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의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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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 론

2. 본 론
1) 윤동주의 생애
2) 윤동주 시 세계의 특성
동심지향과 휴머니즘
기독교적 소명의식(메시아적 본질 추구)
시에 나타난 대표적 상징
절대적 양심
3) 윤동주의 시는 저항시인가?
윤동주 시를 보는 두 가지 관점
민족시인, 저항시인 윤동주
저항과 부끄러움

3. 결 론

본문내용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또 태초의 아침>중에서
(ⅲ)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길>중에서
(ⅳ)딴은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별 헤는 밤>중에서
(ⅴ)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사랑스런 추억>중에서
(ⅵ)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씌어진 시> 중에서
(ⅶ)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참회록>중에서
이상에서 '부끄러움'이 표상된 용례를 요약해 보면 (ⅰ)는 소박한 휴머니즘으로, (ⅱ)는 신앙이 문제로, (ⅲ)는 인생의 문제로, (ⅳ)는 속죄 의식으로, (ⅴ)는 수사법으로, (ⅵ),(ⅶ)는 인생에 관한 참회로 사용된다. 이 잡다한 용접 중에서 굳이 시대 의식과 관련시킬 수 있는 경우란 (ⅳ)의 「별 헤는 밤」정도가 아닌가 한다. 메타포 '이름'을 조국으로 풀이한다면 조국에 관한 소박한 속죄 의식을 보여준다고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시인이 부끄러워한 것은 행동으로 지향하기 위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행동을 미리 포기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저항일 수 없다.
둘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부록으로 수록된 윤동주의 산문은 그의 '부끄러움'이 시대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증언이 된다. 시작 노트라고 볼 수 있는 이 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잇는 것은 그의 관심이 일제의 탄압이나 시대적인 비극이 아니라 꽃과 별과 바람과 같은 자연, 그리고 도덕률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세계관, 인생관, 이런 좀더 큰 문제보다 바람과 구름과 햇빛과 나무와 우정,
이런 것들에 더 많이 괴로워 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이 말이 나의 역설이나 나 자신을 흐리우는 데 지날 뿐일까요.
일반은 현대 학생 도덕이 부패했다고 말합니다. 스승을 섬길 줄을 모른다고들 합니다.
옳은 말씀들입니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나 이 결함을 괴로워하는 우리들 어깨에 지워 광야로 내쫓아버려야 하나요.
<화원에 꽃이 핀다>중에서
인용된 글에 등장하는 어휘들 -구름, 햇빛, 나무, 괴로움, 부끄러움 등을 소재로 만일 시를 쓴다면, 우리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윤동주 「서시」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서시」에서 보여 준 '부끄러움'의 정체는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즉 그의 '부끄러움'은 세계관이나 인생관 같은 문제에는 관계없이 소박한 도덕주의 혹은 휴머니즘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윤동주는 그가 살고 있는 시대를 뼈저리게 의식한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윤동주가 항상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초기 동시에서 보였던 휴머니즘 혹은 도덕주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볼 때, 윤동주에 있어서 부끄러움의 정체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그의 부끄러움은 시대적 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종의 휴머니즘의 기인된 속죄 의식의 표현이라는 점. 둘, 동시에 그의 부끄러움은 행동이 거세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행동을 포기하는 행위 그 자체에 기인된 것이기 때문에 저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등이다. 즉 저항하지 못한 데 대한 부끄러움이었던 것이다.
3. 결 론
정지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이 없이! 일제 시대에 날뛰던 부일문사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뿐이나, 분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또한 윤동주의 동생인 윤일주 교수는 형에 대한 회고의 말에서 "그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여 <하오니>나 <유까다>를 입은 조선사람을 보면 메스껍다고 외면하였고, 친구들이 일본말로 이야기하여도 애써 우리말로 대하곤 하였다"고 밝혔다. 한국의 얼이 일제의 탄압으로 깡그리 말살된 때에 윤동주는 끝까지 우리 시를 지켰다. 윤동주가 그런 환경 속에서 썼던 시들은 의욕적이다. 현실을 초월해서 인간의 내면의 고요한 세계를 더듬어 갔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동시에서 엿볼 수 있다. 그의 따스한 마음과 인간의 깊은 정신을 추구하는 기독교적인 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세계는 깊은 수렁 속에서 민족의 학대와 슬픈 모습도 그렸다. 다시 말하면 윤동주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는 이 때의 시의 정신은 기독교적 의식과 민족주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는 참으로 뚜렷한 민족정신으로 일제 암흑기를 살아간 시인이며, 시대적 고뇌를 반항과 연속에서 곱게 여과하여 애틋하고 한 맺힌 감정으로 시를 썼다. 시를 씀으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란 생각을 지렛대 삼아 물과 바람, 그리고 구름, 별, 달과 해로 비유될 수 있는 넉넉한 화해의 정신을 기반으로 해서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하늘에, 그의 시를 통해서 시대의 고뇌와 부끄러움, 슬픈 자아를 하늘에 일체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저항시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의 그 너머에 존재한다. 그의 작품은 존재론적 고뇌를 토명한 서정으로 이끌어 올림으로써 우리에게 따뜻한 위안과 아름다운 예지 그리고 자신의 힘을 일깨워주는 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윤동주 전집2-윤동주 연구』, 권영민, (주)문학사상사, 1997년.
『윤동주 평전-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권일송, 민예사 1984년.
『한국현대시인론』, 성기조, 한국문화사, 1997.
『윤동주』, 이건청, 건국대학교출판부, 1994.
『20세기 한국시인론』, 국학자료원. 1997년.
『윤동주 평전』, 송우혜, 열음사, 1998년
http://www.yundongju.com/myongdongschool.htm
http://my.netian.com/~cita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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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6.09
  • 저작시기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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