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철학 정의로운삷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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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법철학 정의로운삷의 사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序 論

Ⅱ. 本 論
1. 정의로운 삶이란..
2. 정의를 실천한 삶을 가꾼 사람들
(1) 안중근 의사
1) 안중근 의사의 생애
2) 안중근 의사의 정의로운 삶
(2) 테레사 수녀
1) 테레사 수녀의 생애
2) 테레사 수녀의 정의로운 삶
3. 정의관의 비교

Ⅲ. 結 論

본문내용

종교를 설명하지 않고 행동이나 헌신을 통해 신앙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여, 사람들에게 결코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힌두교도가 죽을 때에는 힌두교식 장례를,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코란을 읽어주고 회교도 묘지로 보내었으며, 카톨릭교도는 사제의 집전으로 장례식을 치러주는 등 그들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그들의 방식에 맞는 종교예식을 해 주었다.
이는 오늘날 본인이 믿지 않는 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여러 종교인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끔 한다.
간디는 “장미는 언어로 말하지 않고 그윽한 향기로 말한다. 향기야말로 장미의 언어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전기 마더 테레사』 p.193 인용
하지만 마더 테레사의 언어는 애써 베푸는 것이 아닌 능동적인 실천으로써 그들에게 먼저 다가선 사랑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테레사 수녀의 삶은 인종, 종교, 국적을 초월하여 수많은 충돌과 증오로 불행해진 인류의 미래에 사랑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었기에, 그녀의 정의로웠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사뭇 크다고 생각한다.
이는 보편적인 인류에의 사랑, 그것은 테레사 수녀의 유일한 소망이자, 삶의 지향점이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소중한 가치들을 돌이켜보게 하는 거울로써 되새겨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3. 정의관의 비교
보통 사람이라면 일제시대 우리 나라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의연한 태도로 죽음을 맞이한 안중근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끝없는 사랑을 베풀었던 테레사 수녀의 이름 정도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와 테레사 수녀...
이들에게서는 인종, 성별뿐만 아니라 태어난 배경, 살아온 과정, 교육수준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공통점이란 것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들 삶의 내면적인 정의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정의로 인식되어 훗날 그들이 ‘정의로운 삶’을 살았었다고 회자되는 면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그들이 추구한 정의와 그에 따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안중근은 조국의 독립을 통한 아시아의 평화에 그 정의를 두고 주로 무력을 통한 항일운동 1907년 연해주(沿海州)로 망명하여 1908년 봄, 안중근은 그 곳에서 김두성(金斗星)을 총독으로 하고, 이범윤(李範允)을 대장으로 하여 의병 부대를 조직하고 자신은 참모중장이 되어 의병운동에 참가하였다. 하지만 안중근은 이러한 무력적 의병운동 외에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에도 힘쓴바 있다.
을 펼쳤지만,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자에 대한 봉사를 통한 사랑의 실천을 평생 삶의 과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평화와 사랑..
그렇다. 이처럼 그네들은 내면적인 정의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그 과정이나 방법은 전혀 달랐지만 한결같은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들을 그들의 삶을 통해 추구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평화와 사랑이라는 그네들의 내면적인 정의이기도 한 동시에 우리 인류의 보편적인 정의이기도 했다.
이에 그러한 가치들이 표현된 그들의 삶은 우리들에게 한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공감은 인종, 국가, 언어를 초월한 극히 인간적인 것이기에 훗날 우리들이 안중근 의사와 마더 테레사의 삶을 정의로웠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러한 보편적인 공감을 이루지 못한 삶은 제 아무리 정의로운 삶이라고 본인이 생각하고 실천하여도 우리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정의롭지 못한 삶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보편적인 정의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공동체를 위한 삶의 지향’일 것이다.
그들이 사익에 집착하지 않고 보다 큰 공동체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를 희생한 삶을 살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정의에 공감하고 스스로의 반성을 통해 정의를 지향하는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렇듯 조국을 위해 소중한 목숨을 마다 않고 던진 안중근 의사의 의거, 따뜻했던 가족들과 헤어져 제일 비참하고 가난한 곳에서 사랑을 실천했던 테레사 수녀의 모습은 요즈음 점점 이기주의화 되고있는 우리 사회 공동체의 정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전해주고 있는 듯 하다.
Ⅲ. 結 論
흔히 사람들은 ‘정의’를 단순히 ‘옳은 것’, 혹은 ‘마땅한 이치’로서 막연하게 개념을 짓곤 한다.
나 역시 이러한 정의에의 심각한 고찰을 가지기 이전에는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정의라는 개념은 우리의 삶과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기에, 정의로운 삶이란 바로 공동체를 위한 삶이라고 감히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공동체를 위한 삶으로는 수많은 가치가 있다. 무릇 앞서 살펴본 안중근 의사의 삶이나, 테레사 수녀의 삶에서의 평화와 사랑은 그 한 예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그들이 남기고 간 삶의 흔적들은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해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들이 잊고 살아가기 쉬운 인간다움, 즉 바름의 이치를 우리들의 반성을 통해 일깨워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바른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지표로서의 역할을 하게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들의 투철한 정의관에 의한 삶을 영위한 것뿐이지 후세에 있어 어떠한 영광이나 명예를 얻으려고 그러한 삶을 산 것은 진정 아닐 것이다.
이에 그들의 정의로운 삶을 평가하고 그로 인해 오늘날의 삶의 지혜를 발견하는 것은 응당 우리들의 몫임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하지만 이에 앞서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의 정의로운 삶’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실천한 삶이 훗날 보편적인 정의로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곧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며, 스스로가 인간다워져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이치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제껏 이러한 이치조차 망각해왔음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스스로의 정의의 추구, 특히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여기는 삶을 지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바름을 추구해야할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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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0.28
  • 저작시기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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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17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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