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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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입각한 중국학계의 연구동향은 '고위금용(古爲今用)' 의 방법론에 입각하여 과거의 역사를 현재를 위해 자의적으로 재해석하는 또 다른 역사왜곡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고구려가 중국 영역내의 민족이 건립한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나, 고구려의 주민은 분명히 예맥족(濊貊族)이다. 활동중심이 바뀌면서 몇 번의 천도(遷都)가 있었으나, 결코 한사군(漢四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고조선이 있어 한사군이 이 지역을 일시적으로 지배했다는 것은 중국인들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중국은 고구려가 줄곧 중국 역대 중앙왕조와 군신관계를 유지하였고, '중국'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그 관계를 스스로 끊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조공과 책봉은 당시 동아시아 전체에 걸쳐 적용된 외교형식이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고구려만을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또한 고구려가 당나라에 봉역도(封域圖)를 바쳤다는 것은 그 영역을 바친 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영역이 어디까지인가를 확실히 하기 위한 행위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고구려 멸망 후, 그 주체 집단이 한족에 융합되었다는 것을 내세워 고구려가 고대 중국의 지방민족정권이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에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도 있지만, 신라로 떠난 사람도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고구려지역에 남아 발해의 주민으로 살았다. 또한 고구려의 고(高)씨와 고려의 왕(王)씨는 혈연적으로 다르며, 시간적으로 250년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역사적 계승성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중국의 왕조는 한족과 북방민족의 왕조가 번갈아가면서 중원을 차지하였으며, 한족의 왕조도 모두가 다른 성씨이므로 역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왕조의 계승은 혈연적 계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계승성이 중요한 것이다.우리는 앞으로 남북공조를 통하여 고구려사 연구를 더욱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제화와 정보화를 통하여 국제사회에 고구려사를 비롯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작업을 수행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과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고구려사 연구센터를 설립하여 이를 중심으로 고구려사의 연구와 사회교육 및 홍보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고구려사를 비롯한 한국사의 대중화, 역사의 대중화가 실현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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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4.06.09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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