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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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념

2. 페미니즘의 다각적 측면

3. 반페미니즘
급진주의 페미니즘
(1)인간본성에 대한 관점
(2)개인행동에 대한 관점
(3)가족에 대한 관점
(4)사회체계에 대한 관점
(5)정부의 경제체계의 관점
가. 왜 지금 {페다고지}냐?
나. 프레이리의 지난한 삶
다. {페다고지}의 사상적 핵심
1) 변혁을 위한 의식화와 인간화
2) 변혁을 위한 대화와 해방교육
3) 프락시스와 문제제기식 교육
4) 비판의식과 열린 사회

4. {페다고지}에 던지는 몇 가지 물음과 프레이리의 사상적 발전

5. 평론을 마치며

본문내용

한 비판을 주로 한 전투적 의식화가 후기사상에 이르러 오랜 폭력이 개인의 의식에까지 내면화한 억압성을 치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프레이리는 생각한다. 교육자들의 권위주의적 담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다원적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대화적 태도의 훈련이 필요하며, 학습자에게 설득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내면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기니아에서의 혁명적 체험은 프레이리로 하여금 급진주의에 대한 가능성을 더욱 갖게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정치적 행동은 덜 하게 되고 문화적 행동을 더 중시하는 운동을 하였다. 이러한 운동노선은 상대적으로 외적인 물리적 억압이 줄어든 탓도 있을 것이다. 프레이리의 판단으로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억압에 의해 초래된 개인의 마음을 심리치료방식으로 해결한다면 잘못된 처방을 할 위험이 있으며, 그리고 외적 억압이 완벽하게 소멸된 것도 아니라면 의식화의 미시, 거시적 치료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실제 '민족해방을 위한 비판적 의식화'와 '내재적 탈식민화를 위한 치유적 의식화'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발전하였다.
넷째, 프레이리가 상용하는 억압자와 억압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고 주관적이며 그것을 객관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지표가 없다는 지적이 종종 제기되어 왔다. 그것은 곧 억압적 현실을 그토록 거론하면서도 '불평등'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는 지적과 맞물려 있다. 그것은 하부구조라는 경제보다는 상부구조인 '문화'와 '의식'에 관심을 둔 교육론에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지만 마르크스의 사고를 본질적으로 추적하는데 실패하였기에 그러한 사고의 한계를 보였다고 할 수도 있다. 즉,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 {경제철학수고},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명제], {신성가족} 등)에 의존하였기에 억압을 문화나 의식 차원에서 파악하는 협소함을 보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억압을 계급 개념에서 찾지 않은 것이다. 억압과 억압자에 대한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의식화를 강조하면서도 억압자와 피억압자 사이에 존재하는 계급모순에 대해 교육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여기에서의 개념은 첫째 억압이나 해방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할 수 있게 하고, 둘째 계급은 억압자와 피억압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와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를 구별해 주는 중요한 준거로서 이런 두 가지 기능을 하는 계급의 범주와 그것이 이데올로기화하여 표현되는 문화, 이를테면 '계급문화'의 범주를 상정하여 문화 속에 투영된 계급갈등의 문제를 명료화해 낼 수도 있다. 계급의 범주는 대화를 더욱 급진적으로 접근하게 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페다고지}는 완전히 인간적이지 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허위의식, 소외된 의식의 침묵문화에 지나치게 메달림으로써 '억압'이라는 의식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의식환원주의와 추상화의 한계를 보였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물론 이후 Pedagogy in process(1978)에서 프레이리는 '계급'과 '생산수단'의 문제와 결합하려고 노력한다. 이론과 실천의 일치를 위한 노력하는 대화와 의식화, 그리고 프락시스는 교육과 기초적 질서의 차원으로서 생산활동을 결합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새로운 사회의 발달을 위한 교육의 역할은 모든 시민의 완전한 참여를 위하여 필요한 기본적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발전한다. 문자해독교육을 단순히 억압적 현실을 자각하는 의식화의 도구로 머물지 않고, 새로운 생산기술을 배우게 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프레이리는 '자유를 위한 문화적 행동'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뿐, '자유를 위한 계급적 행동'이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문화전략은 있어도 계급전략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문화전략은 계급전략과 분리되어서는 안되며 기술, 계급, 문화, 교육을 동시에 파악하는 형태의 새로운 교육전략의 구축을 위한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4. 평론을 마치며
억압과 침묵문화를 강요하는 교화의 교육을 거부하는 것을 활용하여 자유주의적 또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자들이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와 민주주의를 동질화하면서 역설적이게도 프레이리에게 대안을 찾는, 그러나 사실상 보수적 길들이기 교육을 실행하는 것에 대해 프레이리는 죽음을 몇 해 앞두고 매우 우려하였다. 그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의 대화식 교육에서 해방적 요소를 제거하고 방법론적으로만 이용하는 식의, 그러한 사이비 교육의 등장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았다. 이렇게 보면 정치적 관계를 배제한 구성주의 학습이나 수행평가도 위험하다. 프레이리는 민중들의 억압적 현실을 불쌍히 여기는 값싼 인도주의적 관용이 아니라, 참되고 진정한 휴머니즘적 관용의 실천을 요구한다. 억압자의 이기적 관심을 이용한다거나 온정주의적 가식적 자비심에 의해 민중을 구원하려는 기도로는 인간해방을 이룰 수가 없으며 이러한 구원방식은 오히려 비인간화의 도구가 된다고 하였다. 이 모두는 오늘날 우리가 매우 귀담아 들어야 할 양심어린 충고일 것이다.
오늘날 교육개혁의 시대를 맞이하여 토론문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교조의 합법화는 토론의 합법화임에도 학교와 교실에서의 토론문화는 취약하기 짝이 없다. 또 남북정상회담이후 남북교류가 활성화되고 있음에도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통일교육의 논의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음에도 학교의 평화를 위한 노력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아동인권선언이 유엔에서 제정되고, 현 정부 들어 청소년헌장이 선포되었음에도 청소년이 주체가 된 학교의 변화를 위한 학생자치회 활동은 미진하기 짝이 없다. 학부모들은 여전히 자기자식에 대한 이기적 교육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함에도 이를 개선하려는 학부모들의 토론은 그렇게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프레이리의 대화교육과 현실변혁을 위한 의식화 교육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개인주의와 상대주의 가치관의 팽배,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공세 앞에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의 사상은 앞으로 우리가 더욱 배우고 발전시켜야 할 현실적인 고전의 힘을 여전히 지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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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1.15
  • 저작시기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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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73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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