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와의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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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무인정권의 대몽항쟁
2.농민의 항쟁
3.무인정권의 몰락과 대몽강화
4.삼별초의 대몽항쟁
5.전란중에 핀 연꽃 팔만대장경

본문내용

보관하였으며, 세조, 연산, 고종대에도 몇 부씩 인출되어 전국 사찰에 보관되었다.
일본은 학술연구와 신앙적 차원에서 고려말부터 누차에 걸쳐 대장경의 인출을 요구했는데, 심지어는 우리 백성들을 납치하여 송환을 미끼로 약 83차례에 걸쳐 대장경을 청구하기도 하였다. 이 결과 총 63부가 일본에 인출되었으며, 세종대에는 대장경판 자체를 일본에 하사하려고도 하였다. 하지만 경판을 하사하면 더 큰 요구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이는 실시되지 않았다.
일본은 조선 합병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대장경 인경작업을 하였고, 1915년에 총독 데라우치는 1부를 교토의 센유사에 봉안하였다. 이것은 그 후 동경제국대학에 기증되었으나 1923년 대지진때 불타 없어졌다.
대장경은 이처럼 일본이 전쟁도 불사하고 구해가고자 했던 뛰어난 문화재이자 학술 자료였던 것이다. 현재는 동국대학교가 1953년부터 23년간의 작업을 통해 완성한 축소판 영인본이 전세게의 유명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팔만대장경은 단순히 팔만사천의 법문을 담고 있는 경전이 아니라 고려인들의 민족적 자긍심과 국가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는 정신적 산물이며, 여몽30년 전쟁이라는 뻘구덩이 속에서 피어오른 눈부신 연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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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0.01
  • 저작시기2004.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9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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