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정치적 고찰 (사도세자의 고백)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들어가는말

2.본문
-영조의 즉위과정
-사도세자의 탄생과 성품 그리고 정치적 성향
-영조가 세자에 등을 돌린 이유( + 나주벽서사건,토역경과사건)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르게 된 까닭(+ 세자의 반격,나경언의 고변)
-뒤주에 갇힌 세자

3. 나가는말

본문내용

사이가 좋지 않게 되자 조카 홍수영의 소청으로 썼다. 친정을 옹호하면서 사도세자를 정신병자로 몰고 간 것이며 한중록은 정치적 색깔을 다분히 띠고 있다. 혜경궁 홍씨가 정신병이 있는 사도세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정신병이 있다는 것은 한중록에서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부정할 수 없는 정치적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남편의 죽음에 대한 변명을과 자신을 위한 글을 쓴 것에 불과한 것이다.
사도세자의 고백의 책에 덧붙여 최근 공개된 묘지문에 대해 언급하고자하다.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둬 질식하게 한 영조가 아들의 죽음을 비통해하며 참혹한 심경을 토로한 묘지문이 250여년 만에 공개되었다. ‘어제사도세자묘지문’으로 1762년 7월 영조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영조는 “너는 무슨 마음으로 칠십의 아비로 하여금 이런 경우를 당하게 하는고”로 시작하는 이 묘지문에서 영조는 “그래서 난잡하고 방종한 짓을 타일렀으나 제멋대로 군소배들과 어울리니 장차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노라”하며 뒤주 속에 가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어 아들의 죽음이 뜻밖의 일이라며 “여러 날 지키게 한 것은 종료와 사직을 위함이었는데...진실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랐으나 9일째 이르러 네가 죽었다는 망극한 비보를 들었노라”며 원통해 하고 있다. 뒤에서 말한 것처럼 정쟁으로 노론에 의해서 사도세자가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아들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닌 훈육을 위해 뒤주에 가두었다고 쓴 글이 나오면서 그 배경을 둘러싼 새로운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여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뒤주 속에 갇혀 있게 하였는데 과연 훈육을 위한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묘지문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가 계속 되겠지만 영조역시 혜경궁 홍씨처럼 변명을 위함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역사는 그 후세의 세력에 의해 성군이 폭군으로, 폭군이 성군으로 기록되기도 하고 사도세자처럼 죽음을 당한 이유도 그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기에 억울하게 죽어간 사도세자의 한은 잊혀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사도세자(思悼世子)의 悼가 슬퍼할 ‘도’다. 영조가 직접 시호를 지은 것으로 어떤 이유였을지라도 자신의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의 슬픔일 것이다.
『사도세자의 고백』 -이 덕 일
  • 가격1,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5.05.22
  • 저작시기2005.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812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