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생애와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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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윤동주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윤동주는?
1. 생애 및 연보.
2. 배경
1) 주변 분위기
2) 송몽규와 정병욱.

Ⅱ. 윤동주의 시와 사상.
1. 윤동주의 시를 구성한 그의 사상
1) 지사적 사상
2) 기독교적 사상
3) 기본 성향
2. 윤동주의 시
1) 시 분류 및 분석
2) 그의 시에 대해 일반적으로 이야기 되는 것들

Ⅲ. 윤동주는….

본문내용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웃에 대한 사랑, 그의 시에서 보이는 휴머니즘은 사실 도덕적 의식이며 기독교적 사상에 바탕 된 보다 폭넓은 의미의 인류애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웃에 대한 연민을 주제로 한 것이라 읽히는 <트루게네프의 언덕>같은 경우도 앞서 이야기 한 제 3의 영역(순수저항)에 해당된다. 외국 시인의 정곡을 벗어난 해석(트루게네프의 <거지>)에 반항하여 지은 시라 보는 것이 보다 적합하다. 이러한 모습은 <그 여자>에서도 보인다. 따라서 속죄양 모티브라는 것은 윤동주가 자신의 희생이 전 인류를 대신한 것이라고 해석되기보다 앞서 보았던 자아의 고민에 대한 자아의 각성과정이라 보아야 옳을 듯하다. 쉽게 말해 전 인류를 대신해 자신을 희생한다기보다 시대 속에 사는 지식인이자 대학생인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인식, 속죄한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와 <초 한 대>역시 달리 읽혀야 한다.
<트루게네프의 언덕>
나는 고갯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잃어 푸르스름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하고 「얘들아」를 불러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근소근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그 여자>
함께 핀 꽃에 처음 익은 능금은
먼저 떨어졌습니다.
오늘도 가을바람은 그냥 붑니다.
길가에 떨어진 붉은 능금은
지나는 손님이 집어갔습니다.
Ⅲ. 윤동주는….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고 보아야 할까? 김현 김윤식 『한국문학사』, 김윤식의 『한국 근대 작가 논고』, 백철의 『한국문학사』, 이상비의 「시대와 시의 자세」, 김해성의 『한국 현대 시인론』, 백철 박두진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발문, 송민호의 「일제하의 저항문학」에서는 그를 저항시인이라고 본다. 주로 그가 옥사했다는 것과 앞서 나눈 모더니즘과 자기고민에 관한 시들을 저항시로 읽으며 거기에 중심을 둔다. 반면 김열규의 「윤동주론」, 오세영의 「윤동주의 시는 저항시인가」, 박삼균의 「윤동주의 저항성 재고」등 1976년 4월 호 『문학사상』에서는 그를 저항시인이 아니라고 본다. 순수시 작품에 중점을 두며 윤동주의 시가 순수시에서 출발하여 시가 시인 자신의 내면적 성찰과 고뇌를 담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윤동주가 저항시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항을 하긴 했다. 단 항일이라고 해석하기보다는 혼란의 원인이 되는 모든 것에 대한 반항이라고 보아야 적합하다고 본다. 『한국 현대 시인론』에서의‘저항시인’의 정의를 빌려오자면 저항시인이란‘한 인간으로서는 그 사회나 국가가 부당한 고통을 당할 때 거기에 저항하는 자세와 용기를 가지며, 한 시인으로서는 뚜렷한 이정표가 될 작품의 생산에 능력과 지혜를 보여야 할 것’이라는 조건을 가진다. 하지만 윤동주가 일제에 저항하는 자세와 용기를 가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으며, 뚜렷한 이정표가 될 작품을 생산했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서정적, 자기 각성의 시로 가지는 의의가 더 크다고 본다. 김소월 형식의 전통적, 향토적인 서정시, 외국의 서정시를 흉내 내려는 시가 아니라 윤동주 나름의 독자적 (‘자아 고민적’이라고 해야 하나?) 서정시 영역을 개척했다는 데에 대한 의의 말이다. 만약 그가 김수영이 살던 1960년대에 살고 있었다면? 그래도 그는 시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달리 적극적인 저항시를 썼을 것이라기보다 지금과 비슷한 시를 썼을 것이라 추측된다. 저항시인으로 보나 서정시인으로보나 그의 시는 최고다. 하지만 해방 전 옥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그의 시를 저항시라는 틀에 가두어 때로는 반밖에 때로는 과장되어 읽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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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14
  • 저작시기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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