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 문화유산-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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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창덕궁의 역사

Ⅲ. 창덕궁의 배치

Ⅳ. 창덕궁의 전각과 문루
1)돈화문(敦化門)
2)인정문(仁政門)과 인정전(仁政殿)
3)선정전(宣政殿)
4)희정당(熙政堂)
5)대조전(大造殿)
6)신・구 선원전(新・舊 璿源殿)
7)낙선재(樂善齋)
8)상량정(上凉亭)
9)승화루(承華樓)

Ⅴ. 창덕궁의 후원
1)영화당(暎花堂)과 부용정(芙蓉亭) 주변
2)애련지(愛蓮池)주변과 연경당(演慶堂)
3)존덕정(尊德亭)과 관람정(觀纜亭) 주변
4)옥류천(玉流川 )주변

Ⅵ. 맺음말

본문내용

은 건축물이기보다는 공예적 기법이 더욱 돋보이는 건물로 형상이나 평면의 구성이 전국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정자이다.
③승재정(勝在亭)
관람정의 건너편 언덕에 위치한 것으로 정면, 정면 측면 각 1칸에 사모 기와지붕을 한 익공집으로 공포나 가구, 규모는 농수정과 동일하다. 다만 ‘亞’자 난간을 돌리고 난간 가운데를 터놓아 출입하게 한 점이 다르다.
④폄우사( 愚 )
존덕정의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건물로 순조의 세자로 추존된 익종이 독서하는 곳으로 전하나 사는 무술연마장의 의미여서 왕가의 활터라고도 추측된다. 폄우사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1간으로 낮은 장대석 한 벌대 기단 위에 네모뿔대의 다듬은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초익공이나 창방머리는 초각되어 소로를 받았고 맞배지붕에 홑처마로 되어 있다.
4)옥류천(玉流川 )주변
후원 중 가장 깊은 골짜기 물길을 내고 그 주변에 정자를 지었다. 제일 위쪽에 청의정 그 아래에 태극정, 그 아래에 소요정과 용산정, 제일 밑에 취한정을 지었다. 소요정 바로 위에는 어정이라는 샘이 있고 그 아래 바위를 다듬어 샘물이 돌아 흐르도록 하였고 그 바위에는 인조의 친필로 ‘옥류천’이라는 글씨와 숙종이 지은 “飛流三百尺 遙落九天來 看是白虹起 飜成萬壑雷(폭포수 물길은 삼백 척에 이르고 아득히 먼 하늘에서 떨어지네. 이를 보니 흰 무지개가 일고 굽이굽이 깊은 골짜기에 우렛소리 가득하네.)”라는 시구를 새겼으며 그 아래에는 작은 폭포를 만들었다.
①취한정(翠寒亭)
옥류천 입구에 위치한 이 정자는 왕이 어정의 낙수를 들으며 귀로에 잠시 쉬어 갈 수 있게 만든 곳으로 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팔작지붕을 이은 정자로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높은 초석과 가는 방주 8개가 창방으로 엮어져 바로 도리를 받는 간단한 구조이며, 4면이 완전히 개방되고 하부에만 머름과 난간이 있다.
②농산정(籠山亭)
<동궐도>에 취한정 서북쪽에 있는 이 건물 주위에 담장이 묘사되어 있으나 지금은 없다. <궁궐지>의 기록을 보면 연산군이 춘당대 동남쪽의 서흘대와 더불어 호탕한 생활을 즐기던 곳으로 되어 있다. 농산정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마루 2칸, 방2칸, 부엌 1칸의 평면 구성을 한 집이다.
③태극정(太極亭)
정면과 측면 각 1칸의 사모지붕을 한 익공집으로 인조 14년에 소요정과 함께 세워졌으며, 창건 때의 이름은 운영정(雲影亭)이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다른 부재에 비하여 초석이나 기둥이 낮아 이 건물과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는 농수정이나 승재정보다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태극정은 난간도 낮은 편이다.
④청의정(淸 亭)
정면, 측면이 각 1칸 규모로 사모 초가지붕을 이은 단층 익공집으로 인조 14년에 건립되었다. 이 집은 사각형 평면에 팔각형 지붕을 덮은 것이다. 가늘고 긴 원형의 기둥을 세워 축부를 짜고 기둥 윗몸에 창방과 초익공을 결구하였다. 여기에 팔모로 짜여진 도리와 장요를 놓았으며 삿갓 모양의 서까래를 올리고 짚을 이어 초가로 지붕을 이었다.
⑤소요정(消遙亭)
