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파(Cubisme) 큐비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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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입체파(Cubisme) 큐비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큐비즘(Cubisme)의 의의

2. 큐비즘의 중심사상

3. 초기입체주의, 분석적 입체주의와 종합적 입체주의로까지 3단계

4. ATRIST

본문내용

'분석적 큐비즘'이 확립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녀를 주제로 그린 그림은 <부채를 든 여인(1908)> 등이 있다.
두 번째 연인 에바(1911)는 청순 가련형 여자로 피카소가 정열적으로 사랑한 여인이었다. 이 시기는 '분석적 큐비즘'을 넘어 '종합적 큐비즘'이 무르익는 시기였다. 에바가 병이 난 사이에 피카소는 27살의 파리 태생의 가비 레스피나스라는 또 다른 애인을 두기도 했다. 에바를 모델로 그린 그림으로는 <옷을 벗은 에바(1912)> 등이 있다.
세 번째 연인 발레리나 올가(1917)는 귀족형 여자로 피카소를 상류 사회 사실주의 풍에 빠지고 한 장본인이다. 그 시기에 피카소는 그의 동료들로부터 큐비즘을 배반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은 <안락 의자에 앉은 올가의 초상(1917)> 등이 있다.
네 번째 연인 마리 테레즈(1927)는 천진난만형 여자로 피카소가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받았던 시기에 만났다. 그는 마리 테레즈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 특히 많은데 그녀는 피카소에게 연인일 뿐만 아니라 최고의 모델이기도 했다. <팔꿈치를 기댄 마리 테레즈 (1939)> <꿈(1930)> 등이 그 대표작이다.
다섯 번째 연인 도라 마르(1936)는 지성형 여자로 피카소가 파시즘 광기와 싸우던 시절에 만났다. 이 여자는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1937)>을 그리는데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은 <책에 빠진 여자> <우는 여자(1937)> 등 있다. 여섯 번째 연인인 프랑스와즈 질로는 자유 분방한 여자로 법대를 다닌 지적 여성이기도 했다.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으로는 <꽃 여인(1943)> 등 다수 있다. 프랑수아즈도 아는 즈느비에브와 서로 모르게 두 여자를 따로 연인 관계를 맺어, 그후로 피카소와 완전히 헤어지는 계기가 된다.
일곱 번째 연인인 자클린은 피카소보다 40년 연하로 여자로 절대 헌신형이다. 이 시기는 피카소가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시기로 피카소 말년의 생애에 오직 작품에만 전념하도록 도와준 여자다. 이 시기에 피카소가 도자기 예술과 고전 작가의 재해석에 심취한 시기였다.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은 <옷을 벗고 앉은 여자(1959)> 등 수 없이 많다.
5. 에로스는 모든 예술의 힘
그에게 있어 에로스는 모든 생명력의 근원이며, 그가 추구하는 미의 힘이며 원천이고 예술의 극치감을 맛보는 징검다리 같은 것이었다. 그는 죄책감이 없는 태초의 원시 세계를 꿈꾸었고 에로티시즘을 통해 인간과 우주와 예술이 결합을 시도하였다. 섹스의 기쁨은 창조의 기쁨이고 더 나아가 성스럽고 아름다운 창조 행위였다.
피카소는 창조하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신념 속에 살았다. 성의 혁명은 20세기 최대의 담론이 되었지만, 그는 이런 점에서 선각자였다. 놀라운 생명력과 다산성의 상징인 달과 대지(大地)와 여성과 침식을 같이하며 예술적 기운을 되찾았다. 그의 예술적 에너지는 바로 여기에서 생성되었던 것이다.
6. 유년기부터 빛났던 천재성
피카소는 스페인의 한 도시 말라가에서 1881년 10월 25일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시골 학교 미술 교사였는데 자신의 아들이 10살 때 이미 그의 아버지를 능가하고 있음을 알고 정말 무서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드디어 스페인 문화 중심지였고 유서 깊은 도시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론잔 미술학교 입학 시험에서 14살의 나이로 한 달 걸려 그릴 수 있는 그림을 단 하루에 그려내어 모든 이들 경악하게 했다. 16살에 그는 모든 미술 콩쿠르를 석권할 정도였다.
1900년 19세인 피카소는 바르셀로나 뒷골목 [검은 고양이] 선술집에 첫 전시회를 열었다. 150편의 데생은 시인, 작곡가, 예술가 모습을 스케치한 작품으로 공개적으로 화가임을 선언한 전시회였다.
틀에 박힌 미술 감상법에 분노했던 피카소는 어느 새 예술가 모임의 중심 인물이 되었고 그는 이미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소문이 났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에게 열광했지만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만큼 그를 격멸(擊滅)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죽마고우 카사게마스와 친했고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들끓었다. 허물없는 솔직성과 남들이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그만의 괴짜 기질이 그의 강력한 매력 중 하나였다.
7. 예술의 도시 파리로 진출
피카소 나이 19세 되던 1900년, 전세계 천재 예술가들의 집합소인 몽마르트르로 떠난다. 스페인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프랑스 어 못해 파리 생활에 고전했지만 그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10월 몽마르트르 언덕 눈부신 가을, 모든 진보를 대표하는 도시 파리. 이 도시는 그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였다. 그는 또한 여기에서 폴 고갱, 반 고호, 로트렉, 드가 등 대가들의 작품들을 박물관을 누비며 정열적 탐구욕을 보였다. 그는 특히 몽마르트르 빈민가의 화가 로트렉에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그 당시만 해도 야만적이라고 거들떠보지 않던 페니키아 이집트 예술에 크게 매려 되었고 후에 그의 예술의 고유한 영역인 큐비즘의 밑거름이 되었다.
8. 청색 시대
피카소의 그림 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 받는 시기에 속하는 때가 바로 '청색 시대(1901-1904년)'다. 피카소가 무명이었던 이 시기의 작품들은 그림의 표현과 그
림의 실제가 너무 닮아 감상하기 쉽다.
이 시대 유명한 작품 <삶>에서 보듯 그 당시의 그림은 차가운 느낌을 주는 청색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으며 온통 비참과 절망의 하나로 이어져 깊고 어두운 뒷골목의 삶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청색 시대는 피카소에게 가장 어려운 시대였지만 어찌 보면 가장 행복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죽마고우 카사게마스를 잃고 괴로워도 했지만 주변의 친구들이 그를 혈육처럼 돌봐 주었다. 특히 시인 막스 자콥은 그 자신도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처지에서도 극도의 빈곤에 빠진 피카소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다 잠을 재워 주고 보살펴 주었다. 그는 피카소 그림에 매료되어 그를 옹호했고 흠모했던 그의 평생 동지였다. 그의 친구 중에는 동료 화가보다 시인 친구가 더 많았고 그들에게서 더 많은 예술적 영향을 받은 것은 특이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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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1.04
  • 저작시기2004.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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