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영웅화 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이순신의 영웅화 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이순신에 대한 평가
1. 전란당시: '명장 원균의 전공을 가로챈 이순신'
2. 전란이후 : '희대의 영웅 이순신'
3. 일제시대 : '하늘이 내신 성웅 이순신
4. 해방 이후 70년대 말까지 : '하늘이 내신 성웅 이순신'
5. 현대 : 다시 등장한 '명장 원균, 원균의 공을 가로챈 이순신'

II. 그러면 왜 지금 이순신일까?

III. 이순신 폄훼문학.

Ⅳ. 박정희 대통령의 이순신 현창

본문내용

전쟁놀이를 하는등은 말이 안된다.
더구나, 사료를 살펴 보면, 유성룡이 전쟁놀이에서 져서 모욕을 당하고 죽도로 맞았던 원한으로 원균의 벼슬길을 막았다는 것은 전혀 근거없는 왜곡이다. 그 근거가 명확하게 <선조실록>에 들어 있다. 원균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바로 전 해에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었다가 파면된 일과 관련된 사안이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전라좌수사 원균은 전에 수령으로 있을 적에 고적(考績)이 거하(居下)였는데, 겨우 반년이 지난 오늘 좌수사에 초수(超授)하시니 출척권징(黜陟勸懲)의 뜻이 없으므로 물정이 마땅치 않게 여깁니다. 체차를 명하시고 나이 젊고 무략(武略)이 있는 사람을 각별히 선택하여 보내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 <선조실록> 선조 24년 2월 4일 신미조
이런 <선조실록>의 기록으로 보아, 원균은 전에 어느 지방의 수령으로 있다가 평가가 나빠서 파면되었고, 파면 된 지 반년 뒤인 이때에 품계를 뛰어올린 승진인 전라좌수사직 임명을 받았다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간원이 원균의 전라좌수사 임명을 반대한 논거는 '원균 자신이 수령으로서 거둔 나쁜 성적' 때문이었고 그 반대를 선조가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러니, 원균의 출세를 막은 것은 원균 자신의 과거 행적이었을 뿐, 결코 '유성룡이 어렸을 때 맞으면서 품은 원한 때문에 원균의 앞길을 가로막은 탓'이 아니었다.
아무튼 원균의 뒤를 이어 새로 유극량이 전라좌수사직에 임명되었다가 그도 사헌부의 논계에 의해 2월 8일자로 파면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다시 임명된 장수가 이순신으로서 그 직을 지니고 임진왜란을 맞았던 것이다.
Ⅳ. 박정희 대통령의 이순신 현창
만주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육사를 읍소 해서 입학한 후 만주에서 독립군 잡는데 일본인보다 더 악랄하게 앞장섰다는 박정희가 집권을 하고 나서 대대적으로 부각을 시켰던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다.
박정희는 어려서 춘원 이광수가 동아일보 에 연재했던(1931.5.30~1931.4.3까지) 성웅 이순신에 열광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시대 일본군 격퇴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이순신 장군에 관한 연재소설이 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성웅 이순신의 내용 때문이었다.
이광수의 이순신은 그가 1922년에 발표한 <민족개조론>의 소설적 번안이다. 즉 조선인은 당파 싸움만 일삼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없는 사악한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광수가 쓴 <이순신> 속의 이순신은 왜적과 싸우지 않고 조선 왕실의 무능과 부패와 싸우다가 모함을 뒤집어쓰고 백의 종군하고 임진왜란은 조선과 왜적의 싸움이 아니라 성웅과 속물의 싸움으로 치환된다. 거기에 반해 왜장의 용맹과 행동거지의 칭송은 어린 박정희에게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간 곳 없고 조센징에 대한 환멸만 갖게된다.
창조적 독해가 모자랐던 박정희는 "당파싸움이 나라를 망쳤다"는 것과 "조센징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말을 신봉했고 쿠데타로 탈취한 나라를 <일사불란>과 <무한폭력>으로 다스렸던 것이다.
이광수의 이순신 속에서 "나" 는 없고 '국가'만 있는 성웅 이순신을 축출한다. 그러자 뼛속 깊이까지 중독된 국가주의자이면서 스스로 천황이 되고싶었던 박정희에게 이순신은 자신이 다스릴 나라의 이상적인 신민(臣民) 상이 되고 이광수와 박정희에 의해 조작된 '바보 이순신'성웅정신은 한 마디로 말하면 멸사봉공(滅私奉公) '나를 죽이고 나라를 받든다' 뜻을 가진 이 구호는 주군에 대한 끝없는 충성을 좌우명으로 했던 사무라이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박정희 관련 서적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파괴력이 있고 섬광처럼 빛나는 부분은 바로여기다.
) 알몸 박정희, 최상천
저자 최상천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나는 옷깃을 여미고 진실을 말하려고 한다. 혹시 충격을 받을 분이 있더라도 나라의 장래를 위해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성웅은 사무라이다."
멸사봉공이란 사람의 머리에서 '나를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국가'를 집어넣는 주사기라고 이다. 일제 엘리트 교육을 통해 '나'는 없고 '국가' 만 알도록 세뇌된 사무라이 박정희의 뇌 속에서 성웅 이순신 또 다른 말로는 바보 이순신이 탄생하게 된다. 왜냐면 나라는 존엄성이 사라지니 말이다.
풍수지리상으로 중앙청과 청와대를 지키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박정희의 궁궐을 지키는 위병소의 보초로 전락하면서 오른손에 장총을 쥔 채 왼손은 열중 쉬어를 한 초병의 모습을 이순신 장군의 칼에 적용하기 위해 어색하게 오른손으로 칼을 쥐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일본도를 들려서..(세종로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지금 이 모습대로 세우기로 구상하고 설계한 사람은 박정희다)
그런데 박정희의 창조적 독서는 이상하다 '멸사봉공'이 나를 죽이고 국가를 받드는 것이라면 당연히 광복군이 되어 일제에 항거해야하는데 오히려 독립군을 잡는 일본군 장교가 되었고.. 멸사봉공을 해야할 군인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역적모의와 쿠데타로 국가에 반하는 행위를 한 것이다.
까닭은 일평생 천황병(나폴레옹병) 에 걸려있던 박정희는 멸사봉공하는 신민으로 나라를 가득 채우고 싶었지 그 자신이 멸사봉공하는 졸이 되고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국가의 혁명과 나>라는 저서에서 "이 혁명은 인간 개조 - 즉 국민 개혁혁명인 것이다" 고 박정희가 내세웠던 "인간개조"가 그러니 얼마나 섬뜩한 것인가
박정희는 멸사 봉공하는 국민들로 가득 찬 국가만능의 세계를 꿈꿨고 자신은 초국가적인 존재가 되길 원했다. 천황과 같은 영구 집권자와 일사불란한 국민의 복종에 의해 유지되는 유신체제가 그것 인 것이다.
즉 박정희가 성웅화 시켰던 이순신 장군은 충무공의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자신을 위해서 재창조된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통제를 잘 따르는 시민들을 육성하고 싶었던 것이다.
● 참고문헌
최관, <일본과 임진왜란>,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3.
송우혜, 문학작품을 통해 진행되고 있는 이순신 폄훼현상
유성은,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평안문화사, 2001
<역사학보> 89집, 1981년 역사학회
<마당> 1982년 12월
최상천, <알몸 박정희> , 사람나라, 2001.
장정일, <독서일기> 5권, 범우사, 2002.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5.10.16
  • 저작시기2005.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603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