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석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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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월인석보 소개

2. 세조에 대하여

3. 월인석보의 편찬 과정과 내용
3-1. 월인천강지곡
3-2. 석보상절

4. 월인석보의 체계

5. 월인석보의 연구
5-1. 월인석보 내용을 중심으로
5-2. 월인석보의 보존과 연구

6. 월인석보의 판본

7. 월인석보의 가치

8. 맺음말

9. 참고문헌

본문내용

. 셋째, 선조1(1569) 豊基小伯山喜方寺에서 개판한 판본이 남아 있다. 넷째, 중종37 (1542) 안동 下柯山廣興寺개판본이 있는데, 이는 1984년 홍문각에서 영인되었다.
『月印釋譜』권22는1983년 5월 7일에 보물 745-7호로 지정되었다. 이는 삼성출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번각본이다. 다만 판본상태로 보아 임진왜란이전본이다.
『月印釋譜』권23은1993년 4월27일에 보물 745-8호로 지정되었다. 이 책은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으로 원간본이다. 앞부분에 16장의 결장이 있고, 뒷부분도106장으로 끝나 몇 장의 결락이 더 있을 것이다. 이 원본의 영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번각본중에는 1963년 연세대학교가 구입한 明宗14 (1559) 순천 구악산 無量寺판이 있는데, 이는 63장 뒷면에서 시작하여 98장 종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36장 반엽에 불과하며 1963년 연세대 동방학연구소에서 동방학지 제6집에 민영규 박사의 《月印釋譜第二十三殘卷》을 곁들여 영인하였다. 이를 저본으로 하여 1884년 홍문각출판사가 재영인하였다. 1999년 영광 불갑사의 팔상전에서 발굴된 무량사번각본은 1장후면만이 결락된 번각완본인데, 내용은 1장부터 98장으로 종결되고 있어, 원본 그대로 새기지 않았다.
월인석보 권25는 1997년 6월12일에 보물 745-9호로 지정되었다. 이 책은 보림사 사천왕상 복장본으로 제144장 이후가 결락된 판본이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권수중에는 마지막 권차이다. 이 책은 아직 영인되지 않았다.
6. 월인석보의 판본
선조이년간월인석보판목 [宣祖二年刊月印釋譜板木]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鷄龍面) 중장리(中壯里) 갑사(甲寺)에 소장되어 있는 1569년(선조 2)의 책판(冊板)이다. 1973년 12월 31일 보물 제582호로 지정되었으며 판각(板刻)의 크기는 90×21cm(마구리 제외)이며, 판(板)은 반곽(半廓) 7행이고, 매행(每行)은 14∼15자로 되어 있다.
판심제(板心題)는 월인(月印)으로 되어 있고, 1매마다 앞뒤 양면에 각각 2장씩으로 판각되었다. 또, 판목 끝 판의 간기(刊記)에 '융경삼년기사이월 일 충청도 한산지 죽산리 백개만가 침각이전 은진지 불명산 쌍계사유치(隆慶三年己巳二月 日 忠淸道 寒山地 竹山里 白介萬家 枳刻以傳 恩津地 佛明山 雙溪寺留置)'로 되어 있어 백개만이라는 천민(賤民) 출신의 재산가의 시주로 각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존분(現存分)은 《월인석보(月印釋譜)》 제21권분 중 31매이며, 조선 세조 때의 초간(初刊)에 비하여 자체(字體)의 정제미(整齊美) 등이 약간 떨어지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매우 우수한 책판으로, 현존하는 임진왜란 전의 《월인석보》 책판(冊板)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7. 월인석보의 가치
우선, 월인석보의 가치는 불교계, 서지학계, 국어학계 세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1)불교분야에서의 의의를 보면, 『月印釋譜』는 세종대의 훈민정음의 창제와 아울러 세조의 숭불정책의 인해 불교계의 융성기를 맞이하는 조선초기왕실불교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그 첫 사업으로서 조선건국의 당위성을 내세우기 위해『龍飛御天歌』를 편간하였고, 세조는 불전을 국역하는 그 첫번째 사업으로 계획하여 『月印釋譜』를 편간하였다. 이 책에는 귀족중심의 불교가 아니고 민중중심의 불교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월인석보의 편간 이후에 많은 불경이 번역되었고, 특히 간경도감을 중심으로 한 국역불서의 편간은 일반백성을 대상으로 한 포교사업의 일환이었음을 알 수 있다.
2) 서지학분야에서의 의의를 보면, 『釋譜詳節』과 『月印千江之曲』은 초주갑인자로 인출하였고, 『月印釋譜』는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초주갑인자는 세종16(1434 ) 7월에 주성된 활자로서, 衛夫人字라고 일컬어지며 그 자체가 매우 아름답고 명정한 필서체이다. 한자는 유연하게 운필된 필서체의 초주갑인자이고, 한글자는 강직하게 직선으로 그은 인서체의 한글 동활자이다. 『月印釋譜』는 목판으로 간행되었지만, 대자, 중자, 소자로 구분하여 표기하고, 특히 한글의 큰 글자는 해서체, 전서체형으로 구분이 되고 자세히는 여러 부분으로 나뉘는 다양한 서체로 표기되고 있어 오늘날 한글의 글꼴 연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月印釋譜』의 형태적인 부분은 세조8년부터 간경도감에 의해 이루어지는 국역불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3) 국어·국문학사에서의 의의를 보면, 국어학에서는,『月印釋譜』는 15세기 훈민정음의 표기는 물론이고, 문체에 있어서도 논리성은 확보되지만 메마르고 성근느낌을 준다고 평가되었으며, 국문학사에 있어서는, 『月印釋譜』의 서사문학적 성격은 세조가 돌아가신 세종, 세종비, 장자인 도원군을 위하여, 자신의 현·내세의 안위를 위하여, 천도불사와 극락왕생을 위한 미타신앙계 서사체를 대폭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월인부는 운문서사시의 형태로, 석보부는 산문서사체의 형태로 이들은 분절된 형태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석보부의 각 편은 그에 부합되는 월인의 각 부분을 해설 부연함으로서 불교강창문학의 실상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8. 맺음말
월인석보는 조선시대의 훼불정책 속에서 숭불정책을 폈던 세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집권한 세조가 불교를 숭배함으로써 그 죄갚음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담겨있다. 이로써 월인석보는 최초로 불경이 한글로 쓰여진 책이며 일반백성도 널리 읽히기 위한 책이었고 조선 중세시대의 한글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9. 참고문헌
강순애(Soon Ae Kang), 『 월인석보 』 의 저본에 관한 연구A Bibliographical study of the scriptures based upon << Wolinsokpo >> ,서지학회 , 서지학연구, Vol.22, No.0, , 2001 , 34-63 pp.
한성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강순애 교수 홈페이지
문화재청(http://www.ocp.go.kr/_new/main.jsp)
http://mbuddha.com.ne.kr/200112/200112-20.htm
http://hongkgb.x-y.net/gojon/gita/%BC%AE%BA%B8%BB%F3%C0%FD.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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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5.18
  • 저작시기20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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