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독후감] 우주 그리고 인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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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A+ 독후감] 우주 그리고 인간을 읽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들어가며

II-1. 과연 우주의 기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II-2. 인간은 진화의 결과인가?
II-3. 기독교의 성서와 현대과학은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 서야 할 것인가?

III. 맺으며

본문내용

과학과 신학은 스스로 충돌하고 각각의 개별의 언어로 이야기 하며 교류하여 인간을 위하는 학문적인 결과를 이룰지는 모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잘못된 인식과 판단은 어떠한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는 없다. 다만 그 결과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욕심에 의해 왜곡되고 변형된다면 결국 인간의 목을 죄는 불행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중요한 몫은 인간에게 남게 되는 것이다.
맺으며
다분히 개인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감상에 치중하다보니 객관적인 진실을 내세우기보다는 주장만이 강조된 듯 하다.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책의 내용을 검토하고, ‘우주 그리고 인간’에서 보여주는 우주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궁금증을 나름대로 재해석하고, 수업중에 논쟁거리로 생각된 내용을 접목시키려는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중립을 지키면서 감상을 유지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과학과 신학을 전문적인 학문적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비교해본다는 것이 결국은 스스로의 편견에 그친 생각만을 자신에게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 같은 생각 때문에 감상의 주제로 삼는데 있어서 많은 주저를 하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과학적 지식과는 달리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검증은 불가능하며 그래서 다양한 의견이 분분하고 나 또한 굉장히 궁금하고 혼란스러운 내용을 스스로 정리해보고자 하려는 의도에서 감상의 주제로 설정해 보았다. 그러나 짧은 보고서를 마치면서 드는 생각은 아직도 뜬 구름 잡는 심정이 전부인 듯하고 오히려 속 시원히 누군가가 답을 내려주는 것이 오히려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긴 이런 문제이기 때문에 수천년 간의 논쟁거리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고 갈등의 여지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번 수업의 목적을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 본다면 결코 과학과 신학의 어느 한 편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그 속에서 절대 진리를 찾으려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고, 다만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꼈고 앞으로 느끼게 될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반이 충분히 되리라는 예상을 해본다.
예전에 중학교에 다닐 무렵에 친한 친구가 교회에 같이 다니자는 얘기를 하면서 거의 몇 달 동안을 시달린 적이 있었다. 지금도 친한 친구로 여전히 지내고 있는데,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보다는 단순히 귀찮아서 거절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가 어느 날은 인간의 진화에 대해 설명하면서 학교에서 가르쳐준 진화론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면서 사람의 조상이 원숭이라면 나 스스로 듣기 좋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의 과학도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한 것이라고는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고 현대 진화론에서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교육 속에서 성장해 왔으며 지금처럼 성년이 된 이후에도 그러한 생각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과학은 스스로 변화하고 객관적인 사실 앞에서는 그 주장을 꺾을 수밖에 없지만 오늘날의 우리 교회는 아직도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에 따라 그저 쉬운 설명으로 일관하여, 틀린 사실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절대적인 진리일 수 없는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믿음을 버리는 것이 결코 옳은 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직도 많은 교회에 존재하는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은 당연히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세상이 변화한다고 해서 종교적인 믿음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종교가 갖는 의미와 그 속에 담긴 메시지이지 성서가 갖는 절대적 text 로서의 지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속의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에 한자의 틀림도 없다는 축자 영감설에 얽매인 발상은 교회의 권위를 유지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교회에 등을 돌리게 될 많은 사람들의 관심까지도 묶어 둘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은 교회권위주의에 물든 교리는 종교가 같은 본연의 가르침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과학과의 논쟁이 결과적으로 종교적인 진리를 납득시키기 위한 대상으로서만 생각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이러한 점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교회도 더 이상 과거의 시대착오적인 발상만으로는 스스로의 족쇄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 것이다. 물론 나 스스로가 그 어떤 대안을 제시해 줄 수는 없다. 다만 그러한 노력의 필요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감대를 이루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인식만은 함께할 수 있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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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4.08.08
  • 저작시기2004.0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2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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