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페로니즘(peronism)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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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연구방법
2. 연구범위

Ⅱ. 본론
1. 포퓰리즘(Populism) 개념
2. 페로니즘에 관한 기존의 연구
3. 도밍고 페론과 페로니즘의 등장
4. 페론정권 종식 후 아르헨티나
5. 페론의 재집권
6. 현재의 페로니즘

Ⅲ. 결론

본문내용

세계경제가 나빠지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이다(한국일보 2004. 8. 17).
<참고 1>
페로니즘은 다른 남미 국가의 일반 포퓰리즘에 비해 강력한 유산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왜 페로니즘이 아르헨티나에서 특별히 강렬했다고 보는가.
"아르헨티나의 페로니즘은 특히 노동 친화적인 정책을 많이 써 노동계급에게 강력한 인상을 심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자본주의 발전이 앞서 노동계급이 일찍 발전하여 질과 양에서 노동운동이 발전했다. 페로니즘을 수용할 토양이 보다 좋았던 것이다."
키르치네르 대통령의 높은 인기는 포퓰리즘과 관련 있나.
"경제정책 내용 면에서는 전임 대통령 두할데와 다른 게 없다.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부패척결을 무기로 구 정치인을 공격함으로써 높은 인기를 누렸다. 평가를 위해서는 개혁을 더 지켜봐야 한다."
* 출처 : 한국일보 2004. 8. 17. 포퓰리즘 권위자 베렌츠타인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 中
<그림 1> 사회지표 : 실업과 빈곤, 1980-90
출처 : Ronaldo Munck, 『Contemporary Latin America』, 2003.
Ⅲ. 결론
1946년 7월 3일 노동자의 지지를 토대로, 페론은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는 노동자 우대 정책을 기본으로 한 "포퓰리즘", 즉,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과 더 많은 휴식과 사회보장제도를 제공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지지세력이였던 노동자는 1943-45년 페론의 적극적인 보호와 노조의 확대로 노동운동의 활성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르헨티나 노동운동은 1930년대에 이미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기반을 갖고 있었다. 페론이 군사정부의지지 기반을 찾아 노동자들에게 눈을 돌린 것은 이들이 '무력한 대중'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산업화와 국가발전을 위해 이들이 중요한 세력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페론측에서는 노동자들을 더 강력하게 조직해내어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삼고자 한 것일지라도, 노동운동의 입장에서는 그들 자신의 요구를 체제내에서 대변해줄 수 있는 정치가를 만난 것이었다. 따라서 페로니즘은 노동계급의 요구와 페론의 요구가 맞물린 지점에서 생겨났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계획에 의해 생겨난 결과는 아니었다. 페론이 처음부터 노동계급만을 협력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노동문제를 사회경제적 통합과 연관시키면서 다른 사회계급의 지지도 받고자 했다. 그러나 산업가들과 기존 정당의 정치가들은 협력을 거부했다. 페론은 이러한 상황에서 전국적인 노조를 형성하고 그 지도부를 정부의 영향력 아래 놓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1948년 '정의주의(Justicialism)'라는 이름으로 공식화하였다.
이처럼 아르헨티나에서 노동운동의 근원이 되다시피한 페로니즘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우선 인기영합주의 즉, 포퓰리즘의 부정적 정의로 사용되는 대중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들의 의견을 쫓는 성향으로 정의하는 시각과 아르헨티나에서 독특하게 나타난 국가사회주의의 한 형태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여기서 논하는 국가사회주의는 열광적인 민족주의, 대중선동, 독재적 지배라는 정의의 차원을 뛰어넘어 자본주의의 폐해를 국가권력에 의하여 조정하려는 것으로 사회개량주의의 입장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 시각은 민족성으로 대표될 수 있다. 페론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살펴본 본 연구에서 페로니즘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다만 인기영합을 위해 노동세력을 끌어들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 현재의 페로니즘에 관한 검토를 수행한 것도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메넴 대통령을 지나 현 키르치네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아르헨티나의 이념이 되다시피한 페로니즘과 관련이 있으며,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혁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참고1>의 베렌츠타인 교수 인터뷰 내용처럼 아르헨티나가 페로니즘을 수용할 수 있는 역사적 토양이 좋았다면, 그 토양에서 생산될 미래의 생산물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1. 단행본
강석영. 『라틴아메리카史』. 서울 : (주)대한교과서, 1996.
김병국. 『라틴아메리카의 도전과 좌절』. 서울 : 나남, 1991.
송기도·강준만. 『콜럼버스에서 후지모리까지』. 서울 : 개마고원, 1996.
송기도.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 서울 : 개마고원, 2003.
스키드모어·스미스. 『라틴아메리카의 민주화』. 서울 : 법문사, 1989.
오도넬·슈미터·화이트헤드. 『라틴아메리카와 민주화』. 서울 : 한울, 1992.
이성형. 『라틴아메리카』. 서울 : 역사비평사, 2002.
임상래. 『중남미 사회와 문화』. 부산 : 부산외대, 1998.
Ronaldo Munck. Contemporary Latin America. Palgrave macmillan, 2003.
2. 논문
이계현. "아르헨티나 노동운동과 페로니즘의 기원." 서울대학교 서양사연구회.
「서양사연구」 제19호. 1996.
2. 인터넷
http://sigma101.nazip.net/menu_5_data/politic.htm
http://edu4u.cnei.or.kr/ez2000/ktmoon/7jung/p5-1-2-4.htm
http://www.naver.com
http://www.cri.co.kr/news/newssub_read.htm?menu=D18&Sequence=29266&cpage=5
http://honam.breaknews.com/sub_read.html?uid=2941§ion=section%201
http://latinbiznet.com/news/univ_news.php3?mode=read&table=outkorea&code=2771
3. 기사
한국일보 2004. 8. 17. "정권 경제색깔 달라져도 '포퓰리즘 뿌리'는 동일"
한국일보 2004. 8. 18. "[세계화와 민주화의 현장-21세기 남미를 가다]<7>아르헨티나-
② 포퓰리즘의 과거와 현재"
한국경제신문 2004. 8. 20. "남미의 진주 아르헨티나의 눈물 (3) '페로니즘'에 멍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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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9.30
  • 저작시기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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