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과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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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 마지막 황실 > 대한제국 (大韓帝國)
1.성립
2. 정치체제 논쟁
3. 대한제국의 국제
4. 정책
5. 해체
6. 조선 최초의 황제 고종 (1852(철종 3)∼191).

* < 경운궁 > 덕수궁 (德壽宮)
1. 덕수궁 연표
2. 덕수궁 둘러보기

본문내용

화전 북쪽, 즉조당 서쪽에 위치한다. 고종황제가 이곳에 거처하기도 하였고, 한때 고종의 초상화와 순종의 초상화가 봉안되기도 하였다. 또한 고종은 이곳에서 외국 사절들을 영접하기도 했다. 내전으로 동쪽에 자리잡은 즉조당과 같은 기능의 건물로 양식도 유사하다. 즉조당의 퇴간(退間)이 동쪽으로 치우쳐 있는 데 비해 준명당의 근간은 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⑥ 즉조당
즉조당은 중화전의 북쪽에 위치한 건물로, 순종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1904년 화재를 입어 소실된 것을 같은해에 중건한 것이다. 궁의 침전으로서는 규모가 크지 않으나,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간결하고 짜임새가 돋보인다. 전면 동쪽으로 편향하여 3칸의 퇴(退)를 두어 개방하였고, 내부는 거실로 이용하였다. 건물에 비해 높은 기단을 두었고, 서쪽의 준명당과 연결되도록 2칸 복도를 두고 있다.
⑦ 덕홍전
덕홍전은 고종황제가 내외빈객들을 접견하던 건물이다. 1911년에 건립되어 현존 전각(殿閣) 중에 가장 나중에 건조된 전각(殿閣)의 하나이다. 기단은 장대석을 돌려쌓고 알맞은 기둥 높이에 간결한 익공(翼工)을 얹어 처마를 받게 하였다. 팔작지붕의 마루에는 양성(兩城)하고 귀마루에는 용두와 잡상(雜像)을 얹어 잡귀와 화재에 대비하고 있다. 현재는 건물 내부를 고종황제의 침전으로 복원하여 당시의 궁중 생활상을 볼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⑧ 함녕전
고종황제의 침전으로 사용되던 건물로 1904년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것을 같은해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함녕전은 1919년 1월 고종이 승하한 건물이기도 하다. 건물의 평면은 정면 9칸, 측면 4칸인데 서쪽 뒤편에 4칸이 더불어 ㄱ자형으로 되었다. 앞에서 보면 중앙 3칸은 근간으로 하여 개방하였고, 나머지 부분은 전부 거실로 이용하도록 되어 있다. 기둥 위에 올린 공포는 익공식이며, 건물이 거대한 데 비해 장식은 간결하다
⑨ 석어당
덕수궁 내의 유일한 이층건물로, 1904년의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같은해에 다시 다른 전각들과 함께 중건했다. 원래의 석어당은 임란 때 선조가 피난으로부터 환도하여 승하할때까지 16년간 거처하였던 곳이며, 인목대비가 광해군을 이 건물 앞뜰에 꿇어앉혀 죄를 책한 곳이기도 하다. 아래층이 정면 8칸, 측면 3칸이고, 위층이 정면 6칸, 측면 단간인 굴도리집으로, 올라 다니는 계단은 서쪽 끝에 설치되었다. 중층이면서도 가식이 없는 민간풍의 건축양식을 나타내고 있어 친근감을 준다.
⑩ 덕수궁미술관(석조전 서관)
1937년 이왕직박물관으로 지은 별관은 연면적이 1,104평이며, 해방 뒤 석조전의 부속 건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덕수궁 현대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덕수궁미술관은 근대미술 전문기관으로서 근대미술의 조사 · 연구, 작품의 수집과 보존, 기획 및 상설전시, 각종 교육프로그램의 개발과 실시, 학술과 출판, 근대미술 작품과 정보의 국제적 교류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도심 외곽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본관의 관람 불편 요소를 해소하여 강북권에 새로운 문화공간을 활성화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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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11
  • 저작시기2006.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2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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