역수지적자는 무엇으로 커버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무역외수지의 흑자였다. 표 3-6은 19세기 영국의 국제수지와 자본수출을 나타내는 통계이다. 이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영국의 무역수지는 계속적자를 나타내고 있는데 반해서 무역외수지는 계속 흑자를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무역외수지의 흑자는 무역수지적자를 커버하고도 남아돌아 그 잉여분은 계속 해외투자로 돌려지고 있다. 영국의 국제수지의 특징적인 성격은 자유무역하에서 계속되는 무역수지적자를 무역외 수지 흑자로 커버하면서 잉여분을 해외투자로 돌린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영국의 무역외수지의 흑자는 영국의 무역수지적자를 커버하고 자유무역을 뒷받침함으로써 영국의 세계각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후자의 전자로부터의 수입능력을 뒷받침하여 세계무역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면에서도 영국은 세계자본주의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무역외수지흑자의 원천은 서비스수출에서 얻은 수입과 해외투자에서 얻은 수입이었다. 그런데 후자의 중요성은 1870년대 이후 영국의 자본수출이 크게 증대하면서 커졌지만, 그때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전자였다. 서비스수출에서 얻은 수입은 주로 해운수입이었다. 무역외수입에서 해운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1816∼1820년에는 55.7%, 그 후 1870년대에 이르기까지 40%대, 그리고 1870년대 이후는 30%대로 점차 떨어지고 있으나, 1870년대까지는 가장 중요하였다. 영국은 세계의 상선의 약 3분의 1을 가진 대상선·해운국이었다. 해운수입이외의 수입으로는 금융 및 보험수입이었다. 런던은 세계금융의 중심으로서 은행들은 전세계에 걸친 무역금융을 하였고, 로이드 해상보험회사는 전세계의 해상보험을 거의 독점하였다. 이렇게 해서 영국의 무역상품은 대부분이 영국상선으로 수송되고 영국은행의 융자를 받고 영국해상보험회사의 서비스를 받았다. 이들 서비스 자체가 영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무역확대의 전제였지만, 그로부터의 수입은 영국무역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편 해외투자수입은 1870년대 후반 이후 급증하고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 그것은 바로 1870년대 이후의 영국의 해외투자=자본수출의 증대에 대응한 것이다. 그러나 1870년대까지도 영국의 해외투자의 잔고는 계속 증대하여 1866∼1870년에 그것은 7억 파운드에 오르고 그로부터의 수입도 3,100만 파운드에 이르고 있다. 영국은 해외투자수입을 추가로 투자하면서 해외투자를 확대하였다. 영국의 해외투자는 영국상품에 대한 구매력을 높여줌으로써 결국 영국상품수출의 증대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특징의 국제수지구조를 통해서 영국은 세계자본주의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그 속에서 각국은 자본주의적 발전을 하거나 아니면 중심자본주의국의 지배하에 편입되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선진자본주의 여러 나라의 제국주의체제하에 여러 저개발국이 식민지로 편입되는 과정이었으며, 그것은 1870년 이후 여러 자본주의 국가의 자본수출이 크게 확대되는 시기에 두드러지게 진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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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23
  • 저작시기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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