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고구려본기 고국천왕, 산상왕, 동천왕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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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

2.본론
2.1.산산왕의 등극
2.2 우씨왕후
2.3 주통부인
2.4 고구려의 결혼제도
2.5 고구려 여성의 지위

3.결론

본문내용

되어 왕이 일어나 궁궐로 돌아왔다.
13년 봄 3월에 왕후는 왕이 주통촌에 여자에게 갔던 것을 알고 질투하여 몰래 병사를 보내 그녀를 죽이게 하였다. 그녀가 이 소문을 듣고 남자 복장을 한 채 달아났다. 병사들이 쫓아가 해치려 하자 그녀가 묻기룰 "너희들이 지금 와서 나를 죽이려는 것이 왕명이냐, 왕후의 명이냐? 지금 내 뱃속에는 아이가 있으니 이는 실로 왕이 주신 혈육이다. 내몸을 죽이는 것은 좋으나 왕자마저 죽이려느냐"라고 하였다. 병사들이 감히 죽이지 못하고 돌아와 그녀의 말을 보고하니 왕후가 노하여 기필코 그녀를 죽이려고 했으나 결행하지는 못했다.(중략)가을 9월에 주통촌의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 (중략)그 아이 이름을 교체(郊 )라 하고 그 어머니를 소후로 삼았다.
17년 봄 정월에 교체를 왕태자로 삼았다.
동천왕(東川王)[혹은 동양(東襄)이라고 한다]은 이름이 우위거(憂位居)이고 어릴 때 이름은 교체이니 산상왕의 아들이다. (중략)왕은 성품이 너그럽고 인자하였다. 왕후가 왕의 마음을 시험해보고자 하여 왕이 사냥 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사람을 시켜 왕의 수레 끄는 말의 갈기를 잘랐다. 왕이 돌아와 말하기를 "말에 갈기가 없으니 불쌍하다"라고 하였다. 왕후가 또 시중드는 이를 시켜 음식을 올릴 때 짐짓 국을 왕의 옷에 엎지르게 했으나, 역시 왕은 화를 내지 않았다.(중략)
8년에 위에서 사신을 보내와 화친하였다. 가을 9월에 태후 우씨가 죽었다. 태후가 임종시에 유언하기를 "내가 행실을 잘못했으니 장차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서 국양왕(國壤王)을 뵙겠는가? 만을 여러 신하들이 나를 차마 구렁텅이에 버리지 못하겠거든, 산상왕의 능 옆에 장시 지내주기를 청하노라"라고 하였다. 드디어 그 말대로 장사 지냈더니, 무당이 말하기를 "국양왕이 저에게 강림해 말씀하시기를 '어제 우씨가 산상왕에게 가는 것을 보고 분함을 이기지 못해 마침내 그와 더불어 싸웠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얼굴이 뜨거워 차마 나라 사람들을 볼 수가 없다. 네가 조정에 알려 나의 무덤을 물건으로 가리게 하라'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능 앞에 소나무를 일곱 겹으로 심었다.
※참고문헌
1.이옥, 주용립, 지병목『고구려연구』,주류성, 1999, 서울
2.김용만,『고구려의 발견』,바다출판사, 1998,서울
3.김부식, 이강래 옮김,『삼국사기Ⅰ』,한길사, 1998, 서울
4.이현희,『한국의 여인상(고대, 삼국편)』,명문당, 1992,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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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5.03.24
  • 저작시기2005.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9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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