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회경제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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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사회경제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栗谷 李珥의 社會經濟思想』
Ⅰ. 緖言
Ⅱ. 時代的 背景
Ⅲ. 社會思想
Ⅳ. 經濟思想
Ⅴ. 結論

『尤庵 宋時烈의 社會經濟思想』
Ⅰ. 序論
Ⅱ. 時代的 背景
Ⅲ. 社會思想
1. 奴婢從母從良論
2. 兩班戶布論
Ⅳ. 經濟思想
1. 大同法論
2. 救恤政策
Ⅴ. 結論

『楚亭 朴齊家의 社會經濟思想』
Ⅰ. 머리말
Ⅱ. 社會改革論
Ⅲ. 經濟論
Ⅳ. 燕巖學派 論爭
Ⅴ. 맺음말

『燕巖 朴趾源의 社會思想과 社會改革論』
Ⅰ. 序論
Ⅱ. 燕巖의 社會思想
1. Humanism
2. 民族主義
3. 實用主義
Ⅲ. 燕巖의 社會改革論
1. 土地制度 改革論
2. 商工業 振興論
3. 科學技術 振興論
Ⅳ. 結論

☆ 종합적 평가 ☆

본문내용

비에 의한 생산 자극설을 제안
⑥ 무역에 있어서 국내시장을 국제시장과 연결시켜 해외통상을 추진할 것을 주장
3. 科學技術 振興論
① 청의 기술을 받아들여 국력을 신장 할 것을 주장 → 그러나 당시 조선은 胡亂을 겪은 뒤
청에 대한 반감이 심했음(『열하일기』에서 합리적으로 설득)
②『軍制說』에서 수레의 통용설을 역설
③ 과학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임
⇒ 연암의 뒤를 이어 등장하는 실학자들에 의해 농기구의 개량, 수차의 보급 등 기술의 진흥으로 국력을 일으켜야 함을 주장하는데 기여
Ⅳ. 結論
社會思想的인 면보다 문학적 영역에서 활발히 연구됨
주체적 사고와 변화, 다양하고 보다 넓은 현실세계를 탐구하려는 개방적 자세
관점이 다른 인식의 상대성을 자각해 자기중심적인 편협한 사고로부터 탈피
기존의 사상적, 학술적 전통 가운데 진보적인 요소들을 인도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격과 통합하여 특유한 사상을 정립
☆ 종합적 평가 ☆
주제는 조선의 社會經濟思想으로 16c부터 18c에 이르기까지 성리학자(이이, 송시열), 실학자(박지원, 박제가)들의 사회경제사상에 관한 논문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 전반의 사회경제상을 알아 보았다. 이이의 논문은 크게 비판할 점 없이 무난했던 것 같고 논문과 조금 다른 생각을 가졌던 것이 송시열에 관한 논문이다. 송시열에 대해서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인 시각이 이 논문을 읽어가면서 조금은 바뀌었다는 것이다. 송시열은 학문적인 자부심이 높고 주희에 대한 존경심이 너무 깊다 못해 편협해서 자신과 다른 생각은 인정하지 않았고 자신의 학문적 견해에 잘못을 지적하면 사문난적으로 몰기까지 했었다. 대표적 예는 윤휴를 들 수 있는데 윤휴는 당시 성리학의 문제를 인식하고 비판하기 위해 청나라에서 새롭게 나온 학문인 양명학을 공부하며 주희를 부정하고 새로운 학설을 제기했는데 송시열은 자신의 학문을 비판한다 해서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기까지 했다. 송시열에 대한 입장의 차이는 극과 극이라고 하는데 이 논문을 읽으며 그가 사회경제적으로는 그나마 개혁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노비종모종량법을 주장하면서 점차 적으로 노비제도를 철폐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양인의 수를 늘려 세금을 더 걷으려는 정치적인 생각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박제가의 논문을 읽으면서 그는 너무나도 중국에 심취해 있다고 느꼈다. 그의 저서 『북학의』에도 나와 있듯이 그는 중국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서는 우리의 언어조차 바꿔야 한다고 저술했다. 이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중국에 심취해 있으면서 어떻게 북벌을 주장했는지 그의 주장에 모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문벌제도의 폐지를 주장하였지만 신분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하지는 못했고 토지제도의 개혁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쉽다. 박지원은 사회경제적인 부분에서 보다 문학적인 부분에서 많이 연구되고 있기 때문인지 이 논문도 약간의 문학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청의 기술을 받아들여 국력을 신장 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당시의 사회는 호란을 겪은 이후라 청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맞서서 그의 저서 『열하일기』에서 합리적으로 설득 하였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진실로 북벌을 도모하자면 우선 나라가 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솔직히 민중들도 그 책을 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이러한 내용이 과연 합리적인 설득이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이상으로 4편의 논문을 읽으면서 조선시대의 사회경제사상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성리학자와 실학자가 근본적으로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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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8페이지
  • 등록일2006.08.30
  • 저작시기2006.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2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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