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코프 조직신학 하(종말론) 요약 및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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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벌코프 조직신학 하(종말론) 요약 및 서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본향으로의 종말보다는 이 땅의 삶이 끝나는 -개인적이든, 일반적이든- 것과 그 이후 그리스도의 심판이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고 두 책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신자들이 소망을 갖고 이 땅을 살아가는 책임을 더 뜨겁게 느낄 수 있는 책은 박형룡박사님의 내세론이 아닌가 싶다.
이런 차이점이 어디서 생긴 것 일까? 아마도 시대적인 요청이 아니었는가 생각한다. 박박사님에게는 나라를 잃은 슬픔, 그리고 일제의 탄압 등으로 곤고한 상태에 있는 백성, 일제의 우상인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현실을 바라봄으로 이 땅의 소망이 헛되며 진정한 구원이 하늘에 있음을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한 신학에 있지 않은가 싶다. 우리의 꽃밭에 비록 다른 사람의 정원에서 갖고 온 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꽃으로 화하여 심겨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 역시 후학들과 신앙의 후배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한다. 슬픔 있는 자에게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벌코프와 다른 강조점의 내세론을 만들어 내지 않았겠는가?
또한 두 책의 차이점은 각 장마다 있는데 그것은 벌코프는 자신의 책에서 계속적으로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는 것이다. 더 깊은 연구를 위한 질문을 던짐으로 단순히 어떤 주의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사고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 유익한 점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의 이성적인 부분에 호소함으로 자칫 그릇된 방향으로 사고를 확정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기도 하다.
본인이 박박사님의 내세론 2편 1장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재림의 대망”이 오늘날 성도들에게 얼마나 요청되는 사실인지를 발견했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믿는 신자들로 하여금 늘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근간이 되는데 박박사님은 이것을 ‘경성과 신중’이라는 두 단어로 정확하게 서술하신 그 탁월함에 놀랐다. 그에 비해 벌코프는 비교적 간단한 언급으로 지나갈 뿐이다. 이것은 오늘날 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그 메시지가 약함을 느낀다. 재림을 대망하는 신자들의 삶을 강조하는 박박사님의 내세론은 신학적 학문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삶의 상황을 가르쳐 주고 있는 틱월함이 있다. 벌코프의 종말론과 다른 강점이다. 개혁중의 삶을 살아가는 자세는 오히려 박박사님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경계선 상에 서있는 제자의 모습. 열렬히 재림을 소망하되 또한 오늘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진정한 성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 재림에 대하여 이런 자세를 견지했다면 한국 교회에 시한부 종말론에 의한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재림이 지연된다고 하여 안심하지 말고 금일 미말에 오실 주님을 보고 세상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지 않은 살아있는 개혁주의의 실천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비슷한 책이지만 벌코프의 종말론은 천년기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도 취하지 않고 있다. 천년기에 대하여 단순히 전천년주의자와 무천년주의자로 구분하여 두 부분의 문제점만을 밝힌다. 이것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서구식 사고의 약점이 아닌가 한다. 벌코프는 전천년에 대하여 여러 가지 근거로 반대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년설에 대하여도 동일하게 많은 문제점을 제시한다. 결국 선택은 읽는 독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그럼 점에서 박박사님의 역사적 전천년설에 대한 신념과 살득은 우리 개혁주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합한 것이다.
성도들은 종말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하는 궁금함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시대론자들의 시각으로 종말과 휴거, 부활 그리고 천년왕국을 이해한 본인은 박박사님의 2편 2장의 천년기를 통해 개혁주의가 말하는 바른 천녀기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벌코프의 책으로는 오히려 혼란을 느꼈다.
이것은 단순히 개연성 있는 주장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바요, 성경 앞에, 하나님 앞에 정직히 서 있음으로 하여 드러나는 사실이다. 역사적 천년기 전 재림은 인간의 능력을 최대의 선으로 보고 그것에 기대하는 자연주의도 아니요, 인간의 죄악을 감추려는 악의에서 오용하는 종말이 아니다. 오직 성경이 말하는 바이다.
성경이 말하는 역사적 천년기 전 재림은 신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책임을 갖고 그리스도 앞에서 성실히 살아가게 만들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며 주님을 위해 고난 받고 핍박받아도 그것이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날마다 승리케 하는 원동력이 된다. 주님과 함께 누릴 영원한 복락이 있고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위해 승천하셨고 올라가신 그대로 영광 가운데 심판주로 오실 것이다.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종말이 무엇인지 그리고 종말로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본서를 통해 정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목적은 결코 좌절된 적이 없었으며 그가 택하신 모든 백성들과 함께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통치, 그리고 사단이 결박되는 동시에 악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완전 방지된 주의 통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의인이 거하는 신천과 신지, 절대적 무죄 완전의 시대는 말일에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벌코프와 박박사님의 책을 읽고 이제는 본인이 담당하는 고등부 학생들에게 좀 더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며 궁극적인 우리의 삶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는 것을 종말론을 통해 견고히 해주고 싶다. 더 이상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어설픈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개혁주의 신학에 입각한 성경적 가치관으로 이 땅을 살기 원한다.
우리의 삶은 제한적이다. 이 땅에 있는 시간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영혼이 불멸하며, 악인도 의인도 부활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는 날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희망이며 소망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어린 양들에게 알려야겠다. 만일 이런 일에 게으르다면 그 피 값을 청지기에게 물을 것이다. 주여 예수여 어서 속히 오시옵소서.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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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32페이지
  • 등록일2006.04.21
  • 저작시기2005.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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