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일본.이집트 고분 비교분석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우리나라.일본.이집트 고분 비교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삼국 시대의 고분

고구려의고분
백제의 고분
가야고분
삼국신라, 통일신라

다른 나라들의 고분
일본의 고분
이집트 피라미드 등

결론

본문내용

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고분의 거대화 경향은 5세기 중엽을 경계로 그 후 차츰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죽은 자를 매장하는 주체부에 횡혈식석실이 사용되었다는 것과 또한 사후의 세계에 대한 관념의 변화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윽고 유력자의 거대한 고분 외에 소규모적인 고분이 각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것을 군집분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들 군집분의 피장자는 그시기에 각지에서 성장해 온 가부장적 세대공동체 가족이었다.
그 까닭에 고분은 왕의 상징물만은 아니다. 왕가의 계보가 여기에서 끊어진 것은 아니지만 분구의 거대함을 뽐내는 고분의 축조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 대신에 훌륭한 당탑가람을 가진 사찰이 세워지게 된다. 그리하여 6세기 말 아스카의 땅에 일본에서 최초로 아스카데라가 세워지는데, 이것이 대왕을 비롯한 유력한 호족들이 거대한 분묘를 대신하는 권세의 상징으로서 세운 것이다. 아스카 시대 백년 간은 신구 문화의 교체기로 볼 수가 있으며, 따라서 고분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시기라 말할수도 있다.
이와같이 5세기를 중심으로 한 전후의 시기에 대륙으로부터 많은 신기술이 일본열도에 들어왔으며 이들 기숙은 고분문화의 전반적인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금곤, 직물, 제도등 그때까지 일본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제품 생산이 가능해졌으면 그것은 특히 생활문화의 향상에 크게 이바지함을 알 수 있다.
2. 이집트 피라미드
사막에 우뚝 서 있는 피라미드. 세계 7대 불가사의에도 속하는 이 웅장한 건축물을 보고 있으면 고대 이집트 문명은 산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해서 존재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피라미드를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한 사람은 제 3왕조의 죠세르이다. 죠세르는 이름이 신성하다 찬란하다, 혹은 장엄하다라는 의미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형문자는 홀을 쥔 우람한 팔과 세 개의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죠세르에는 떼어놓다 혹은 분리하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것은 신들의 세계와 속세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고대 세계의 대부분의 종교는 그것이 발생한 지역의 지리적 조건과 자연 환경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홍수 신화는 그들이 얼마나 강의 범람을 두려워했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사막에 터전을 잡은 이집트인들의 종교관은 그들의 내세관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한 사람은 제 3왕조의 죠세르이다. 죠세르는 이름이 신성하다 찬란하다, 혹은 장엄하다라는 의미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형문자는 홀을 쥔 우람한 팔과 세 개의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죠세르에는 떼어놓다 혹은 분리하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것은 신들의 세계와 속세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그는 임호텝이라는 재상을 시켜서 피라미드를 건축하게 한다. 임호텝 역시 후세에 신으로 추앙받는다. 고대문명을 탄생시킨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환생을 강하게 믿고 있었는데, 그들의 죽음, 부활, 영생에 관한 생각은 오시리스 신화에서도 알 수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마스타바라고 불리는 무덤에서 시작한다. 마스타바는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보관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것이고 직사각형의 건물에 관을 들여놓은 방의 위에 봉토를 하고 외장을 잘 꾸며 놓은 것이다.
위와 같은 형태의 마스터바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이것도 역시 도굴을 당하여서 손상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좀더 도굴하기 어려운 형태로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3 왕조의 죠세르시대에 임호텝이 만든 계단형 피라미드였다.
피라미드를 통해서 그들의 문화의 의미를 알수 있었다. 따라서 고대문명을 탄생시킨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환생을 강하게 믿고 있었을 것을 알 수 있다.
결론
지금까지 선사시대 ∼ 삼국시대까지 우리 나라와 인접 국가와의 비교 그리고 일본과 이집트에 고분에 관하여 요약하고 살펴보았다.
우리 나라는 주로 신석기 시대 이후로 고분이 남아 있으며 통솔된 사회 집단이 형성된 청동기 시대부터 지배 계급의 분묘가 커지기 시작했고 특히 삼국 시대의 고대 국가가 형성되면서 분묘에 대한 관심과 정성이 고조되어, ‘고분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지배자나 유력자들의 분묘는 자기 자신들의 힘과 당시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삼국 시대의 묘제를 통해 그 흐름을 정리해보면 크게 북한 지방의 돌방무덤과 남쪽 지방의 돌곽무덤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고, 북쪽의 돌방무덤이 고구려에서 백제를 통해 점차 남쪽으로 퍼져 내려가는 형세로 되었다. 그리하여 원칙적으로 부부 합장용인 돌방무덤 형식이 단독장인 돌곽무덤 전통을 소멸시키고, 신라 통일시대 이후 한국 상류층의 기본적 묘제로 되어가는 일련의 과정인 것이다..
이렇게 고분은 지배층인 피장자의 정치적, 사회적 위치를 잘 나타내며 당시의 매장 관념과 함께 피장자가 속하고 있던 시대상 등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것은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도 볼 수 있다..
즉 고분이란 것은 그저 죽은 사람의 무덤에 그치지 않고 각 시대의 역사·문화·사상 등 여러 면에 관해서 많은 연구 자료를 제공해 주는 귀중한 자료인 것이다.
따라서 고분 축조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고분 문화 시대의 추이와 지역 사회의 문화를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고분의 대해서 공부하면서 그것의 위치, 구조, 매장방법, 부장품 등의 아직도 많은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한계와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통해서 잊어져 버리기 쉬운 우리의 역사를 한번쯤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 참고문헌
백성광 "문화유산과의 산책" 맑은소리
김원룡 "한국의 고분"
손대준 "일본의 역사와 문화" 시사일본어사
김영원외, "박물관 밖의 문화유산 산책 1" 녹두
이정수외, "테마가 있는 한국문화" 선인
최무장.임연철 "고구려 벽화 고분" 신선원
김기웅 "고분" 대원사.
최승현 "신라고분연구" 일지사
강인구 "백제고분연구" 일지사
김문호옮김 "고고학 과거로 들어가는 문" 일빛
임헌옮김 "위대한 파라오의 이집트" 예술시대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4.09.13
  • 저작시기2004.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689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