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혼인 풍속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Ⅰ.혼례의 역사
1.삼국시대 혼례
1)고구려
2)백제
3)신라
2.고려시대 혼례
3.조선시대 혼례
Ⅱ.전통혼례의 절차와 풍습
1. 육례와 사례
2.납채
3.문명
4.납길
5.납징
6.청기
7.친영
8.첫날밤과 신랑매달기 , 궁합과 선보기
Ⅲ.특수한 혼인
1. 보쌈혼
1)과부보쌈
2)처녀보쌈
3)총각보쌈
2. 허혼(虛婚)
1)처녀가 죽은 후
2)총각이 죽은 후
3)영혼들의 혼인의식
4. 씨내리 혼인
1)씨받이 여인
2)씨내기 남자

본문내용

위해 총각을 보쌈해다가 하룻밤 신방을 꾸미게 한 뒤에 낡이 밝기 전에 강물에 던져 죽여서 인위적으로 과부의 팔자를 만들어 뒷날 평탄한 삶을 보장하려고 죄없는 총각을 보쌈해다가 살해했다.이런 보쌈은 주로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의 지리에 낯선 총각들을 대상으로 삼았으므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소년들은 미리 액운ㅇ르 점쳐 보고 올라 왔다고 한다.
2. 허혼(虛婚)
본능욕 가운데 성욕은 자손을 번식시키는 자연의 섭리이므로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죽으면 그 혼이 이 세상에 미련을 가지고 남는다고 옛날 사람들은 생각했다. 특히 처녀가 죽으면 그 원혼이 남아서 가족에게 호소하거나 관에 호소한다고 여겻는데 그 결과 가족 중 어느 누군가가 까닭없이 병이 나거나 고을의 수령에게 나타나서 원한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이 귀신이 각씨(閣氏) 또는 손각씨(孫閣氏)라 부르는 원귀다.
1)처녀가 죽은 후
염을 할 때 연분이 있었던 남자의 살 냄새가 나는 헌옷을 입혀 주거나 관 속에 남자의 커다란 성기를 강조한 짚 인형을 넣어 준다. 무덤 위에는 가시덤불을 덮어서 나오지 못하게 하거나 체를 덮어씌우고, 사람과 우마차의 왕래가 많은 길가에 무덤을 만들어 준다. 체를 덮어씌우는 까닭은 귀신이 누워서 체구멍을 헤아리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호기심이 많아서 사람을 돌아보고 다시 체의 구멍을 헤아릴 때 어디까지 헤아렷는지 몰라서 처음부터 다시 헤아리느라고 무덤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처녀의 원귀를 달래 주는 민간신앙에서는 남근모양의 나무나 돌을 가져다 신당에 모셔둔다.
2)총각이 죽은 후
처녀가 죽은 후와 유사하다. 처녀의 무덤이 있으면 그 옆에 묻는다.
3)영혼들의 혼인의식
처녀와 총각이 죽은 집안이 있을 때는 그들의 영혼을 달래주려는 혼인 의식을 치러준다. 허혼례는 산 사람의 혼인과 꼭 같은 육례의 절차를 밟아서 하는데 남자쪽에서 먼저 여자 쪽 집에 청혼을 하고 택일을 한 뒤 혼례식을 치러 준다.
혼례절차는 신랑집에서 제사 때처럼 상을 차리고 신랑 신부의 사진을 나란히 놓거나 신랑 신부의 인형을 만들어 배례를 시킨다. 의례가 끝나면 양가의 친족들이 모여서 잔치를 베푼다. 밤이 되면 인형을 나란히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거나 신방을 꾸며 준다.
4. 씨내리 혼인
1)씨받이 여인
인간의 죄가 3천가지나 되는데 그 가운데 불효가 가장 큰 죄가 되며 또한 불효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불효가 자식을 낳지 못하여 혈통을 끊는 것이라고 유교에서는 말한다. 가통을 잇기 위해 아들을 낳으려고 별의별 수단을 동원하게 되는데 산천기도, 신불기도, 주술, 신약 등이 동원되고 그도 안되면 씨받이 여인을 맞는다.
씨받이 여인은 신분이 천안 출신으로 혼인을 실패한 젊은 과부이거나 미신적으로 아들을 잘 낳을 수 있다고 판단이 되는 몸매를 지닌 건강한 여인이 선택되었다.
합방 이후 태기가 있으면 그 집으로 들어가서 열 달을 갇혀서 살아야 한다. 그들은 아들을 낳아 주는 조건으로 일정한 보수를 받았다. 딸을 낳으면 양육비로 곡식 몇 섬을 주었고아들을 낳으면 논밭 서너 마지기를 받았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자신이 어머니임을 나타내기 말아야 하는 엄한 묵계가 있었다.
2)씨내기 남자
소실도 얻고 씨받이를 들여도 보고 여러 가지 방법을 구하다가도 아들을 낳지 못할 때 남자 쪽에 원인이 있음을 알게 되면 씨내리 남자를 구했다.
구한말 함양읍에서 종갓집 며느리가 시집을 와서 아들을 낳지 못하다가 15년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은 시어머니에 의해 구해진 떠돌이 방물장수 씨내리 남자의 자식이었다. 며느리가 그가 속하는 사회의 윤리규범과 소외감 등으로 대들보에 목을 매어 죽은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 가격1,300
  • 페이지수8페이지
  • 등록일2004.07.17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108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