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리더쉽: 제도화된 신화화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김정일 리더쉽: 제도화된 신화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김정일 인물을 보는 프리즘

Ⅲ. 김정일체제의 인적기반

Ⅳ. 권력승계: 김정일체제의 공식화

Ⅴ. 결론을 대신하며

본문내용

대신하며
북한사회는 한 세대를 넘게 진행되어 온 권력승계가 후계자가 누구로 지목될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사회에서 아무런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은 그런 반대세력들에게 이러 저런 이유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하여 반대세력들을 제거해 나갔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의 이렇다할 반발이 없었다는 것은 북한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지목되기 전부터 신화화 작업을 통해 인민대중들에게 김일성과 같은- 그것이 김일성에 의한 일상화된 카리스마의 전이가 되었던 아니면 혁명역사의 창조가 결부된 인격적 리더쉽의 탕춰이 되었든- 이미지를 얻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혁명1세대라는,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오래전부터 떨쳐 온 든든한 배경을 가지고 있던 김일성과는 달리 김정일은 뚜렷이 내세울만한 국가 혹은 당에 대한 공로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신화화 작업도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든든한 배경은 그의 아버지인 김일성이었고 또 김일성 세대의 여러 혁명1세대들과 측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전면에 부상을 할 수 있었다.
김일성과 함께 항일혁명투쟁을 하였던 혁명1세대와 그들의 직계 후손인 혁명2세대는 김정일 체제를 성립하고 유지시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집단이다. 혁명 2세대의 경우 대부분 김정일과 학연으로 얽혀져 있는 집단들이고 그에 대한 충성심도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 체제에 있어 또 중요한 집단은 혈연으로 맺어진 친인척들일 것이다. 국가를 하나의 가족으로 인식하는 북한사회이니 만큼 혈연으로 맺어진 친인척들이 그를 보좌하고 있다는 것은 가장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정일은 충성을 맹세한 이러한 탄탄한 조직기반 아래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64년 처음으로 권력중심에 진입하는데 성공했고, 1970년대 후반부터는 본격적인 후계체제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노력하였다. 대중동원 운동과 후계체제에 대한 장애물을 제거해가며 자신의 위치를 높이고자 하였다. 또한 실질적으로 당권을 행사할 수 있던 1980년대에는 북한의 3대 주요기관에 김일성과 함께 모두 선출됨으로써 단순한 후계자의 위치를 넘어 실질적 통치자로서의 김정일의 위상이 공식화 되었던 것이다. 공식적으로 권력승계가 마무리 된 1990년대에는 김일성 사망 이전에 법제도적으로 권력승계를 해나갔고, 김일성 사후에는 당비서와 국가 주석직보다는 수령의 지위를 확보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97년에는 3년 동안 공석으로 두었던 당 총비서자리에 취임하기에 이르렀고 1998년에 가서는 국가주석제를 폐지하고 국가위원장직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헌법개정을 단행해 공식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출범을 알렸던 것이다.
김정일이 당 총비서직과 국방위원장직은 승계했으면서 국가 주석직을 폐지한 이유는 북한사회에서 50년간 신화화 되어 온 강력한 카리스마스의 소유자인 길일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통치능력이나 카리스마가 떨어지는 자신이 아버지가 지녔었던 모든 지위를 그대로 물려받는 것이 아직은 적절치 않은 조처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에 의해 후계자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쌓기 위해 수년간 노력해 왔지만 김일성이 일제 하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장이었다는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반면, 역사에서도 흔치 않은 부자세습을 통해 권력을 쥔 김정일이 김일성의 모든 위치를 소유한다는 것은 앞으로 김정일 정권을 유지시켜 나가는데 큰 부담으로 다가올 뿐 아니라 반대세력과 인민대중들의 불만을 살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 유교적 전통을 강조하며 김일성을 영원한 국가주석으로 남겨두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공식적으로 김정일 정권이 출범하고 지금에 이르러, 김정일 정권의 안정성은 정치·경제·사회문화 그리고 국제정치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형식적인 안정성은 확보하고 있다고 본다. 형식적 안정성을 가능케 하는 요인으로는 한국전쟁 이후 '반종파투쟁'을 통해 정치적 반대세력을 완전히 거세하였다는 점, 북한대중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정보 통제 하에 있다는 점, 일제 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주적 토론문화와 합리적 비판문화가 부재한 북한의 독특한 정치문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권력승계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이 형식적 안정성이라 하더라도 김정일 정권의 단기적 안정성은 어느 정도 보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고민은 극심한 식량난을 비롯해 경제난 극복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는 새로운 영도자로서 북한 주민들에게 무언가 희망을 안겨주지 않으면 안 되는 부담을 짊어지고 있고 그 역시 그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 <참고문헌>
김광운,“북한 권력구조의 형성과 간부충원: 1945.8-1947.3”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김성철,『김정일의 퍼스낼리티·카리스마·통치스타일』(서울: 통일연구원, 1999.
남북문제연구소,『김정일의 전모』(서울: 남북문제연구소, 1995)
서재진, 『주체사상의 형성과 변화에 대한 새로운 분석』(서울: 통일연구원, 2001).
오일환·정순원,『김정일시대의 북한정치경제』, (서울: 을유문화사, 1999).
이대근,『북한 군부는 왜 쿠데타를 하지 않았나』(서울: 한울 아카데미, 2003).
이찬행,『김정일』, (서울: 백산서당,2001)
전현준,『김정일정정권의 권력엘리트 연구』,(서울L 통일연구원, 1995)
정영철,‘김일성과 김정일의 리더쉽비교: 수렬체계의 구조적 분석과 전망,’경제와 사회 제55권, 한국 산업사회학회, 2002.
정창현,『곁에서 본 김정일』(서울: 김영사, 2000)
최완규,‘북한 최고인민회의 11기 대회’『정세와 정책』세종연구소 월례보고서, 제87호,
조영환,『매우 특별한 인물, 김정일』(서울: 지식공장소, 1996).
최진욱,『김정일의 당권장악과정 연구』(서울: 통일연구원, 1996).
중앙일보, 1997년 10월 9일자
조선일보, 1998년 9월 12일자.
《NK조선》http://www.nkchosun.com.

키워드

  • 가격2,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5.06.22
  • 저작시기2004.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390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