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토인비의 문명사관 (文明史觀)
2. 문명 (文明)의 발생 (發生)과 성장 (成長)
3. 문명의 쇠퇴 (衰頹)
4. 문명의 해체 (解體)
사회체의 분열(分裂) 혼(魂)의 분열(分裂)
5. 토인비에 대한 비판과 평가
2. 문명 (文明)의 발생 (發生)과 성장 (成長)
3. 문명의 쇠퇴 (衰頹)
4. 문명의 해체 (解體)
사회체의 분열(分裂) 혼(魂)의 분열(分裂)
5. 토인비에 대한 비판과 평가
본문내용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이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피이터 하일은 토인비를 이렇게 공격한다. "토인비는 국가적 독립에 대한 불신의 생각을 품고 국민적 포부를 거부한다. 그는 국민 생활이니, 국민이 스스로를 보존하거나 확장하려는 국민적 욕망이니 하는 역사절 사실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일은 토인비를 상당히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토인비는 민족주의 같은 편협한 생각을 발전을 배격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이 비록 인류 자체라 하더라도 배격한다. 숭배의 대상은 비역사적인 것 밖에 없다는 것이 토인비의 사상이다.
둘째로, 토인비에 대한 중요한 비판은 그의 연구는 경험주의적 연구 방법에 의하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료(使料)의 선택이나 해석이 반드시 경험주의적 방법에 의하지 않고, 따라서 어떤 결론은 반드시 경험주의적 방법에 의하여 도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諸)문명에 패턴이 있다는 생각만 하더라도 경험적 방법에 의한 논증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명들의 패턴의 도출도 헬라 문명에서 발견한 것을 표준으로 하여 그것을 억지로 다른 문명에 틀어 맞추었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쇠퇴기의 시작을 무리하게 너무 초기에 잡았다던가 또는 어떤 문명의 멸망은 분명히 외적 침략에 의하였는데도 그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든지 하는 비판이다. 이러한 오류는 특히 토인비의 지식이 충분히 미치지 못하고 있는 분야에서 한결 더 심하다. 그리고 경험적 방법과는 분명히 거리가 먼, 경우에 따라서는 그 반대의 신화의 방식이 너무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셋째는 그의 연구가 성(聖) 오거스틴에 맞먹는 하나의 신의론(神義論)이라는 비판이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는 역사학이 아니라 신학(神學)이나 철학(哲學)이나 예언(豫言)이라는 주장이다. 토인비의 역사학이 역사학으로서는 너무나 종교적 관념이 강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그것을 신의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의론은 신학인데 어느 신학자도 토인비의 역사학을 신학이라고 말하지 않으니 말이다. 토인비의 역사관이 일종의 종교사관이고 그가 성서를 많이 인용하고 있기는 하나 그는 그리스트교를 절대적 계시나 진리로는 믿고 있지 않다. 토인비의 역사학은 너무 철학적이고 신비적이기는 하나 철학이나 신학으로서는 너무나 역사학적이다.
토인비의 역사학은 사실 인식으로서의 경험 과학적 요구와 의미니 운명이니 가치에 관한 사상적 요구를 최대한으로 결합시킨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 자리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역사의 연구≫가 비록 역사학으로서의 오류와 결함이 적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학자적 자격을 손상시킬 수는 없다. 예컨대, 그가 문명과 종교의 관계를 바꾸어 놓은 것을 가지고 그의 이론에는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에서 종래의 생각을 솔직히 시정하는 태도야말로 오히려 그의 학자적 풍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하일은 토인비가 서구문명이 아직 성장기에 있는지 쇠퇴기를 지나고 있는지 정확한 판단을 못 내리고 있다고 조소하고 있는데 토인비의 그런 태도야말로 오히려 그가 성실한 학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판단을 섣불리 할 수 있는 사람을 학자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차하순 『史觀이란 무엇인가』 서울 청람문화사 1984
데이빌 베빙톤 역:천진식, 김진영 『역사관의 유형들』 서울, 두란노서원 1986
강기철 『토인비와 文明(文明의 再建)』 서울, 샘터 1982
Toynbee,Arnold Joseph 역:원창엽 『토인비와의 대화』 서울, 홍신문화사 1994
둘째로, 토인비에 대한 중요한 비판은 그의 연구는 경험주의적 연구 방법에 의하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료(使料)의 선택이나 해석이 반드시 경험주의적 방법에 의하지 않고, 따라서 어떤 결론은 반드시 경험주의적 방법에 의하여 도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諸)문명에 패턴이 있다는 생각만 하더라도 경험적 방법에 의한 논증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명들의 패턴의 도출도 헬라 문명에서 발견한 것을 표준으로 하여 그것을 억지로 다른 문명에 틀어 맞추었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쇠퇴기의 시작을 무리하게 너무 초기에 잡았다던가 또는 어떤 문명의 멸망은 분명히 외적 침략에 의하였는데도 그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든지 하는 비판이다. 이러한 오류는 특히 토인비의 지식이 충분히 미치지 못하고 있는 분야에서 한결 더 심하다. 그리고 경험적 방법과는 분명히 거리가 먼, 경우에 따라서는 그 반대의 신화의 방식이 너무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셋째는 그의 연구가 성(聖) 오거스틴에 맞먹는 하나의 신의론(神義論)이라는 비판이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는 역사학이 아니라 신학(神學)이나 철학(哲學)이나 예언(豫言)이라는 주장이다. 토인비의 역사학이 역사학으로서는 너무나 종교적 관념이 강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그것을 신의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의론은 신학인데 어느 신학자도 토인비의 역사학을 신학이라고 말하지 않으니 말이다. 토인비의 역사관이 일종의 종교사관이고 그가 성서를 많이 인용하고 있기는 하나 그는 그리스트교를 절대적 계시나 진리로는 믿고 있지 않다. 토인비의 역사학은 너무 철학적이고 신비적이기는 하나 철학이나 신학으로서는 너무나 역사학적이다.
토인비의 역사학은 사실 인식으로서의 경험 과학적 요구와 의미니 운명이니 가치에 관한 사상적 요구를 최대한으로 결합시킨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 자리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역사의 연구≫가 비록 역사학으로서의 오류와 결함이 적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학자적 자격을 손상시킬 수는 없다. 예컨대, 그가 문명과 종교의 관계를 바꾸어 놓은 것을 가지고 그의 이론에는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에서 종래의 생각을 솔직히 시정하는 태도야말로 오히려 그의 학자적 풍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하일은 토인비가 서구문명이 아직 성장기에 있는지 쇠퇴기를 지나고 있는지 정확한 판단을 못 내리고 있다고 조소하고 있는데 토인비의 그런 태도야말로 오히려 그가 성실한 학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판단을 섣불리 할 수 있는 사람을 학자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차하순 『史觀이란 무엇인가』 서울 청람문화사 1984
데이빌 베빙톤 역:천진식, 김진영 『역사관의 유형들』 서울, 두란노서원 1986
강기철 『토인비와 文明(文明의 再建)』 서울, 샘터 1982
Toynbee,Arnold Joseph 역:원창엽 『토인비와의 대화』 서울, 홍신문화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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