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윤리(기독교 윤리학적 관점에서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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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생태 윤리(기독교 윤리학적 관점에서 접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생태학/생태윤리학/생태철학/생태주의의 정의

Ⅱ. 생태윤리에 대한 논의의 역사적 고찰 - 환경문제의 책임을 중심으로
1. 기독교에 환경 위기의 책임이 있다는 입장
2. 기독교만의 책임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이 있다는 입장
3. 환경 위기에 대한 세계의 반응

Ⅲ. 환경 위기 극복을 위한 생태학적 논의들
1. 근본 생태론
2. 사회 생태론
3. 생태 여성론

Ⅳ. 생태신학 - 환경위기에 대한 기독교의 응답
1. 창조신학에서 찾아 본 생태윤리적 측면
1) 창조 세계에 대한 이해
2)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에 대한 이해
a.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b. 하나님과 자연과의 관계
c.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2. 계약사상에 있어서의 생태윤리적 측면
3. “사귐”과 “사랑”으로서의 생태윤리적 측면

결론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별첨 “악마 대가리 좀 나방을 경계하라”

본문내용

류터가 거론되기도 했다.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였다.
환경문제로 많은 이슈가 되고 있는 동강 댐 문제, 부안핵폐기물처리문제, 새만금 문제등도 이야기되어졌다. 결국 “개발이냐? 보존이냐? 지속 가능한 개발이냐?”라는 논의들이 나왔으나 결론 내리기 쉽지 않았다. 우리의 대화는 WTO와 제3세계, 현재의 세계에서의 노동의 문제가 생태문제와 결부되어있음을 논의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결국 자본주의의 문제로 모든 것이 환원되는 듯 했고, 갑자기 막막해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지금 우리가 발제를 통해서 학우들께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생태문제는 우리의 지적수준을 과시하기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별첨. 악마 대가리 좀 나방을 경계하라
꿀벌이 집을 지키는 노력은 대단하다. 북미 대륙의 어떤 야생벌은 그 무지막지한 곰까지도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갈 수 있다고 한다. 아예 집을 지키는 역할만 맡은 이른바 문지기 벌이 있는데 그놈의 시선을 피해 벌집 안으로 들어가서 꿀을 먹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신문에 보니 얼마 전 성묘 갔던 사람이 말벌 떼의 습격을 받아 병원에 옮겼으나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고 한다.
말벌이란 놈이 어쩌다가 처마 밑이나 마당 한 구석에 날아들면 온 집안이 시끄럽고 괜히 겁부터 난다. 그런데 그 무서운 야생벌의 집안에 들어가 배가 터지도록 꿀을 훔쳐 먹고 나오는 나방이 있다. 곰처럼 완력으로 벌집을 때려 부수고 꿀을 강탈하는 게 아니라 교묘한 속임수로 아예 집안으로 들어가서 먹고 나오는 것이다.
북아프리카와 중근동 지방 또는 코카서스 지방에 서식하는 일종의 나방으로 사람들은 그놈을 '악마 대가리 좀 나방'이라고 부른다.(학명은 Acherontia atropos). 이 나방의 날개와 배는 흑색과 황색이며 등 복판에는 황색이 섞인 흰 반점이 있는데 그 모습이 해골에 두 뼈다귀를 교차시켜 놓은 해적의 표시와 흡사하다. 이놈이 숲 속에서 '해적질'을 하는데, 아무런 무기도 없이 벌집에 들어가서는 날지도 못할 만큼 꿀을 먹고 유유히 탈출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수단을 부리기에 그토록 철저한 경계망을 무사통과 하는지 궁금하게 여겨오던 중 최근에야 그 '비밀'이 밝혀졌다. 꿀벌이 아니라 인간에 의하여. 그러니까 인간이 꿀벌한테 그 비밀을 알려줄 방도를 찾지 못하는 한 놈은 마음 놓고 꿀 도적 노릇을 계속 하겠지.
