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사태의 발생과 전개과정, 향후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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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코소보사태의 발생과 전개과정, 향후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코소보 사태의 발생과 전개과정
1. 밀로세비치
2. 코소보전쟁의 배경과 전개과정
(1) 코소보 지역의 중세 이전의 역사
(2) 유고슬라비아 연방 이전의 코소보
(3) 유고슬라비아 연방 하의 코소보
3. 나토의 공습
(1) 경과
(2) 피해 상황

Ⅱ 코소보 사태의 특성

Ⅲ 코소보 전쟁 관련 당사자간 입장
1. 코소보 문제에 대한 나토의 입장
2. 나토의 유고 공습에 대한 러시아 대통령 옐친의 공식 성명
3. 밀로세비치의 제안(텔레비전 연설문)
4. 중국대사관 폭격에 대한 중국의 입장(후진타오의 텔레비전 연설)
5. 공습중단에 대한 클린턴 성명

Ⅲ 평가

Ⅳ 평가

Ⅴ 코소보 전쟁 이후

Ⅵ 향후 코소보에 대해

본문내용

를 거부한 밀로세비치를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것도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Ⅴ 코소보 전쟁 이후
코소보에서 크고 작은 폭력사태가 벌어지는 가운데 유고연방의 정국은 혼미를 거듭하고 있었다. 임기가 '01년 여름까지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흔들리는 권력을 다시금 공고히 하기 위해 밀로세비치는 조기 대선을 계획하였고, 대선은 '00년 9월 24일 실시되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선거에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대선을 준비한 밀로세비치였으나, 이미 민심은 밀로세비치를 떠나 있었고 야당 연합 후보로 나선 코슈투니차에게 유고 국민들의 관심은 모아지고 있었다. 선거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고연방 정부는 개표 결과를 발표하지 않아 국민들의 의혹은 더욱 증폭되었다.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져 가는 가운데 유고연방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선거 무효를 발표하자 국민들의 분노는 일순간에 확대되면서 밀로세비치 퇴진을 외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실시되었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밀로세비치의 퇴진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밀로세비치의 마지막 지지국이었던 러시아마져 밀로세비치의 퇴진을 종용하자 밀로세비치는 마침내 10월 6일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면서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그간 발칸의 히틀러로 불리우며 서방의 고민 거리였던 밀로세비치가 물러나자 서방은 유고 재건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면서, 각종제재조치의 해제와 함께 EU는 2006년까지 총 23억 유로달러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미국도 5억 달러의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유고연방의 정국이 혼란을 겪는 가운데 코소보에서는 10월 28일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920명의 지역의원을 뽑는 지방 선거에서 온건파인 아브라힘 루고바가 이끄는 코소보민주동맹(LDK)이 압승하였다. 코소보 선거 감시단체인 KACI는 LDK가 프리슈티나를 포함한 대도시에서 크게 승리했다고 밝혔으며, LDK도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으리슈티나에서 약 68%를, 다른 주요 도시에서 50%이상을 득표했다고 밝혔다. http://www.kida.re.kr/woww/content/amc93.htm
Ⅵ 향후 코소보에 대해
서구 언론에게 코소보 지방은 알바니아인 90% 세르비아인 10%를 의미할 뿐이지만 세르비아 인들에게는 옛 왕조가 태동하여 눈부시게 발전하다가 원통하게 무너진 곳이자 터어키 지배에서 세르비아 문화를 보존해온 많은 중세 수도원들이 위치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승리하여 조선 왕조는 무너지고 우리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고 하자. 20세기 들어 독립은 되었지만 수 백년의 통치결과 경상도는 인구의 90%를 일본인이 차지하고 있다고 하자. 우리가 경상도를 포기할 수 있을까? 최초의 통일 국가 신라가 일어나고 천년의 영화가 빛나는 고도 경주가 위치한 경상도를 독립은 고사하고 일본인들의 자치라도 허용할 수 있을까?
나토는 세르비아 인들이 코소보를 포기하기를 너무 쉽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감히 이스라엘에게 예루살렘을 포기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이 인구 비례 이상의 의미를 지닌 성지이듯이 대다수 세르비아 인들에게 코소보 땅은 자신들의 영광과 상처를 아울러 간직한 신성한 땅이며 세르비아 민족의 탄생지인 그 땅을 포기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세르비아 인들은 알바니아 인들이 코소보에서 주인 행세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5:5이던 인구 비율을 9:1로 바꾸어 놓은 알바니아 인들의 높은 출생율을 증오한다(사실 당하는 쪽의 입장에서 보면 얘를 많이 낳아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처럼 불안하고 분통터지는 일은 없다. 일부 세르비아 인들은 알바니아의 종교 지도자들이 의도적으로 다산을 부추긴다고 믿는다).나토의 정책은 싸우며 협상을 동시에 하는 것인데 이제 불행하게도 '세르비아에게 코소보를 포기시키는 것'은 나토의 능력 밖의 일이다.
발칸은 수 백년에 걸친 터키의 억압과 그 후 공산체제의 모순으로 문제에 문제가 첩첩이 쌓인 곳이다. 서로 다른 민족 사이의 투쟁, 종교 간의 갈등, 수 백년에 걸쳐 쌓여온 민족의 울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싼 암담한 가난과 앞이 보이지 않는 현재, 이 모든 것들을 한 순간에 해결할 묘수는 없다.
발칸의 하늘은 너무도 암담한 먹구름 뿐이라 푸른 하늘을 보려면 한 번 폭풍이 쳐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발칸의 문제를 단순히 흑과 백으로 나누어 보려고 한다면 아무리 의도가 좋았을 지라도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세르비아 인의 인종 청소는 단죄되어 마땅하지만 크메르 루즈에 희생당한 캄보디아의 200만 난민이 미국의 인도차이나 개입을 정당화 못 하듯이 알바니아 난민의 참상이 나토의 공습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코소보사태는 일단 UN의 평화유지군(KFOR)이 코소보에 진주함으로써 전쟁이 재발하거나 발칸 전역으로 분쟁이 확대될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코소보사태 역시 발칸지역의 다른 분쟁과 마찬가지로 민족, 국경, 종교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분쟁의 특성상 근본적인 해결은 난망하다고 할 수 있다. 세르비아는 결코 코소보를 포기할 수 없는 입장에 있으며, 코소보 알바니아계도 독립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어, 현재의 코소보 평화안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또한 해결과정에서 표출되었듯이 러시아와 나토간의 이견은 상존하고 있으며, 특히 수년내에 반드시 거론되어야할 코소보의 자치권 획득과 분리 독립에 대해 양측의 의견 대립이 있을 경우 코소보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유고연방에서 밀로세비치가 물러나고 코슈투니차정권이 출범하였고 코소보 지방선거에서 온건파인 루고바가 승리하였으나 양측의 입장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평가된다. 즉 코슈투니차는 코소보의 독립을 허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고 루고바는 자신의 목표는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코소보 문제의 해결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발칸반도의 인적 구성과 같이 쉽사리 해결될 기미는 없다고 보인다. 단지 현재로서 국제사회의 최선책은 코소보지역에서 더 이상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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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09
  • 저작시기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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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19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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