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사(井邑詞) 원문 내용 및 해석 배경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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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읍사(井邑詞) 원문 내용 및 해석 배경설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원문 내용 및 해석

2. 단어 해석

3. 요 점

4. 배경 설화

5. 연구

본문내용

원효(元曉)가 지은 <무애>가 들어있는 것처럼 고려속악조에 들어 있다 하여 모두가 고려시대의 가요로 볼 수는 없듯이, 무고정재 때 <정읍사>를 불렀다 하여 <정읍사>의 제작연대가 무고를 지은 이곤의 생존연대와 같을 수는 없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는 재래속악, 곧 유전악(遺傳樂)인 <정읍사>를 고려속악정재 때 이곤이 지은 무고라는 악곡에 얹어 불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악학궤범> 권5 시용향악정재조(時用鄕樂呈才條)에 <동동>.<처용가>.< 정과정> 등 고려가요와 함께 실려 전하고, <고려사> 악지 2 삼국속악조에도 <정읍사>에 관 한 기록이 있다. <정읍사>는 삼국속악의 하나로 전승되어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무고의 무의(無儀) 때 가창 되었고, 특히 조선시대에 와서는 섣달 그믐날 밤에 궁중에서 마귀와 사신 (邪神)을 쫓기 위하여 베풀던 의식인 나례(儺禮) 후에 거행된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에서 <처용가> 등과 함께 연주되었다(악학궤범 권5).
이와 같이, <악학궤범>에 채록되어 악장(樂章)의 하나로 정착하게 되었으나, 중종 때에 이 르러 음란한 노래라 하여 궁중에서는 폐지되고 새로 만든 악장인 <오관산 五冠山>으로 대 용하였다.(중종실록 13년4월조).
형식은 전강(前腔).후강(後腔).과편(過篇)의 3연체(聯體)로 되 어 있으며, 후렴을 뺀 기본 시행(詩行)만으로 본다면 3연6구의 형식이 되고, 또 각 연의 음 절수가 3음 또는 4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여 시조의 3장6구 형식의 근원을 <정읍사>에 서 찾고자 하는 경향이 많다.
각 연의 후렴을 보면 제1.3연에 해당하는 전강과 과편에는 각 각 2구씩 되어 있으나, 제2연에 해당하는 후강에는 어긔야 어강됴리 1구뿐이고, 음악적인 악 조(樂調)인 소엽(小葉)에 해당하는 아으 다롱디리가 없다 그리하여 후강이라는 악조명 다음 에 전(全)자를 붙여 후강에는 소엽 아으 다롱디리가 없는 것이 온전하다는 뜻으로 후강전(後腔全)이라 표시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아직은 어느 문헌에도 후강전이라는 악조명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 보면 후강에 소엽 아으 다롱디리가 있어야만 완전한 것이 된 다.
특히 시가 형태 면에서 보더라도 <정읍사>가 백제가요로 인정되기는 하나, 오랜 세월 고 려속요와 함께 불려오는 동안 다분히 고려적인 성격으로 변모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일 것이다.
후렴을 지니는 모든 고려속요는 예외 없이 각 연마다 꼭같은 후렴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후렴이란 언제나 꼭 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것이므로 고려속악과 함께 가창된 <정읍사>도 각 연마다 동일한 후렴을 지녀야만 형태상으로도 온전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후강에서 소엽 아으 다롱디리는 구전되는 동안 탈락된 것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전자의 처리는 자동적으로 져재 앞에 놓여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현재 국문학자들 사이에서는 후강전(後腔全)이라는 주장과 후강전(全)져재로 보아 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고, 어떤 정설(定說)로 규정하기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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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09
  • 저작시기2004.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6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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