그 비밀이라는 게 간단하다. 악마 대가리 좀 나방이 배의 둥근 마디를 마찰시켜 격렬한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공교롭게도 알에서 갓 깨어난 여왕벌의 날개 소리와 같은 것이다. 알다시피 꿀벌 사회에서 여왕벌은 신과 마찬가지다. 여왕벌이 없으면 꿀벌 사회가 무너지고 따라서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갑자기 여왕벌께서 깨어나 자신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보초병이든 일꾼벌이든 일단 넋을 잃는다. 그리고 들려오는 여왕벌의 날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저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마녀 사이렌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뱃사람들을 흘렸듯이 악마 대가리 좀 나방은 여왕벌의 날개소리를 흉내 내어 꿀벌들의 넋을 잠시 빼앗는 것이다. 꿀벌이 마침내 정신을 차려 '소리'의 주인공을 찾다가 그 '정체'를 알아차릴 때쯤이면 악마 대가리 좀 나방은 이미 도망치고 없다.
얼마 전 텔레비젼에서 공해문제 특집을 냈다. 썩어 가는 한강을 잔인하게 화면에 담아 보여주었다. 영상 효과 덕을 톡톡히 보아 많은 시청자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특집'이 끝나고 이어서 쏟아지는 광고 속에서, 그 무차별 홍수 속에서, 어떤 여자가 나와 방금 한강 물을 오염시키는 주범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되었던 합성세제를 "요만-큼!"만 쓰라고 윙크를 한다. 그 다음에는 근사한 자동차가 근사한 길을(교통체증하고는 도무지 상관없다는 듯 시원하게 뚫려 있는) 근사하게 달리면서 "웬만하면 당신도 한 대 사라"고 손짓을 한다. TV의 '소리'와 그 '정체'는 일치하는가? 지금 들리는 저 여왕벌의 날개 소리는 과연 여왕벌의 것인가? 아니면 꿀을 훔치러 들어온 악마 대가리 좀 나방의 것인가?
우리나라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어느 신문은 보고 난 신문이든 아예 보지도 않은 신문이든 좌우간에 신문을 다시 거두어들이기 위해서 종이부대를 몇 백 만장 만들었노라고 광고를 한다. 말하자면 종이를 재활용하여 자원을 절약하고 쓰레기 공해도 줄이겠다는 갸륵한 뜻을 실천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쓴다는 것이다. 열대우림이 '종이'를 만들기 위해 마구 훼손되고 있어서 '인류의 허파'에 구멍이 날 지경이라는 '심각한 우려'를 전달하기 위해 그 '신문'은 독자도 없는 판촉용 신문을 어마어마하게 찍어 전국에 뿌리고 있다. 과연 그 신문의 '소리'는 그 '정체'와 일치하는가?
우리는 이제 그것을 물어야 한다. '소리'에 넋을 잃은 멍텅구리 짓은 이제 곧 청산해야 한다. 어떤 목사가 도시 빈민의 가난을 염려하는 '소리'를 하면 그가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누가 공해문제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말하면 그가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지 물어야 한다. 만일 그가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면 일단 의심을 해 보는 게 좋다. 저 친구 악마대가리 좀 나방은 아닐까? 만일 그가 자가용을 타는데 소형에서 대형으로 차종을 바꿨다면 일단 '악마대가리'로 간주해도 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물어야 한다. '소리'를 내는 놈의 '정체'를 알아봐야 한다. 특히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당신은 이러이러하게 말하고 있는데 과연 그 말대로 살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래서 '겁나는 후배'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따지다 보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소리'와 '정체'를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차츰 우리 주변에서 악마대가리가 사라질 것이다. 가장 심각하고 절박한 질문은 "누가 우리의 악마대가리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의 악마대가리냐?"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열매를 보아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이 일에 너나없이 철저하지 못하다면 지금도 여전히 악마 대가리 좀 나방에게 꿀을 빼앗기고 있는 저 멍청한 꿀벌과 다를 바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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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2.13
  • 저작시기20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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