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관계론 - 세계1,2차대전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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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세계
2. 1차 세계대전
3. 1차대전의 전후처리와 2차대전의 기원
4. 아시아 - 태평양 전쟁 이전의 일본
5. 제2차 세계대전
6.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관계

Ⅲ. 논의
1. 전쟁범죄
2. 베르사유체제의 취약성
3. Taylor 교수가 제기한 논쟁
4. 일본의 도박
5. 냉전의 기원
6. 쿠바 미사일 위기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군사 공격 또한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카스트로와 흐루시초프는 사회주의 혁명을 분쇄시키려는 케네디의 단호한 의지를 알았고 그에 대응했던 것이다. 흐루시초프에게 중요했던 것은 쿠바의 방어였고 전략적 균형은 쿠바 미사일 기지로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마무리 된 후 케네디는 “우리는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커다란 위기들 중 하나를 해결했다.”고 했다. 하지만 흐루시초프는 자신의 승리임을 밝히고 있다. 미국의 목표는 쿠바를 파괴하는 것이었고 소련의 목표는 쿠바를 지키는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쿠바는 보존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스트로는 오랫동안 아바나를 지배하며 미사일 위기가 정권의 수명을 기대 이상 늘려주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장기 평화”를 가져왔다는 주장도 재고해 봐야 한다. 쿠바 사태로 미소 양측은 군사적 능력을 보다 중요시하게 되었고 핵무기 경쟁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1962년 이후의 미소 경쟁은 평화적이었다기 보다 안정적이었던 것이다. 핵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에 대해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케네디가 터키의 미군 미사일 기지들을 철수할 용의가 충분히 있었으며 흐루시초프가 케네디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경우 쿠바-터키 미사일 거래를 위해 UN 사무총장 우 탄트의 공개적인 호소가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3차 세계대전으로의 비화 가능성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만큼 높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Ⅲ. 결론
첫째, 결국 양차 세계대전은 분리된 전쟁이 아니라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 곧 통일독일의 등장이 야기한 세력균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간기에 일어났던 일들로 인해 분명히 인식되는데 이는 곧 1차대전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음에도 구조적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음을 시사한다. 즉 1차대전 이전과 마찬가지로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독일이 다시 팽창하자 단독으로 이에 대항할 수 없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이에 연합하였다. 독일에게는 하나의 이점이 더 있었는데 제정러시아가 소련으로 대체된 후 공산주의의 이념적 지향 때문에 더 이상 영국, 프랑스와 소련의 연합이 쉽게 이루어질 수 없어졌다는 사실이었다. 폴란드, 체코 등은 이전에 러시아가 했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는데 다시 말해 이들은 독일에 양면작전을 강요할 만큼 강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독일문제는 제2대전을 지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유럽 내부에서가 아닌 외부에서 찾아왔다. 즉 유럽은 이미 강대국의 지위를 상실하였고, 이미 미국과 소련이 독일을 분리시켜버렸기 때문이었다.
둘째, 양차대전 모두 결코 당사자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진행되어 결국 이와 같은 엄청난 희생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소수민족들의 저항을 계속 묵인할 경우 스스로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으며 생존을 위해 세르비아와 전쟁을 하였다. 독일의 경우, 이미 포위된 상황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마지막 남은 동맹이었으며 그들의 요구를 무시할 경우 완전한 고립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2차대전의 경우도 비록 히틀러와 일본은 대규모 전쟁을 계획하였으나 모두 단기전을 예상하였으며 전쟁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자 당황하고 말았다. 이렇듯 전쟁이 일단 벌어지면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그 자체의 메커니즘에 의해 진행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책임소재에 대해 보다 조심스러워질 필요가 있다. 각 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주어진 구조 속에서 항상 자신들이 택할 수 있는 대안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으며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이러한 복잡함들이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얼마나 다양한 차원에서의 노력이 요구되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집단안보의 개념은 처음 실패하였으나 나중에 UN을 통해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되어 어느 정도의 실효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처음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자신들의 주권이 보다 상위의 규범에 의해 지배되는 것을 혐오하였으며 따라서 국제연맹에서는 국가들을 강제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실패로 돌아간 후 다시 시도될 때는 이에 대한 보안이 이루어졌다. 얼마 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UN은 연합군을 파견하여 참전하였으며 이는 침략국에 대한 집단적 대응이 처음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국제정치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어떤 이들은 전쟁을 정치의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전쟁은 그 과정의 격렬함만으로도 당사자들의 통제를 벗어나 버릴 수 있다는 것을 20세기는 너무나 큰 대가를 통해 보여주었다. 이제 전쟁은 정치적 수단이 아니며 오히려 정치는 전쟁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은 너무나도 숭고한, 양도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Baylis, John, 세계정치론, 을유문화사, 2003
이기택, 국제정치사, 일신사, 2000
김용구, 세계외교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Paul Kennedy,강대국의 흥망, 한국경제신문사, 1996
Gaddis, John Lewis, 새로 쓰는 냉전의 역사, 사회비평, 2002
Nye, Joseph S, 국제분쟁의 이해: 이론과 역사, 한울, 2000
Eric Hobsbawn, 제국의 시대, 한길사, 2001
Eric Hobsbawn, 극단의 시대:20세기의 역사, 까치, 1997
Michael Howard, 20세기의 역사, 가지않은 길, 2000
A.J.P. Taylor, 제2차세계대전의 기원, 지식의 풍경, 2003
김진웅, 냉전의 역사, 1945~1991, 비봉출판사, 1999
Adolf Hitler, 나의 투쟁, 홍신문화사, 1996
*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세계
2. 1차 세계대전
3. 1차대전의 전후처리와 2차대전의 기원
4. 아시아 - 태평양 전쟁 이전의 일본
5. 제2차 세계대전
6.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관계
Ⅲ. 논의
1. 전쟁범죄
2. 베르사유체제의 취약성
3. Taylor 교수가 제기한 논쟁
4. 일본의 도박
5. 냉전의 기원
6. 쿠바 미사일 위기
Ⅲ.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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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06.04.11
  • 저작시기2006.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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