정면 측면 각 1칸의 사모지붕 익공집인 소요정은 원형 초석에 가는 원주 4개가 세워졌으며 그 상부는 다른 사모지붕과 같다. 이 건물에서는 일반적인 1칸의 사모지붕 정자와는 달리 기단을 기둥 위치까지 만으로 축소하고 기둥 밖으로 쪽마루도 내지 않았으며 난간도 주칸에 머름을 두었을 뿐 매우 소박하고 절제된 형태를 띠고 있다. 소요정은 숙종, 성종, 선조, 인조 등의 글씨가 걸려 있었다는 ?궁궐지?의 기록으로 볼 때 옥류천 주변의 정자 중 특별히 사랑을 받은 건물로 보인다.
Ⅵ. 맺음말
창덕궁은 조선 3대 임금인 태종 5년에 경복궁의 이궁으로 창건된 궁궐이다. 이후 태종 재위 13년 동안 계속 증·개축되었고 임진왜란과 일제 통치기간 등을 거치며 수 없이 변형되어 600여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복궁, 경희궁, 덕수궁 등 서울에 있는 다른 궁궐과는 달리 굴곡이 있는 자연지형에 지어진 창덕궁은 자연을 훼손하여 지여진 것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되어 지어진 궁궐이다. 창덕궁내의 궁궐들을 하나하나 잘 살펴보면 공예품을 연상시킬 만큼 뛰어난 우리 선조들의 건축 기술과 화려한 색감이 나타나 아름다우면서도 화려한 건축물들이다. 그리고 낙선재나 연경당과 같이 일반 양반들의 전통 가옥처럼 화려한 단청이 들어가지 않아 소박한 건물들도 이 화려한 궁궐 건축물들과 잘 조화되어 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주위의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과 하나가 된 듯 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자연과 떨어진다면 건물들의 아름다움의 빛을 잃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후원의 정자 등의 건축물들은 자연 속에 있는 하나의 조형물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자연을 보호하고 조화를 추구했던 우리 조상들의 사상이 잘 드러나 있었다. 이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된 창덕궁은 서울 내에 있는 어느 궁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창덕궁은 변화하는 계절마다 다른 자연과 어우러져 철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준다고 한다. 기회가 있다면 겨울이나 가을에 다시 한 번 창덕궁을 방문하여 그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
이 레포트를 통해서 그냥 눈으로만 보아 왔던 창덕궁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흐름과 더불어 변천과정을 알 수 있었다. 비록 건축용어 들이라 어려웠지만 하나하나의 건물마다의 다른 특징과 지어진 배경이나 용도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먼저 창덕궁에 대해 공부하고 관람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제 시대와 해방 이후의 많은 관람객들로 인해 건물들이 많이 훼손되어 계속 복원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훼손되어 현재까지도 제한적인 관람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앞으로 복원기술이 더 발달하여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잘 보존했으면 하는 바람이 남는다.
<참고자료>
김동현, <서울의 궁궐 건축>, 시공사, 2002
홍대형, <한국의 건축문화재> 1.서울편, 기문당, 2001
인터넷 창덕궁 홈페이지 http://www.cdg.go.kr
http://www.ujuhim.co.kr/%C3%A2%B4%F6%B1%C3/창chang1-0.htm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oc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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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8.03
  • 저작시기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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