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성지자의 관계와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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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과 성지자의 관계와 그 의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중용』에 관하여.

2.『중용』의 구성과 내용 요약

3.『중용』은 성에 대한 해설이다.

4.『중용』은 중과 용의 해설이다.

5. 성자는 천지도야요, 성지자는 인지도야니라.

6. 자성명을 위지성이요 자명성을 위지교니라.

7. 기차는 치곡이니라. 곡능유성이니 성칙형하고 형칙저하고 저칙명하고 명칙동하고 동칙변하고 변칙화하니 유천하지성이라야 위능화니라.

8. 성자는 자성야요, 이도는 자도야니라.

본문내용

어 틀리지 않는다. 그러니 이 마음을 천지 사이에 세워 보아도 그 덕이 합일하여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 또 이 마음을 귀신에게 물어 보아도 귀신과 그 길흉이 서로 부합해 조금도 읫미스러운 것이 없다. 먼 훗날 성인이 다시 세상에 나오더라도 이 마음과 같아서 아무 의혹도 없다. 의혹이 없다는 것은 꼭 믿어진다는 뜻이다.
성인의 덕이 이와 같이 확충되므로 자기 자신에게 있는 바를 귀신에게 물어 보아도 추호의 의심이 없다는 것은 곧 자기 성품의 본래 밝음을 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늘을 안다"고 하였다.
또한 하늘과 인간이 그 덕을 합친다면 온갖 변화의 기틀이 정해지게 된다. 바로 이것이 성인의 온전한 덕이다. 덕이 온전하므로 성인은 자기 자리를 지킬 뿐이다. 하지만 일단 거동하면 반드시 세상에 도가 유행하게 된다. 한 번 행동하면 반드시 세상의 법도가 되고 한번 입을 열면 세상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성인의 덕이 비록 높고 밝고 광대하지만 그 실내용은 모두 은미하고 정밀한 수양 가운데 나왔다. 이른바 성인의 도는 은미한 가운데 순일하게 잠겨 있어 자기 자신을 이루기는 하지만 굳이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기 안에 두텁게 쌓아 본성이 순일해지면 안으로 덕이 충만하게 되고 이에 저절로 지혜의 빛이 밖으로 발현되기 마련이다. 이른바 어두워 눈에 띄지않는 듯하지만 나날이 빛나서 근본이 넓고 두터워지기 때문에 베푸는 바 또한 높고 밝아서 오래도록 이어진다.
예컨대 소인의 경우에는 자기의 본성을 저버려 참됨을 잃은 채 밖으로만 꾸밈으로써 다른 사람의 눈과 귀에 뚜렷하게 드러내어 허세를 부린다. 이에 갈수록 양심이 없어지고 하늘의 이법은 끊어져서 날로 본성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의 학문은 내명에 힘쓸 뿐 바깥에 힘쓰지 않으며, 자기의 덕을 닦을 뿐 남의 눈과 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상의 이해 관계와 부귀 영화에 대해서는 담연하여 추호도욕심을 내지 않으며 끝없이 본성을 즐길 뿐이다. 요와 순이 천하를 가졌어도 관여하지 않은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성인은 외면을 꾸미는 데 힘쓰지 않으므로 그 바탕이 간결하고 그의 본성은 밝게 빛나 예의에 맞는 위엄 있는 거동과 움직임 가운데 저절로 빛을 발한다. 그 문채가 아름답게 빛나므로 "간결하면서도 문채가 난다"고 했다. 조화의 기운이 마음에 쌓이고 사물과 추호의 틈도 없이 하나가 되어 정밀하게 살피고 만물을 두루 밝혀 주며 어느 것 하나라도 빼놓지 않는다. 마치 따뜻한 봄기운이 퍼지자 삼라 만상이 모두 생성되는 것과 같다. 이에 "온화하면서도 조리에 맞다"고 하였다.
성인의 수양이 이와 같이 은미한 데 잠겨 돈독하고 두터우므로 그의 명망이 중국에서 흘러넘쳐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이다. 식견 있는 사람이라면 그 덕망의 바람에 대해 듣고는 받들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그의 성대한 덕은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 있는 것과 같으므로 보는 사람마다 우러르지 않는 자가 없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어떻게 수양해서 그렇게 되었을까? 자기 자신에게 이미 정성이 있다면 저절로 본성이 흘러나오고 은미한 것이 표출되게 마련이다. 성인의 덕망이 저 멀리까지 미친 까닭이 바로 그 자신에게서 비롯되었고, 덕의 바람이 바로 자기의 본성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작용은 은미한 근본에서 나와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후세에 배우는 이느 알아야 하리라. 이와 같이 해야 비로소 덕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수양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데 달려 있으니 결코 자기의 마음을 속여서는 안 된다. 이에 《시경》을 인용하여 "감추어져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또한 대단히 환하구나"라고 하였다. 우리의 성덕은 정밀하고 은미하여 기쁘거나 슬픈 감정이 생겨나기 전에는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폐단이 없다. 그러나 기쁘거나 슬픈 감정이 싹트게 되면 깊숙이 잠겨 있고 숨어 엎드려 있어 보이지 않더라도 본성이라는 근본은 이미 가리워져 밝게 드러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사사로운 생각은 우리 본성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수양하는 군자라면 모름지기 희로애락이 생겨나기 이전의 상태를 지향해 나가면서 하나하나 성찰하여 망상의 싹이 돋아나는 것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사로운 감정이 생겨난 이후에야 생각하고 성찰하지만, 성인의 수양은 모름지기 감정이 생겨 나기 전에 미리 삼가고 조심한다. 이는 오직 성인만이 알 뿐이요 일반 사람은 쉽게 알 수 없는 경지이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이 군자에게 미치지 못하는 점은 사람들이 제대로 보지 못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수양이 이와 같이 주도 면밀하면 마음에 이미 정성이 쌓이게 되고 저절로 밖으로 그 징험이 표출된다. 이에 "그대가 방에 있을 때를 본다 해도 방구석까지도 부끄럽지 않으리라."는 《시경》을 인용했다. 방구석까지도 부끄럽지 않다면 어떻게 마음에 떳떳하지 못한 구석이 있겠는가.
내면에 덕이 쌓이면 그 감응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움직이지 않아도 존경받고 말하지 않더라도 신망을 얻는 것이다. 수양하여 이미 정성스러워지면 잡안이 저절로 화평해지기 마련이다.
수양이 여기에 이른 뒤에도 더욱더 정진해 나아가면 언어 문자마저도 잊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만일 언어 문자를 떠났다면 이미 소리가 끊어진 경계에 도달한 것이다. 수양이 깊고 빈틈이 없어 보고 듣는 경우에 나가더라도 이른바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근원이 이를 것이므로 지극하다고할 만 하다.
보고 듣는 데 얽매이지 않고 소리와 형상 밖으로 초월하여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경계에 이른 뒤에야 비로소 덕이 지극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자기의 본성을 다하는 온전한 수양이자 성인이 할 수 있는 바로서 궁극적으로 이르러야 할 경지이다. 본성을 극진히 화는 데 뜻을 둔 사람이라면 반드시 여기에 도달해야 비로소 '자리를 다하는 정성(盡己之誠)'이 되고 자신을 수양한 열매를 얻을 것이다. 뜻 있는 군자라면 당연히 여기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이를 저버리게 된다. 배움에 뜻을 두었다면 마땅히 자기의 마음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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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28
  • 저작시기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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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4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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