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컴퓨터 도입 40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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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컴퓨터 도입 40년의 발자취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도입기

2. 적응기
-한글 라인프린터 개발과 정보통신
-금융단 전자계산본부 출범과 최초의 온라인
-대학의 컴퓨터 도입

3. 도약기
-대학의 고급인력 양성
-컴퓨터 국산화의 세가지 갈래
-마이크로프로세서 혁명과 마이크로컴퓨터

4. 방황기

5. 정착기

6. 부흥기

본문내용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1980년
6월 공업진흥청, 컴퓨터와 주변기기에 대한 표준설계 기준 마련
1981년
1월 KIST와 KAIS가 KAIST로 통합
10월 한국전기통신공사 발족
1982년
1월 행정업무 전산화 추진규정 제정
3월 한국데이타통신 발족
 10월 공업진흥청, 컴퓨터 표준화 KS규격고시
12월 행정전산화 기본계획 수립
1983년
1월 정보산업의 해 선포
3월 정보산업 육성방안 보고(정보산업육성위원회 구성)
7월 국가기간전산망계획관련사항 보고
9월 KAIST와 고려시스템 공동으로 명필 워드프로세서 개발
5. 정착기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은 우리 컴퓨터 역사에서도 하나의 획을 긋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누구도 성공을 자신하지 못했던 양대 스포츠 행사의 전산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나라의 컴퓨터산업은 거듭났다. 정보화사회 진행속도에도 엄청난 가속도가 붙었다.
컴퓨터업계에서는 지금도 86아시안게임과 88올릭픽 전산프로젝트를 「단일 프로젝트로는 최대규모」로 친다. 체육계에서도 이 양대 전산 프로젝트의 성공을 「스포츠과학의 새로운 장」이 열린 계기로 여기고 있다.
당시,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전산시스템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조사에 착수하게 되고, KAIST의 경험과 기술력을 확신하지 못해 LA올림픽에서 사용하던 SIJO의 전산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KAIST는 나름대로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 SIJO의 기술은 낙후된 기술이어서 예산낭비만을 초래할 것이라는 분석을 했다. 위원회와 KAIST간의 시각차가 깊어지는 가운데, KAIST측에서는 기술력 입증을 위해 인천체전의 전산시스템을 구축해 보겠다는 제안을 하게 되고, 결과는 성공하게 된다.
이 시기에 국산 마이크로컴퓨터를 제조하던 삼성반도체통신과 금성사는 국산 시기술 보호 조치를 정부에 촉구하고 84년 7월 3일 과기처는 역사상 최초로 두 민간기업이 신청한 컴퓨터 신기술 제품 보호요청에 대해 보호조치로서 행정망에 이들 회사의 제품을 우선 공급하기호 하엿다. 이는 5공화국 후반에서 6공화국 초반에 본격화된 국가기간전산망 시스템 구매과정이나 중형 컴퓨터(타이컴) 개발정책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이었다.
청와대가 직접 추진한 국가기간전산망사업 계획은 미래 전략산업으로서 정보산업의 육성과 효율적인 행정부 구축이라는 2대 과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범국가적인 관심을 보인 사건이었다. 물론 이 같은 프로젝트들의 추진과정에서 돌출되곤 했던 과도한 정치적 긴장감 때문에 나타난 폐해도 적지 않았다.
1984년
3월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 발족
4월 한국데이타통신, 전자사서함 서비스 실시
6월 국가기간전산망 계획 추진 보고
1985년
5월 국가기간전산망 중간보고 및 행정망 추진계획(안)
한국전자통신연구소( ETRI)발족
12월 제1단계 행정망 추진계획 중간보고
1986년
1월 다기능사무기기 보급계획(안)발표
5월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제정
12월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사행령 제정
공업진흥청, 정보교환용 한글표준코드 확정
6. 부흥기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에 거쳐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한 PC의 표준화와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PC의 보급률이 늘어나게 되고, PC용 모뎀을 이용한 PC통신과 인터넷이 급부상하게 된다.
93년, 기존의 486 프로세서의 성능을 최대 수십배나 끌어올리는 신기술을 채용한 인텔의 펜티엄칩의 개발은 95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95의 출시와 함께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급격한 성장을 촉진하게 되고, 이른바, 멀티미디어PC라는 이름아래 음성, 영상 등의 다중매체를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PC들이 큰 인기를 얻게 된다. 대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메모리반도체산업이 발달하게 되고,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저장하기위한 대용량 저장매체인 CD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한편, 91년의 WWW(World Wide Web)의 등장은 무한 정보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 이었다. 하이퍼텍스트 전송프로토콜 (Hyper Text Transfer Protocol : http)에 기반한 웹브라우저를 사용하여 세계를 하나로 묶는 인터넷 시대를 개막하는데 1등공신 이었다.
현재 한국의 PC보급율은 3.5가구당 1대, 인터넷 보급률은 가구당 0.25라인으로 세계1위이다. 삼성반도체시스템의 시장점유율도 세계1위로서, 한국은 전자정보계의 강국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1991년 - 월드와이드웹의 등장
1993년 - 펜티엄 칩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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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28
  • 저작시기200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0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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