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70 년대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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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60, 70 년대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소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서론

2.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인간 소외

3.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나타나는 소외의 모습들.

4.김승옥 소설에서 나타나는 소외의 모습들.

5.결론

본문내용

먼저 거리 선술집에서 만나 사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나’와 안의 말의 주고받음은 의사소통이라는 면에서는 애화이여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들이 주고받는 말에는 의미 있는 경험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들에게 공통의 관심사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관심의 초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꿈틀거림입니다. 난 여자의 아랫배를 가장 사랑합니다. 안형은 어떤 굼틀거림을 사랑합니까?”
“어떤 꿈틀거림이 아닙니다. 그냥 꿈틀거리는 거죠. 그냥 말입니다. 예를 들면……데모도……”
“데모가? 데모를? 그러니까 데모……”
“서울은 모든 욕망의 집결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라고 나는 할 수 있는 한 깨끗한 음성으로 지어서 대답했다.
그때 우리의 대화는 또 끊어졌다. 이번엔 침묵이 오래 계속되었다. (전집 1권, 206쪽)
대학원 신분의 안과 구청 병무계에서 일하는 ‘나’의 ‘꿈틀거림’에 대한 이해는 이렇게 어긋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안은 꿈틀거림에 대해 여자의 아랫배를 지목한 ‘나’의 말을 ‘음탕한 얘기’라고 평가하고, 나는 그런 안에 대해 ‘개새끼, 그게 꿈틀거리는 게 아니라고 해도 괜찮다’라고 악의 섞인 독백을 뱉는 것이다. ‘나는 그가 모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 듯하기도 했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 그들의 대화는 엄밀한 의미에서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독백의 교체일 뿐이다. 그들의 초점 없는 요설은 그들의 권태와 무위의 시간 소비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우연한 익명의 부딪침 속에서 의 미 있는 경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도회적 삶의 국면을 드러낸다.
안과 ‘나’의 오랜 침묵은 전혀 예기치 않는 계기를 통해 서로를 존중해주는 말투와 말의 순서까지 양보하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나는 심각한 얘기를 좋아하는 이 친구를 골려주기 위해서’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즉 ‘나’의 이야기는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로 안을 무안케 하려는 데 이 이야기의 목적이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전혀 뜻밖에도 안과의 소통을, 적어도 표면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야기는 각자가 ‘완전히’ ‘소유’한 경험에 관한 것이다.
“평화시장 앞에 줄지어 선 가로등들 중에서 동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등은 불이 켜 있지 않습니다. ” 나는 그가 좀 어리둥절해하는 것을 보자 더욱 신이 나서 얘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화신백화점 육층의 창들 중에서는 그 중 세 개에서만 불빛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해질 사태가 벌어졌다. 안의 얼굴에 놀라운 기쁨이 빛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빠른 말씨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서대문 버스정거장에는 사람이 서른두 명 있는데 그 중 여자가 열일곱 명이었고, 어린애는 다섯 명 젊은이는 스물한 명 노인이 여섯명입니다.”
“그건 언제 일이지요?”
“오늘 저녁 일곱시 십오분 현재입니다.” (전집1권, 207쪽)
자기만이 알고 있는 사소한 것을 온전히 소유하려는 이들의 태도는 그러나 온전한 개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규격화된 사회에 대한 절망적인 저항의 포즈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근대화된 세계에서 현실에 순응한 체 살아가는 방법은, 완강한 사회적 유용서의 틀 안에서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자신만의 내밀한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외된 도시 일상인들은 동료로부터, 그를 둘러싼 생활로부터, 심지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는 세계 속에서 체념한 채 살아가야 한다.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주변 환경은 온전한 인간적 유대를 가져다주지 못하며 기껏해야 도시적 삶을 지배하고 있는 총체화된 교환 원리인 돈이 매개될 때만 피상적인 만남이나마 가능하다. ‘나’와 안이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가난뱅이 냄새가 나는 서른대여섯 살짜리 사내’가 동행을 간청한다. 그는 오늘 아내의 시체를 몇 천원의 돈에 팔고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나’가 사내의 동행을 허락하는 것은 ‘아저씨 술값만 있다면’ 하는 조건이다. 사내의 안타까운 사정에 대한 ‘나’와 안의 태도는 냉담하기만 하다. 사내가 겪는 극단적인 실존의 위기 상황도 ‘나’와 안에게는 별반 중요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내와 헤어질 궁리만을 하고 있다. ‘나’와 안이 사내와의 만남을 지속하는 것은 돈 때문이다. 소외된 이들에게는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방관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 이 만남에서 한 개인이 겪는 고통에 대한 진실한 위로나 함께 아파하는 인간적인 유대는 보이지 않는다. 소외가 전면화 된 현실에서 개인의 무비판적 태도와 그러한 현실로부터 고통 받는 타자에 대한 비인간적 대응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5.결론
위에서 본 소외의 모습들은 삭막한 현실이라는 배경속에서 모두 나타나게 되고, 이들의 대상은 힘이 없는 소시민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소외의 형태는 너무나도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무력감, 무의미, 고립감, 무규제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외라는 이름으로 빈민계층의 삶을 사회 현실을 토대로 전면화한 이 두 작가들은 이러한 사회속에서 느끼는 차가움을 인간성조차 거부당한 현실속에서의 절망적인 심성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다양함 속의 공통점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소외는 시대가 변하여도 계속 유지되는 내면속의 고립적인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60, 70년대의 소외를 알아보았지만, 지금 우리는 소외를 느끼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소외는 물질적인 것과 배경적인 요소의 긍정적인 순환으로 인해 사라지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 언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소외’는 앞으로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현대의 작가들은 소외의 모습과 앞으로의 모습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또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모해 나갈 것인가? 라는 궁금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작가들이 표현한 소외는 ‘소외’를 ‘소내’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하기 보다는 ‘소외’의 모습을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표현하여서 그 본질적인 것을 이끌어냄으로서 그것을 공감하며 느껴보는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점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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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2.03
  • 저작시기2005.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4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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